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하수민 작가] 앞선 글에서 살펴본 작가들의 자화상은 단순히 자신의 얼굴을 남기는 그림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보여준다. 자화상은 한 사람이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다양한 방식들을 포용한 장르라 볼 수 있다.
이번에 진행했던 일련의 수업들을 통해 이전까지 창작자의 입장으로 생각하기보다 이론적인 측면에 국한되어 도판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던 나의 태도를 다시금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여태 작업을 하면서 나의 모습을 그린 적이 있어도,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이 나라는 인식에서 출발한 적이 없었다. 그냥 하나의 소재이자 이미지로서 소모했던 것 같다. ‘왜 그 대상이 나의 모습이어야 했을까?’라는 질문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는 ‘무엇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지, ‘왜 나를 그리고 있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그리면서도, 그것을 자화상이라고 인식하지 않았던 셈이다.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보려 했기 보다, 표현을 위해 편리한 형상을 가져다 쓴 것에 가까웠다.
수업을 진행하며 나는 ‘자화상’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쉽게 사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인을 그리면 초상화, 나를 그리면 자화상이라 간편하게 구분하지만, 정작 그 안에 어떤 의식이 담겨 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이야기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나 역시 그 흐름 속에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나를 그리면서, 그것이 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쩌면 내가 여태 그림을 그려오는 일이 진정한 자기표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화상은 나를 닮게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나를 어떤 존재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과정이기에 얼굴이 반드시 등장하지 않아도 되고, 실제 모습과 꼭 같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지점은 형상이 나를 대신할 수 있는가에 있지 않고,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이해를 어떻게 구성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드러내는가에 있다.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이번 활동은 그런 생각의 출발점이 되었다. 누군가에게 자화상은 단순한 자기 묘사일 수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될 수도 있다. 그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서, 나 또한 앞으로 나의 작업을 조금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이제는 화면 속에 내가 등장할 때, 그 형상이 단순한 소재에 머무르는지, 아니면 나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스스로 묻게 될 것 같다. 어쩌면 자화상은 결과로 남는 그림이라기보다, 작업을 시작하는 태도에 조금 더 가까운 말인지도 모르겠다. 자화상은 결국 형식이 아니라, 자신을 인식하는 하나의 행위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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