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지주 지배구조 변천사] ③관치 벗어난 금융지주, ‘강력한 리더십’의 명암…책임경영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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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 지배구조 변천사] ③관치 벗어난 금융지주, ‘강력한 리더십’의 명암…책임경영의 서막

직썰 2026-03-01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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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금융지주 지배구조 개선에 나서면서,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금융지주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책임 있게 지배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거졌다. 정부는 회장 권한의 과도한 집중과 장기 집권 구조 개편을 예고했다. 이를 두고 금융사의 공적 역할에 부합하는 제도 정비라는 평가와, 관치금융의 재현이라는 비판이 맞선다. <직썰> 은 한국 금융지주 지배구조의 형성과 변화를 짚고, 현재 논쟁의 역사적 맥락과 향후 과제를 살펴본다. [편집자주]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직설 손성은 기자]
(사진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직설 손성은 기자]

[직썰 / 손성은 기자] 2001년은 한국 금융산업 지배구조의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3월 우리금융지주가 설립됐고, 9월에는 신한금융지주가 출범했다.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정된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은행·증권·보험을 아우르는 지주 체제가 본격화됐다. 이는 개별 은행 단위의 생존 경쟁을 넘어, 그룹 차원의 통합 전략과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한 시대적 요구였다.

단순한 조직 개편을 넘어선 체질 개선의 신호탄이었다. 정부가 은행장 인사에 깊이 관여하던 전통적인 ‘관치 금융’의 시대에서 벗어나, 시장 중심의 경영 체제로 이동하는 구조적 전환기였다. 외풍을 방어하고 글로벌 금융사들과 경쟁하기 위해 금융그룹 내부의 의사결정 권한은 점차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고, 그 중심에는 시장의 논리를 이해하는 전문경영인이 자리했다.

◇전문경영인 체제 안착…‘강력한 리더십’ 바탕으로 외형 확장 주도

2000년대 출범한 신한금융지주는 라응찬 전 회장 체제를 약 9년간 유지했다. 2001년 9월 지주 출범과 함께 회장에 오른 그는 2010년 10월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룹의 중장기 전략과 조직 융합을 총괄했다.

하나금융지주 역시 김승유 전 회장이 강력한 구심점 역할을 했다. 김 전 회장은 1997년 하나은행장 취임 이후 환란의 파도를 넘으며 은행을 이끌었고, 2005년 지주 출범과 함께 대표이사 회장으로 선임돼 2012년까지 그룹의 굵직한 인수합병(M&A)과 성장을 주도했다.

당시 금융지주들은 재편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공격적인 외형 확장과 글로벌 진출이 절실했던 시기였다. “빠른 의사결정과 일관된 전략 추진이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는 당시 금융권의 회고처럼, 전문경영인의 장기 재임은 전략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조직의 실행력을 극대화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다만, 실질적 대주주가 없는 ‘소유 분산 구조’ 아래에서 회장에게 전략과 인사의 권한이 모이는 현상은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그리고 신속한 성장을 위해 불가피했던 권한 집중이, 향후 견제 기능의 실효성 확보라는 지배구조상의 숙제를 남겼다.

◇권한 집중과 견제 장치의 불균형…4대 금융지주의 공통 과도기

2010년대를 전후로 불거진 일련의 사태들은 새롭게 정립된 지배구조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준 시험대였다. 신한, KB, 하나, 우리 등 주요 4대 금융지주는 각기 다른 양상으로 지배구조의 구조적 과제를 노출하며 과도기적 시행착오를 경험했다. 그룹의 외형 성장을 위해 구심점 역할을 하는 최고경영자(CEO)에게 권한이 집중된 반면, 이를 견제할 이사회의 독립성과 내부 통제 장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던 결과다.

대표적인 사례가 신한금융지주와 KB금융지주에서 발생한 경영진 간의 갈등이다. 2010년 이른바 ‘신한사태’로 불리는 최고경영진 간의 이견 충돌과 법적 절차는 단기적으로 시장의 우려를 낳았다. 이어 2014년 KB금융지주에서도 주전산기 교체를 둘러싸고 지주 회장과 은행장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으며 이른바 ‘KB사태’로 이어졌다. 이는 소유 분산 구조 속에서 경영진 간의 갈등이 조기에 봉합되지 못할 경우, 조직 전반의 불확실성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사례로 기록됐다.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역시 결은 다르지만 집중된 권한과 환경적 요인에 따른 지배구조의 숙제를 안고 있었다. 하나금융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굵직한 인수합병(M&A) 등 외형 확장을 이뤄냈으나, 장기 재임에 따른 권한 집중과 실효성 있는 견제 기능 확보라는 과제를 남겼다. 우리금융의 경우, 공적자금 투입 기관으로서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구조적 특성상, 지주의 자체적인 의사결정보다 외부 환경의 영향력이 개입될 여지가 커 온전한 책임경영 안착에 시일이 걸렸다.

이러한 4대 금융지주의 사례는 특정 개인이나 조직의 엇갈림을 넘어, 당시 지배구조 제도가 안고 있던 공통된 한계로 분석된다. “당시의 갈등 양상은 소유 분산 구조를 채택한 한국 금융지주 체제가 성숙해지기 위해 거쳐야 했던 지배구조의 스트레스 테스트였다”는 것이 금융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련의 과정들은 지배구조 리스크를 부각시켰으나, 장기적으로는 투명한 의사결정 체계를 재점검하고 이사회 중심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핵심적인 계기로 작용했다.

◇완전한 독립 향한 과도기…금융지주 옥죈 ‘외풍’과 관치의 그림자

2000년대의 금융지주 체제는 1980~90년대식 직접적 관치 금융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시장 중심 경영이 뿌리를 내렸지만, 당시의 정치·경제적 환경은 금융지주가 온전한 독립성을 유지하기에 녹록지 않았다.

2008년 우리금융지주는 이팔성 전 회장을 선임했다. 현대건설 출신인 이 전 회장의 취임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라는 시기적 특성과 맞물려 ‘친정부 인사’라는 외부의 평가를 받았다. 당시 우리금융은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로 있는 공적자금 투입 기관이었기에, 금융지주 자체의 의지와 무관하게 회장 선임 과정에서 정치적 역학 관계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존재했다.

2010년 민간 금융사인 KB금융지주 회장에 선임된 어윤대 전 회장 역시 비슷한 맥락의 논쟁에 휩싸였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학자 출신으로 대선 캠프 활동 이력이 부각되며 ‘코드 인사’라는 지적이 일었다. 선임 절차 자체는 이사회를 중심으로 적법하게 이뤄졌으나, 정권과의 인연이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이러한 사례들은 금융지주 내부의 지배구조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한국 금융산업이 직면했던 정치·사회적 환경의 척박함을 방증한다. 금융지주 스스로가 외풍을 완벽히 차단하기에는 외부의 영향력이 여전히 막강했던 과도기적 딜레마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새로운 권력 지형의 안착…견제와 균형 향한 지배구조 진화의 여정

결과적으로 2000년대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현대적 지배구조 속에서, 위기 극복과 성장을 위해 전문경영인(회장)에게 전략적 권한이 집중되는 현상이 자리 잡은 시기였다. 관의 직접 통제가 물러난 자리에 글로벌 스탠더드를 향한 전문경영인의 책임경영이 들어섰고, 이는 한국 금융산업의 양적·질적 팽창을 이끈 원동력이었다.

동시에 이 시기는 강력한 리더십이 장기 재임으로 이어지는 토대를 형성하면서, 권한의 집중만큼이나 이를 견제하고 균형을 맞출 제도적 장치가 얼마나 정교하게 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졌다. 2010년대 이후 한국 금융지주의 권력 구조는 이 같은 시대적 요구와 고민을 안고 또 한 번의 중대한 진화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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