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신고 하나로 '아플 권리'를 잃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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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 하나로 '아플 권리'를 잃은 아이들

베이비뉴스 2026-03-02 08:00:00 신고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는 모든 아이들이 차별 없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주배경아동, 함께 키워요’ 연속 기고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연재는 언어·문화 장벽과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인해 여전히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배경아동들의 실태를 조명하고 제도적 개선 방향을 모색합니다. 모든 아동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말

이명진 폭력피해이주여성 보호시설 '죽향' 시설장. ⓒ초록우산 이명진 폭력피해이주여성 보호시설 '죽향' 시설장. ⓒ초록우산

한국인 남성과 외국인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통상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게 되지만, 아버지의 책임회피, 어머니의 불안정한 체류 상태, 제도 접근의 장벽 등 다양한 이유로 부모가 혼인신고를 하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이는 아동이 존재한다. 이들은 혼인 외 출생 상태에서 인지신고가 이루어지지 않아 외국인 아동으로 분류되고, 별도의 체류 요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제도권 밖에 놓인다. 특히 예방접종과 치료에 필수적인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의료비 전액을 부담해야 하거나 치료 자체를 미루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물론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경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첫째, 한국인 아버지가 인지신고를 하고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되면 아동은 한국 국적을 취득해 건강보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외국 국적이라 하더라도 합법 체류 요건을 충족하면 지역가입자로 가입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두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아동들은 결국 건강보험 가입 자체가 불가능해지며, 의료보장의 사각시대에 놓이게 된다.

실제로 필자가 현장에서 만난 많은 아이들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했다. 한국인 아버지가 인지 절차를 진행하지 않았고, 합법 체류 상태라 하더라도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해 체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동가정은 병원에 한 번 갈 때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일반 진료비를 감당해야 하며, 이는 가계에 큰 부담이 된다. 병원 한 번에 생계비가 사라지는 상황에서 보호자는 자신, 아동의 치료마저 점차 미루게 된다. 병원을 찾지 않는 선택은 무책임이 아니라 제도의 사각지대 속 생계를 위한 절박한 판단이다.

한 아이는 잦은 기침과 고열을 반복했지만, 병원비에 대한 두려움 앞에서 병원에 바로 가지 못하고 5일이 넘는 시간을 참다 증상이 악화된 후에야 병원에 가야 했다. 건강보험이 없던 아이는 건강보험이 가입된 아이보다 3~5배 높은 비용을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아이의 부모는 병원가는 것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병원 진료 결과 진단명은 감기였다. 제때 치료 받았다면 며칠 내로 회복되었을 병이다. 이 아이에게 감기는 더 이상 가벼운 질병이 아닌 걸려서는 안되는 병, 걸려도 참아야 하는 병이 되었다.

이는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현장에서 혼인신고 여부, 체류자격 문제, 건강보험 미가입으로 아이의 질병이 방치되는 사례를 반복적으로 마주한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나 일시적 불운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건강을 부모의 혼인 여부와 행정적 지위에 종속시키는 구조적 문제다. 현재의 건강보험과 체류 제도는 여전히 ‘정상 가족’, ‘혼인 관계’, ‘안정적 체류’를 전제로만 작동한다. 이 틀에서 벗어난 순간, 아이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사각지대의 존재가 된다.

대한민국 헌법 제36조는 국가가 모성과 보건에 관한 보호 의무를 진다고 규정한다. 대한민국이 1991년 비준한 UN아동권리협약 제24조에서도 모든 아동이 가능한 최고 수준의 건강을 누릴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동의 건강권은 부모의 혼인 여부나 체류자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선택적 복지가 아니라 국가가 보장해야 할 기본권이다.

감기 치료와 예방접종, 기본 진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권의 문제다. 최소한 예방접종과 영유아검진, 기본 외래 진료와 응급의료만큼은 체류 자격과 무관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아이가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국가가 이행해야 할 기본적 책무다.

아동의 건강권이 더 이상 부모의 행정 절차에 따른 결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가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이 특별한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일상이 되길 바란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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