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선보이는 구찌의 두 번째 챕터이자 첫 런웨이 데뷔 무대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데뷔 무대에는 언제나 해석이 앞섭니다. 변화의 규모를 가늠하려는 시선과 이전 시대와의 차이를 확인하려는 기대가 자연스럽게 따라붙기 마련이고요. 구찌의 가을-겨울 컬렉션 ‘프리마베라(Primavera)’ 역시 그렇습니다.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가 선보이는 두 번째 챕터이자, 그의 첫 런웨이 데뷔 컬렉션이었기 때문이죠.
이번 시즌의 출발점은 ‘대화’입니다. ‘프리마베라’는 이미 하우스와 교감해온 이들, 그리고 앞으로 대화를 이어가길 원하는 이들을 위한 스타일 팔레트처럼 펼쳐지죠. 서로 다른 취향과 정체성, 드레스 코드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그는 ‘구찌다움(Gucciness)’을 다층적인 얼굴로 유연하게 다시 엮어냈습니다.
‘프리마베라’는 과장된 장식을 덜어내고 신체 그 자체를 중심에 두는 방식으로 실루엣과 텍스처, 소재에 대한 새로운 어휘를 제안합니다. 가벼움과 자연스러운 움직임, 인체 구조를 반영한 설계는 집요한 개발 과정을 거쳐 완성된 ‘심리스 가먼트’로 구현되었죠. 열 마감을 통해 봉제선의 흔적을 지운 실루엣, 정교하게 계산된 곡선형 헴 라인은 옷이 몸 위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다시 정의합니다. 신체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한 이번 시즌은 1990년대 톰 포드(Tom Ford) 시대 구찌가 품었던 관능의 잔상을 은근히 환기시키죠.
밀라노의 한낮, 팔라초 델레 친틸레. 고대 조각상이 둘러싸인 장엄한 공간에서 적막을 깨고 쇼의 포문을 연 것은 화이트 컬러의 얇고 유연한 심리스 미니 드레스. 장식 대신 몸에 밀착되는 실루엣만으로 완성된 이 드레스는 이번 시즌의 방향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며 이어질 룩을 예고합니다. 뎀나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디자인 언어도 자연스럽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트랙슈트와 드레스를 결합한 트랙 드레스, 트라우저로 활용한 레깅스, ‘울트라-핏 가먼츠’ 실루엣의 재킷까지. 서로 다른 카테고리의 경계를 흐리고 기능과 형태를 교차하는 시도가 이번 시즌에도 유효하게 이어지며, 구찌의 새로운 문법을 차분하게 확장해 나갑니다.
이번 컬렉션을 관통하는 르네상스적 미학 역시 도드라집니다. 이상적 비례에서 착안한 ‘아도니스(Adonis)’ 룩, 고대 그리스를 연상시키는 드레이핑 티셔츠, 그리고 ‘비너스의 탄생’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가운까지. 고전주의가 말하는 신체의 균형과 조화는 현대적으로 조율되어 한층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확장했죠.
한편 액세서리에도 큰 변화가 돋보입니다. 구찌 뱀부 1947(Gucci Bamboo 1947)은 한층 날렵해진 실루엣으로 다듬어졌고, 상징처럼 여겨지던 대나무 핸들 대신 레더로 완성한 핸들을 적용해 절제된 인상을 남겼죠. 아카이브에서 출발한 미노디에르(minaudières) 클러치는 실용적인 구조로 정제되었고, 지오바니(Giovanni), 쿠페르티노(Cupertino)와 함께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시절 처음 등장했던 홀스빗 퍼 뮬 역시 새로운 균형감을 이루며 슈즈 라인업에 힘을 보탰습니다.
쇼의 마지막 순간, 피날레를 장식한 인물은 케이트 모스(Kate Moss).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GG 모티브 이너웨어가 은은히 드러나는 백리스 가운을 입고 등장한 그는, 특유의 여유로운 보폭으로 무대를 가로지르며 공기를 단번에 바꾸어 놓았습니다. 과거 톰 포드 시절, 구찌의 이미지를 상징했던 케이트 모스의 존재를 떠올리면, 이번 피날레는 한 시대를 정의했던 ‘구찌적 관능’의 귀환을 암시하는 순간처럼 보입니다.
‘프리마베라’는 실용주의, 곧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을 향한 선언입니다. 다양한 이들이 자연스럽게 즐기고 일상 속에 스며들 수 있는 옷. 구찌라는 이름 아래 모이는 수많은 취향과 정체성을 하나의 미학으로 엮어내는 일. 뎀나의 구찌는 해석을 앞세우기보다 옷 그 자체의 완결성으로 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