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자판기 커피서 출발…축제·교육·창업으로 점차 확장
'커피 도시' 강릉 대표 공간으로 자리매김…지역 소멸 대응 역할
[※ 편집자 주 = 저출산·고령화와 청년 유출로 지역 소멸 위기가 커지는 가운데 연합뉴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각 지역의 숨은 자랑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재발견하는 기획을 시작합니다. 문화·경제·사회 전반에서 인물, 음식, 문화재, 특산물, 관광지 등은 물론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닌 다양한 아이템을 발굴해 매주 토요일 송고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지역의 자부심 제고, 관광 활성화,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 등을 추진함으로써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강릉=연합뉴스) 류호준 기자 = 동해의 푸른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을 따라 고소한 원두 향이 번진다.
통유리 넘어 카페 안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 향으로 가득하다.
두 손으로 잔을 감싸 쥔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잔잔한 수평선이 펼쳐진다.
강원 강릉시 안목해변 일대에 형성된 커피 거리의 일상적인 풍경이다.
이곳은 이제 단순한 해변 인근 상권을 넘어 '커피 도시' 강릉을 대표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동해 해변을 기반으로 형성된 커피 문화는 강릉을 대표 산업으로 확장되며 지역 소멸 대응 전략의 한 축으로 평가받는다.
◇ 소박했던 출발…파도 소리 벗 삼아 마시던 자판기 커피
1980년대 해변 인근 도로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바다를 감상하던 문화가 커피 거리의 시작으로 전해진다.
당시 안목해변은 지금처럼 카페 건물이 줄지어 선 모습이 아니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도로 옆에 세워진 자판기 앞에 서서 동전을 넣고 종이컵을 받아 들던 풍경이 전부였다.
관광객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손에 쥔 채 모래사장이나 방파제에 걸터앉아 동해를 바라봤다.
파도 소리와 함께 마시는 달콤한 믹스커피 한 잔은 소박했지만, 그 자체로 여행의 한 장면이었다.
이후 1990년대 들어 카페들이 하나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실내에 앉아 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가세하면서 거리는 점차 '커피 거리'의 형태를 갖춰갔다.
안목은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공간을 넘어, 바다 풍경을 감상하며 '머무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통유리 창이 설치되고, 테라스 좌석이 생겨나면서 방문객들은 바다를 배경 삼아 더 오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 창가에 앉아 즐기는 커피와 바다…사계절 내내 '북적북적'
커피 거리는 사계절 내내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빈다.
여름철 피서객은 물론 겨울 바다를 찾는 여행객들도 이곳을 빼놓지 않고 방문한다.
주말이면 해변 도로는 차량과 사람들로 북적인다.
창가 자리에 앉기 위해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관광객들은 커피잔을 들고 통유리 너머로 펼쳐진 동해를 카메라에 담는다.
일출 명소로도 알려진 만큼 이른 새벽부터 문을 여는 매장도 적지 않다.
붉게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김이 오르는 커피잔을 촬영하는 장면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다.
카페마다 인테리어와 메뉴는 다르지만, '바다를 품은 공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2층, 3층으로 확장된 대형 매장부터 소규모 로스터리 카페까지 각기 다른 분위기를 자랑한다.
방문객들은 취향에 따라 공간을 선택하고, 그 경험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한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안목 일대는 커피 거리를 중심으로 상권을 확장했다.
제빵소와 브런치 전문점, 디저트 숍, 소품 숍, 게스트하우스 등이 자리 잡으며 관광 동선이 자연스럽게 길어졌다.
커피 한 잔이 숙박·식사·쇼핑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형성되면서 지역 경제 전반에 파급 효과를 미쳤다.
단순 소비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관광 클러스터로 기능하는 셈이다.
지역 상인들 역시 커피 거리 브랜드에 맞춰 외관과 메뉴를 개선하며 경쟁력을 높여왔다.
◇ 2009년 커피 축제 시작…단일 축제 지역 경제 파급효과만 970억
커피 거리의 성공은 도시 차원의 브랜드 전략으로 이어졌다.
강릉시는 2009년부터 강릉 커피 축제를 개최하며 커피 산업을 지역 대표 콘텐츠로 육성하고 있다.
커피 축제는 해마다 수십만 명이 찾는 행사로 성장했다.
바리스타 경연대회, 로스팅 체험, 원두 산지와의 교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가 더해지며 단순한 축제를 넘어 산업 교류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외 커피 전문가와 애호가들이 강릉을 찾으며 도시 이미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지난해 이곳에서 열린 '제17회 강릉 커피 축제'에는 총 52만명이 방문했다.
방문객 총소비지출액은 약 442억원으로 추산된다.
방문객 중 지역 주민은 18만명, 외지 방문객은 34만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의 소비 활동이 지역경제에 미친 파급효과는 총 970억원에 달한다.
지역 대학과 연계한 바리스타 교육 과정, 청년 창업 지원 정책도 뒤따르고 있다.
커피 관련 학과와 교육기관에서 배출된 인력이 다시 지역 카페 창업으로 이어지며 산업 생태계가 구축됐다.
생산·가공·유통·소비가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루는 모델이 형성된 것이다.
인구 감소와 청년 유출 등 이른바 '지역 소멸'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커피 산업은 강릉의 신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대규모 개발 사업이 아닌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생적 상권 모델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강릉 커피 산업 발전을 위한 과제도 남아있다.
가톨릭관동대 김호석 교수팀은 지난 2024년 시의회에 제출한 '강릉시 커피산업 활성화 방안 연구' 최종 보고서에서 차별화된 커피 축제의 고도화를 위해 강릉만의 커피 축제 인지도 확보 전략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주요 과제로는 커피 축제 시기 및 장소 고정화, 계절별 축제와 연계한 커피 행사 및 축제 개최, 분기별 대회 및 축제 개최로 사계절 커피와 함께하는 커피 도시 이미지 조성 등을 꼽았다.
김 교수팀은 보고서에서 "다양한 행사, 커피 관련 대회 및 커피 축제를 통해 국내 최고 커피 도시 강릉의 위상을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y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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