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550e x드라이브. 사진=권지용 기자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이 문장을 거부할 수 없는 진리처럼 믿어왔습니다. 압도적인 가속력을 탐닉하는 대가로 지갑이 얇아지는 현상은 일종의 세금이나 다름없었으니까요. 대배기량 엔진의 포효를 들으며 도로를 집어삼킬 때 계기판의 연료 게이지가 눈에 띄게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이게 바로 내 가슴을 뛰게 하는 비용이지"라고 스스로를 세뇌하던 시대가 분명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고, 기술은 우리의 고정관념보다 훨씬 빠르게 앞서 나갑니다. 이번에 만난 주인공은 오랜 편견을 기분 좋게 깨뜨립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출퇴근을 끝내면서 동시에 주말엔 서킷을 휘젓는 두 얼굴의 완벽주의자입니다. BMW 5시리즈 끝판왕, 550e x드라이브입니다.
BMW 5시리즈가 한국 시장에서 갖는 위상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5시리즈가 가장 많이 팔리는 나라 중 하나로 꼽힙니다. 독일 뮌헨 본사에서도 한국 고객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느라 밤잠을 설친다는 소문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만큼, 우리네 운전자들의 안목은 날카롭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브랜드의 이름값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프리미엄 세단다운 정숙함은 기본이요, 고속도로에서는 호쾌하게 뻗어 나가야 하며, 동시에 고유가 시대에 걸맞은 영리한 효율성까지 갖춰야 합니다. 550e에는 모순적인 욕심을 한 그릇에 담아내기 위한 고민의 흔적이 엿보입니다. 'M5'라는 상징적인 괴물을 제외하면 사실상 5시리즈 라인업의 큰형님 격인 이 차를 타고 영하 7도의 혹한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BMW 550e x드라이브. 사진=권지용 기자
하지만 정작 놀라운 사실은 화려한 출력보다는 연료 효율이었습니다. 시승 당일 기온은 약 영하 7도로 상당히 추운 날씨였습니다. 자동차 배터리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죠. 사람도 추우면 몸이 굳듯, 배터리 역시 효율이 뚝뚝 떨어지는 혹한기입니다. 배터리를 가득 채우고 출발하니 주행 가능 거리가 약 75km로 나옵니다. 사실 반신반의했습니다. 과연 이 추위에 이 무거운 차(공차중량이 2.3t에 달합니다)가 전기로만 얼마나 버틸까 하는 의구심이었죠. 하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심과 간선도로를 섞어 달린 끝에 약 70km 지점에 도달해서야 배터리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이때 기록한 전비는 3.9km/kWh. 추운 날씨와 히터를 가동한 상황을 고려하면 꽤나 선방한 성적표입니다.
BMW 550e x드라이브 충전 모습. 사진=권지용 기자
물론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충전이 귀찮아서 배터리를 방치하면 어쩌냐, 그러면 무거운 짐차 아니냐"는 냉소적인 시각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배터리 상태에 따른 극단적인 두 가지 테스트를 진행했습니다. 우선 배터리를 알뜰하게 활용하며 누적 200km를 달렸을 때, 계기판에 찍힌 평균 연비는 무려 19.8km/L에 달했습니다. 경형 하이브리드 부럽지 않은 수치죠. 반대로 배터리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에서 하이브리드 모드로만 200km를 달렸을 때 기록은 10.1km/L였습니다. "겨우 10km/L?"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 차가 500마력에 육박하는 고성능 사륜구동 세단이라는 사실을 고려해야 합니다. 비슷한 성능을 내는 가솔린 모델이 시내 주행에서 한 자릿수 연비로 고전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충전 없이도 두 자릿수를 지켜내는 BMW의 엔진 효율 기술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경지에 올랐는지를 방증하는 셈입니다.
BMW 550e x드라이브 실내 모습. 사진=권지용 기자
실내로 들어서면 화려한 조명과 인터랙티브 바가 운전자를 반깁니다. 5시리즈가 8세대로 진화하며 보여준 가장 큰 변화 중 하나인 이 실내 구성은 550e라는 미래지향적 심장과 아주 잘 어우러집니다. 크리스탈 디자인의 컨트롤러와 매끄럽게 이어진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마치 고급 라운지에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정숙성 또한 압권이죠. 전기 모드로 주행할 때는 물론이고, 엔진이 개입하는 순간조차도 그 경계가 너무나 희미해서 계기판을 보지 않으면 엔진이 켜졌는지조차 알기 어렵습니다. 한스 짐머가 작곡한 아이코닉 사운드가 가속 시 들려주는 웅장한 효과음은, 엔진음과는 또 다른 차원의 감성적 만족감을 선사합니다.
결론적으로 BMW 550e x드라이브는 모든 걸 다 갖고 싶은 욕심쟁이를 위한 명쾌한 해답입니다. 평일에는 세상 그 누구보다 조용하고 경제적인 비즈니스 파트너가 되어 기름값 걱정 없이 도심을 누비고, 주말에는 가족을 태우고 장거리를 안락하게 여행하거나 때로는 혼자만의 드라이빙을 즐기며 스포츠카 못지않은 쾌감을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한 차체 안에 극단의 효율과 극단의 성능이 공존하는 이 묘한 매력은 한 번 맛보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1억2000만원대 가격표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490마력의 출력과 20km/L에 육박하는 잠재적 연비, 그리고 BMW라는 브랜드가 주는 신뢰를 완벽하게 버무려낸 차가 또 있을까요? "성능과 효율은 반비례한다"는 오랜 물리적 법칙에 균열을 낸 이 차를 보고 있자면, 비싼 가격표마저 어느 정도 수긍이 갑니다. 특히 전기차 선호도가 아직 높지 않은 고성능 세단 시장에서 PHEV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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