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 지난 26일 오전, 서울 용산구의 한 대형 약국. 800평 규모의 매장에는 일반의약품부터 건강기능식품, 뷰티 제품까지 별별 상품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평일 이른 시간임에도 카트를 끄는 손님 20여명이 진열대 사이를 분주히 누비는 모습은 약국이라기보다 대형 마트의 생필품 코너를 방불케 했다.
지난해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른바 ‘창고형 약국’이 우후죽순 늘고 있다. 현재 포털 사이트에서 확인되는 곳만 전국 수십여개에 달하며, 소비자들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창고형 약국은 규모와 판매 방식에서 기존 약국과 사뭇 다르다. 기존 약국이 일반의약품을 약사 뒤편 조제대 근처에 배치해 자연스러운 상담을 유도한다면, 이곳은 모든 약에 가격표를 붙여 전면에 노출한다. 환자가 약사라는 ‘검문소'를 거치지 않고 직접 상표와 가격을 비교해 고르는 구조, 즉 의약품의 ‘상품화’ 형태다.
매대 구성 역시 올리브영 같은 헬스앤뷰티(H&B) 스토어와 판박이다. 조선미녀, 메디힐 등 유명 뷰티 브랜드 제품이 전면에 배치된 모습은 약국보다는 드럭스토어에 가깝다.
현장에서 만난 소비자들은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에 큰 점수를 줬다. 용산구 주민 A씨(42)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상비약 지출이 만만치 않은데, 이곳은 감기약이나 진통제가 일반 약국보다 절반 이상 저렴해 대량으로 구매했다”고 말했다. 종로 약국거리를 찾던 발길이 대형 창고형 약국으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반면 약사계의 시선은 우려 가득하다. 약의 상품화가 보건의료 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약사회 관계자는 “의약품은 전문가의 복약 지도가 필요하지만, 창고형 약국은 ‘쇼핑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계산대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 일일이 복약지도를 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고 말했다. 자본적 이익이 보건적 가치를 압도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실제로 이날 매장에서는 감기약을 무더기로 장바구니에 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약국 측은 “구매 수량 제한이 없다”고 안내했지만, 이는 곧 오남용 위험으로 이어진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이동근 사무국장은 “특히 콧물약 성분 등은 심혈관계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고, 마약류 제조 원료로 악용될 소지도 있어 엄격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장 뜨거운 쟁점은 ‘약국의 자본화’다. 현행 약사법상 약국 개설권은 약사 개인에게만 부여된다. 1인 1약국 원칙을 통해 약료 서비스의 질과 인적 책임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창고형 약국은 막대한 초기 자본이 필수적인 만큼, 배후에 기업형 자본이 숨어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앞서 용산구에 연 약국 또한 건강기능식품 업체가 설립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서 방문한 용산구 소재 약국도 이런 의혹을 받는 곳 중 하나다. 최근 서울특별시약사회는 건강기능식품 업체 ‘주식회사 엔케이투제이’가 상표 출원한 ‘메디킹덤약국’에 대해 지식재산처(특허청)를 대상으로 거절 의견을 제출했다. 법인이 상표권을 등록한 만큼 해당 약국이 실질적으로 법인이 운영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현행 약사법 제20조 제1항에 따라 법인은 약국 개설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법인화된 자본이 경영을 주도할 경우, 약사의 전문적 소신보다 기업의 매출 실적에 우선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동근 사무국장은 “당장은 소비자가 저렴하게 약을 산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영리법인은 결국 수익 극대화를 위해 환자에게 불필요한 과다 복용을 유도하는 등 시장 왜곡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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