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국 정의당 대표가 28일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6·3 지방선거 출마를 사실상 선언했다.
권 대표는 이날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자신의 저서 '농담도 참 못해요' 출판기념회에서 "2026년 지방선거는 '극우 대 중도보수'라는 우리나라 정치 구도를 '진보 대 보수'의 구도로 바꾸는 분기점이 되어야 한다"며 "진보정치의 공간을 열어낼 지방선거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행사는 권 대표의 자전적 정치 기록을 담은 신간 출간을 기념해 마련된 자리였다. 책에는 '거리의 변호사'로 지내온 시간과 21대 대선 전후 과정, 진보정치의 과제, 연대·연합 필요성에 대한 윤지나 CBS 기자와 한겨레21 이재훈 편집장과 나눈 대담이 정리돼 있다.
사회자로 나선 장혜영 전 정의당 의원은 행사 도중 "출마 선언은 예고돼 있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권 대표가 인사말 도중 "오늘 참석자 500명이 넘으면 출마하겠다"고 언급했고, 이후 행사장이 사람들로 가득 차자 장 의원과 질의응답 시간에서 사실상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지역구는 현재 미정이며, 내부 논의를 거쳐 확정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에 지난 21대 대통령선거 TV토론회에서 진보정치 메시지를 내며 맹활약한 권 대표의 시즌2가 주목되고 있다.
"'가치 중심 정치'는 노동자·서민 대변하는 다수 정치"
권 대표는 이날 지난해 21대 대선 0.98%의 득표율을 언급하며 "1987년 직선제 이후 진보 정당 후보 중 최저 득표율이었다"며 "얼굴을 들고 문밖을 나설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후원금과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는 시민들의 마음을 확인하며 다시 정치의 책임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이재명 정부에 대해서는 "잘하는 정책에 대해선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코스피 6천 시대에도 달걀 한 판 8천 원이 무서운 서민들, 부동산 투기 전쟁에도 엄두도 내지 못할 서울 아파트 가격,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쿠팡 같은 거대 유통자본에 수탈당하는 중소상공인들"을 언급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또 "우리의 정치 지형은 더불어민주당의 중도보수 지향 선언 이후 자산 증식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강화되고 있다"며 "왼쪽은 텅 비어 있고 오른쪽은 과밀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과 분배, 평등과 생태의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대변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며 "그 정치는 소수를 위한 정치가 아니라 90%를 차지하는 노동자·서민을 대변하는 다수를 위한 정치"라고 강조했다.
권영국 대표, '사회적 약자의 확성기' 역할 보여줘
행사는 21대 대선에서 정의당·노동당·녹색당이 연합해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섰던 권 대표와 함께했던 이백윤 노동당 대표, 이상현 녹색당 대표, 당시 총괄선대위원장을 맡았던 한상균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의 축사로 시작됐다.
이후 '공유연단'이 마련돼 산업재해 유가족을 비롯해 노동자, 지역 활동가들이 연사로 나섰다.
정의당 관계자는 "'공유연단'은 권 대표가 대선 당시 밝힌 '사회적 약자의 확성기'라는 취지를 이어가는 자리"라며 "출판기념회 역시 당사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대선 당시 '사회적 약자의 확성기'를 자임했던 권 대표의 약속을 이날 공유연단이라는 모습으로 구현한 것이다.
2020년 쿠팡 대구칠곡물류센터에서 과로사로 숨진 고(故) 장덕준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는 "고통 속을 기꺼이 함께 걷겠다고 손 내미는 마음이 고맙다"며 "농담은 못하지만 춤은 멋드러지게 추는 인간 권영국을 만난 건 행운"이라고 말했다.
박범석 금산 송전선로 대책위원장은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주민을 무시한 채 사업을 강행하는 한전과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은 싸움을 해왔다"고 토로했다. 이어 권 대표의 연대에 대해 "주민들의 형편을 감안해 소송비용은 성의만 표하게 해줬고, 요청이 있으면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고 전하며 "금산 주민들에게는 영웅이자 희망"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노조 조합원 이성희 씨는 산업 전환의 문제를 짚었다. 현대차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생산 현장에 단계적으로 투입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노조는 사전 협의 없는 투입은 불가하다는 입장"이라며 "이면에는 한국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 노사는 단체교섭을 통해 국내 최초 주 5일제와 주간 연속 2교대제를 도입하며 함께 성장해온 역사"라며 "AI와 로봇 도입에 대한 합의는 한 기업을 넘어 사회적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정부와 사회의 지지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건설현장 노동자인 최우영 한국마루노조위원장은 "건설 카르텔이 만든 '가짜 3.3 계약' 구조 속에서 일은 시키는 대로 하지만 책임은 개인이 지고, 권리는 인정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권 대표에 대해 "소외된 현장의 목소리에 손을 내밀어준 정치인"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탈핵운동가 강언주 새알미디어 대표는 "정치는 어쩌면 보이지 않는 한가운데로 들어가는 일"이라며 "자꾸 보고, 묻고, 외면하지 않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코스피와 GDP는 계속 거론되지만 후쿠시마 15년의 시간과 핵오염수 문제는 쉽게 잊히고, 반도체와 AI 산업은 중요하게 논의되지만 그 전기를 만들어내는 핵발전소 지역의 고통은 잘 보이지 않는다"며 "보이지 않으면 나와 상관없는 한 지역의 문제로만 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탈핵처럼 농담으로 넘길 수 없는 불평등의 문제를 끝까지 이야기하는 정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축하공연도 이어졌다. 포크 뮤지션 황푸하 씨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합창단 지보이스가 무대에 올랐다. 황 씨는 "나는 말을 잘 못하지만, 나처럼 말을 잘 못하는 사람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는 진보 정치를 꿈꾼다"고 말했다.
지난 대선에 이은 지방선거서 '권영국 시즌2'…진보 재편의 분수령 될까
'권영국'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각인된 순간은 2025년 5월 18일 열린 21대 대선 후보 TV토론이었다.
그는 23년 전 16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를 복기하며 가장 급진적인 공약을 제시했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인상하고 순자산 100억원 이상 자산가에겐 부유세 도입, 특수고용·프리랜서 노동자 1300만 명의 노동자성 인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 등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를 향해 "윤석열 씨 때문에 치러지는 대선에 무슨 자격으로 나왔느냐"고 비판하며, "윤석열 씨가 내란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권 대표는 2009년 용산 참사·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구의역 정비노동자 김군 사망사건,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씨 사망사건, 2019~22년 SPC 파리바게뜨 노조 파괴 의혹 등 굵직한 노동 사건 현장에서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다.
권 대표의 정치 입문은 2016년에 이뤄졌다. 용산 참사 당시 강경 진압의 책임이 있던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016년 총선에서 경북 경주에 출마했을 때 권 대표도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시 권 대표는 15.9%를 득표했다. 첫 출마로는 의미 있는 성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정의당은 원내 기반을 잃었고, 사회운동의 구심력 역시 약화됐다. 그가 이번 지방선거를 "진보의 빈 공간을 여는 투쟁"이라고 표현한 배경에는 이런 역사적 맥락이 있다.
권 대표의 이번 출마는 개인 정치 행보를 넘어, 원외로 밀려난 진보정치가 재구성될 수 있을지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한편 이날 행사에는 권 대표가 대변해온 산재 유가족을 비롯해 노동계와 사회운동계, 청년·여성·성소수자·장애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했다.
여기에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대표,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 한상균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종대·이은주 전 정의당 의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 김찬휘·이상현 녹색당 공동대표 등 진보정당 인사들이 참석하면서, 권 대표의 출마 선언이 진보 진영 재결집의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폴리뉴스 김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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