[팩트in] ‘사전예약’은 왜 ‘사전청약’으로 둔갑했나… 오세훈표 주택정책의 표류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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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in] ‘사전예약’은 왜 ‘사전청약’으로 둔갑했나… 오세훈표 주택정책의 표류②

뉴스로드 2026-03-02 21:16:5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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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3년 5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SH공사 관계자 등이 토지임대부 장수명 아파트 착공식을 갖는 모습 [사진=SH]
지난 2023년 5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SH공사 관계자 등이 토지임대부 장수명 아파트 착공식을 갖는 모습 [사진=SH]

정책은 종종 단어 하나에 그 본질과 방향성을 담는다. 최근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추진하는 ‘백년주택(토지임대부 건물분양주택)’ 공급을 둘러싸고 묘한 단어의 둔갑이 있었다. 2022년부터 수년간 사용해 오던 ‘사전예약’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사전청약’으로 바뀐 것이다.

단순한 오타나 행정 실수가 아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시민과의 약속을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 단면이 드러나는 이번 사태는 오는 6월3일 제9회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가 될 수 있다. 

▲ 본질이 전혀 다른 두 단어, LH ‘사전청약’ vs SH ‘사전예약’

이번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두 제도의 차이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지난해 5월,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사전청약’ 제도를 전면 중단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토지 보상과 택지 확보도 끝나지 않은 ‘허허벌판’ 상태에서 미리 청약을 받다 보니, 문화재가 발굴되거나 기반 시설 설치가 늦어지면 본청약과 입주가 기약 없이 미뤄지는 ‘희망 고문’ 사태가 속출했기 때문이다.

반면, 김헌동 전 SH 사장이 도입해 큰 인기를 끌었던 SH의 제도는 90% 완공 후분양 방식에 착공 이후 90% 공정 진행 중에 예약(계약금·중도금 부담 없음)만 받는 ‘사전예약’이었다. 이는 최초로 도입된 방식으로 LH의 사전청약과는 완전히 다르다.

SH의 사전예약은 이미 택지 조성을 마치고 인허가를 거쳐 착공한 상태에서 예약만 받는다. 예약금이나 중도금, 계약금 부담 없이 90% 완공 후 건물을 분양할 때까지 자금을 모을 수 있으며, 건물을 짓고 나서 분양하는 ‘후분양’을 원칙으로 한다. 공사가 진행되는 2년 이상의 기간 동안 입주자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미리 당첨자를 정해주는 선진적인 시스템이었다. 소비자인 입주 예정자의 리스크가 현저히 낮고, 입주 시기가 명확하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SH 홈페이지에도 자세히 설명이 돼있다. 

▲ 2월 27일 SH 보도 자료의 미스터리...난데 없는 '사전청약'의 등장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달 12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헌동 전 사장이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관료들이 어렵게 법까지 개정해 도입한 백년주택 건물 분양을 방해했다”고 폭로하자, 서울시는 즉각 해명자료를 냈다. 골자는 “LH의 사전청약 지연 사태로 인한 시민 피해가 우려되어, SH에도 공정률 80~90% 시점에 분양(후분양)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짚어본 것처럼 완벽한 모순이다. 이미 착공 후 ‘후분양’을 전제로 진행되던 SH의 안전한 ‘사전예약’을, 위험성이 큰 LH의 ‘사전청약’과 동일시해 중단시켰다는 주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5일이 지나, SH공사는 마곡 17단지 본청약 보도 자료를 배포한다. 놀랍게도 이 공식 문서에는 'SH 사전청약 단지 중 첫 본청약 사례'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SH공사는 지난 2006년 이후 단 한 번도 ‘사전청약’이라는 선분양제보다 앞선 선(先)선분양 방식인 이 제도를 단 한번도 시행한 적이 없으며, 현재까지도 SH 공식 홈페이지의 모든 용어는 ‘사전예약’으로 명시되어 있다.

왜 갑자기 단 한번도 써 본적이 없던 단어가 등장했을까. 이는 지난 12일 서울시가 내놓은 “LH 사전청약 사태 때문에 SH 사전예약을 막았다”는 거짓 해명을 사후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행정적 ‘꿰맞추기’라는 추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성공적으로 안착한 자기 정책을, 실패해 폐지된 LH의 제도와 슬그머니 동급으로 묶어버린 어이 없는 행정이며, 서울 시민에 대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21년 이후 수차례에 걸쳐 1700여채에 대한 '사전예약'을 진행했던 SH가 이 용어를 헤깔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SH의 가장 핵심적인 주택공급정책이었으며, 여기에 직접시행·시공, 적정임금, 직접지급, 장수명고급공공주택, 기 때문이다. 

오세훈 시장(왼쪽)과 김헌동 전 SH공사 사장이 지난 2022년 7월 싱가포르에서 토지임대부 건물분양주택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사진=서울시]
오세훈 시장(왼쪽)과 김헌동 전 SH공사 사장이 지난 2022년 7월 싱가포르에서 토지임대부 건물분양주택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사진=서울시]

▲ 관료주의의 역습, ‘김헌동 지우기’인가

이러한 촌극의 배경에는 이른바 ‘김헌동 지우기’가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오세훈 시장은 2021년 11월 평당 1천만원대 반값 아파트 공급이라는 자신의 철학을 관철하기 위해 시민단체(경실련) 출신의 김헌동을 기용했다. 김 전 사장은 기존의 관행을 깨고 분양원가 공개, 후분양제, 사전예약, 직접시공제, 적정임금제와 함께 토지임대부 건물분양 등의 정책을 안착시켰다.

특히, 최근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한 싱가포르 주택 정책의 핵심인 토지임대부 건물분양 정책은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강남에 700여채를 분양한 수량보다 많은 2060여채의 반값아파트를 착공했고, 이중 1700여채에 대해 사전예약을 진행해 평균 40대1이라는 경쟁률을 입증했다. 생경한 공공주택정책에 쏠린 관심치고는 엄청난 인기 몰이를 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3년의 임기를 마치고 2024년 물러나자, 기존의 관료 조직이 기다렸다는 듯 '백년주택'의 추가 공급은 중단됐다. 

선거 앞둔 임기 후반부, 오세훈 시장의 ‘레임덕’ 징후인가

현 시점은 이 사안을 정치적으로 읽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넉달 뒤에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린다.

행정 조직에서 임기 말은 통상 ‘레임덕(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공무원들은 현직 단체장의 힘이 빠지는 것을 감지하면, 새로운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다음 권력을 주시하며 현상을 유지하려 한다. 시장의 역점 공약인 백년주택 건물만 분양 방식이 실무선에서 표류하고 있는 현 상황은, 서울시 내부에서 오 시장의 시정 장악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면일 수 있다.

오세훈 시장 친필 [사진=SH]
오세훈 시장 친필 [사진=SH]

더 큰 의문은 오세훈 시장의 ‘침묵’이다. 본인이 직접 착공식에 참석해 친필 사인까지 남긴 핵심 정책이 행정적 엇박자 속에서 길을 잃고 있는데도, 오 시장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관료들에게 눈과 귀가 가려진 것인지, 아니면 대권 등 향후 정치적 행보를 위해 껄끄러운 정책에서 전략적으로 발을 빼고 있는 것인지 서울시민들의 궁금증은 커지고 있다.

정책의 이름이 바뀌고 스케줄이 늦춰지는 사이, 그 피해는 고스란히 2년의 시간을 벌어 내 집 마련을 준비하려던 무주택 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관료주의의 장막을 걷어내고, 자신의 간판 주택정책이 현재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시민들에게 투명하게 직접 설명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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