뎀나의 첫 26FW, 구찌를 다시 욕망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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뎀나의 첫 26FW, 구찌를 다시 욕망하게 하다

바자 2026-03-01 12:00:03 신고

2026년 2월 27일, 밀라노. 뎀나가 구찌 런웨이에 처음 섰다. 정확히는 팔라초 델레 스친틸레의 어두운 홀 안, 빛으로 그어진 한 줄기 런웨이 위였다. 1923년 스포츠 이벤트 홀로 지어진 이 공간은 2차 세계대전 중 라 스칼라 극장이 손상되었을 때 공연을 개최했던 곳이다. 뎀나는 이곳을 박물관처럼 꾸몄다. 계단식 좌석 위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 조각상들이 늘어섰다. 웅장하게 느껴지는 그 조각상들은 사실 전부 ‘가짜’였다. 우피치 미술관과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의 조각상들을 3D 스캔한 후, 토스카나 장인들이 석고로 재현하고 대리석처럼 보이도록 처리한 것이었다. 레플리카를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이것 자체가 뎀나가 말하고자 하는 구찌였다. 뎀나는 이번 컬렉션을 ‘프리마베라(Primavera)’라고 명명했다. 이탈리아어로 봄을 뜻하는 이 단어는 보티첼리의 그림에서 따온 이름이다. 하지만 이건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이다! 그는 계절 봄이 아니라, 구찌의 봄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뎀나가 구찌에 온 이유는 명확하다. 2025년 구찌의 매출은 하락세를 걷고 있었다. 케어링은 구찌의 부활을 위해 뎀나를 선택했고, 뎀나가 선택한 건 톰 포드였다. 1990년대 파산 직전이던 구찌를 수십억 달러 브랜드로 만든 톰 포드는 한때 이렇게 말했다. "상업적이라는 건 칭찬이다. 사람들이 그걸 살 거라는 뜻이니까."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했다. "왜 사람들이 이걸 비즈니스와 패션으로 나누려고 하는지 늘 당황스럽다. 내 일은 놀라운 것을 만드는 동시에 그게 팔리게 하는 것이다. 둘을 분리할 수 없다." 뎀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그는 “구찌는 '메종'이 아니다. 쿠튀르 뿌리를 가지고 있지 않고, 신화에 기반하지도 않는다. 구찌는 실용적인 제품만큼이나 감성에 관한 슈퍼브랜드다."라고 구찌를 새롭게 정의했다. 톰 포드와 뎀나는 패션을 신성시하지 않는다. 패션은 팔려야 하고, 사람들의 삶을 향상시켜야 하며, 그 과정에서 욕망을 창조해야 한다. 톰 포드가 "패션은 욕망을 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말이다.



이번 쇼는 정신부터 스타일까지 모두 톰 포드 시대 구찌에 대한 직접적인 오마주였다. 쇼의 조명부터 그랬다. 어두운 방에 스포트라이트 하나로 모델을 따라가는 방식은 톰 포드 구찌 시대를 연, 1995 가을/겨울 쇼에서 사용했던 바로 그 스타일이었다. 컬렉션 역시 톰 포드의 1995 가을/겨울, 1996 가을/겨울, 1997 봄/여름에서 가져온 군더더기를 걷어낸 채 신체의 곡선을 따라 밀착되는, 절제된 관능의 실루엣이었다. 심리스 화이트 미니드레스, 타이트한 블랙 슬랙스, 얇은 로고 벨트, 시어한 패브릭, 보이지 않는 열접착 마감까지. 뎀나는 이를 ‘본질적으로 구찌다운 감성’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케이트 모스가 쇼의 엔딩을 담당했다. 그녀가 입은 백리스 블랙 드레스는 10캐럿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이트 골드 GG 통(thong)을 아찔하게 드러냈다. 그건 톰 포드의 1997 봄/여름 G-스트링에 대한 직접적인 오마쥬였다. 케이트 모스 역시 톰 포드 시대 구찌 런웨이에 섰던 사람이다. 뎀나는 톰 포드가 만든 구찌, 섹시하고 상업적이며 욕망을 자극하는 구찌로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냥 그 구찌를 다시 시작했다. 뎀나는 쇼 노트에, ‘헤리티지와 패션은 연인’이라 했다. 이 쇼 안에선 과거와 현재는 대립하지 않고, 공존했다.



컬렉션은 화이트 호지어리 패브릭으로 제작된 궁극의 심리스 미니드레스로 시작한다. 팜므파탈적 태도로 착용된 이 드레스는 일종의 감각을 리셋하는 오프닝이었다. 그 뒤로 이지하고 유동적인 테일러링이 이어졌고, 같은 재킷을 스커트, 레깅스 팬츠, 트라우저와 함께 입혀 사무실에서 클럽까지 모든 곳에서 착용할 수 있게 했다. 로우컷 재킷과 포켓이 달린 트라우저는 스트리트웨어 감성을 더했다. 뎀나가 집착하는 새로운 스타일 유형들도 등장했는데, 트랙수트와 드레스는 현대적인 트랙드레스로 변형되었고, 레깅스와 트라우저는 결합되었으며, 재킷과 톱 역시 몸의 라인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하나의 피스로 재탄생했다.



업데이트된 밤부 1948백과 울트라 미니멀한 맨해튼 스니커즈까지 그가 해석한 구찌의 액세서리들도 흥미로웠다. 자유롭게 맨발로 등장한 파티 보이에 이어 허벅지까지 깊게 파인 슬릿의 과감한 가운과 미니드레스 룩, 그리고 케이트 모스의 피날레 룩까지 구찌의 새로운 이야기는 날카롭고도 짜릿했다.



뎀나의 감각은 음악으로도 살아났다. 그의 파트너이자 구찌의 뮤직 디렉터 로익 고메즈가 5개의 서로 다른 장르를 큐레이션해 하나의 독특한 사운드 미학으로 형성했다. 컬렉션의 단계마다 사운드트랙이 바뀌었다. 또 런웨이에는 슈퍼모델들이 총출동했다. 케이트 모스, 카를리 클로스, 에밀리 라타코프스키, 엘사 호스크 그리고 마리아칼라 보스코노, 가브리엣, 알렉스 콘사니를 비롯해 신인 래퍼 넷스펜드와 영국 UK 개러지 장르의 떠오르는 스타 페이크밍크도 런웨이를 걸었다. 페이크밍크는 런웨이 중간에 멈춰 서서 핸드폰을 확인하는 그다운 퍼포먼스도 보여줬다. 프론트로우 역시 특별했다. 데미 무어가 그녀의 치와와 필라프를 안고 앉아 있었고, 패리스 힐튼, 니키 힐튼에 이어 한국의 박재범, 박규영, 리노, 닝닝, 그리고 도나텔라 베르사체, 알레산드로 미켈레까지 구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한 공간에 모였다.



뎀나가 석고로 만든 가짜 조각상을 사용하면서도 이를 공개한 건 중요한 제스처다. 헤리티지를 존중하지만, 그대로 복제하는 게 아니라 재해석한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흐리면서도 정직하게 접근한다. 구찌의 역사를 신성시하기보다는 실용적이고 현대적으로 다룬다. 뎀나는 쇼 전, “나는 구찌를 한 사람으로 본다. 거칠고 잊을 수 없는 과거와 명확한 코드를 가진 사람. 자신이 누구인지 완전히 알고 있지만, 동시에 불안하고 호기심 많으며 진화하고 놀라고 도전받기를 갈망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설명했다. 이번 쇼는 바로 그 진화의 시작이었다.



케어링의 새 최고경영자 루카 데 메오는 쇼 전 어느 인터뷰에서 "좋은 느낌이 든다. 구찌는 위대한 브랜드 중 하나다. 그냥 부활이 필요할 뿐이다."라고 했다. 뎀나가 선택한 부활의 방식은 명확하다. 톰 포드가 했던 것처럼 상업성을 두려워하지 않고, 욕망을 창조하며, 섹시하고 실용적인 제품을 만드는 것. 동시에 뎀나만의 방식으로 레플리카를 공개하고, 계절을 뒤집으며, 헤리티지와 패션을 연인으로 만드는 것. 팔라초 델레 스친틸레를 나서며 사람들이 본 건 가짜 대리석 조각상이 아니었다. 구찌의 새로운 부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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