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는 시간을 가로지르는 치열한 재해석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화가 새로운 형식과 배우, 플랫폼을 입고 돌아올 때, 관객은 원작의 기억과 현재의 감각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낯선 스파크를 경험한다. 2026년, 한국 영화사의 상징적인 두 편이 시리즈라는 새로운 캔버스 위에 다시 그려진다. 정절과 유혹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던 조선의 탐미적 스캔들, 그리고 귀신 때문에 평범한 연애조차 사치가 되어버린 기묘한 로맨스. 원작의 잔상을 지우고 새로운 미학을 써 내려갈 두 편의 기대작을 살폈다.
욕망의 문법을 다시 쓰다: 〈스캔들〉, 23년 만의 귀환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일본 포스터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스틸
2003년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는 유교적 질서의 빈틈을 파고들어 욕망의 민낯을 탐미적으로 펼쳐 보였다. 이미숙, 전도연, 배용준이 완성한 치명적인 삼각 구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적 사건이었다. 23년이 흐른 지금, 이 농밀한 서사는 넷플릭스 시리즈 〈스캔들〉로 부활한다.
메가폰을 잡은 정지우 감독은 〈은교〉와 〈썸바디〉를 통해 인간 본능 아래 도사린 균열과 결핍을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포착해왔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떠올리면 이번 리메이크는 감정의 밀도를 정밀하게 재조정하는 세밀한 공정에 가깝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새로운 '조씨부인'의 탄생이다. 막후에서 사랑의 판을 짜는 전략가, 이미숙이 구축한 범접 불가한 아우라를 이제 손예진이 이어받는다. 사랑을 게임처럼 설계하고 욕망의 패를 조율하는 여장부로서, 손예진의 조씨부인은 원작의 서늘함을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인 주체성을 덧입히며 기대를 모은다. 조선 최고의 연애꾼 조원 역의 지창욱, 억눌린 정조 뒤에 숨은 욕망을 표현할 희연 역의 나나까지 합류하며 고전적 스캔들은 비로소 2026년의 감각적인 문법으로 치환된다.
설렘에 장르를 덧입히다: 〈오싹한 연애〉, 로맨스의 확장
영화 〈오싹한 연애〉 포스터
영화 〈오싹한 연애〉 포스터
2011년 영화 〈오싹한 연애〉는 귀신을 보는 여자(손예진)와 겁 많은 마술사(이민기)의 로맨스를 통해 공포와 설렘의 변곡점을 명확히 짚어냈다. 서늘하지만 사랑스러운 이 감정의 엇박자는 로맨틱 코미디의 지평을 한 단계 확장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15년 만에 tvN 드라마로 돌아오는 리메이크작은 원작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층 과감한 변주를 시도한다.
귀신 탓에 고립되었던 여주인공은 호텔 재벌 상속녀(박은빈)로 재해석되고, 마술사는 열혈 검사(양세종)로 옷을 바꿔입었다. 오컬트적 호기심과 수사물 특유의 서사가 결합하면서 장르적 스펙트럼은 더욱 견고해진다. 원작의 '오싹한 설렘'은 입체적인 구조 안에서 재조합된다. 과거의 공포가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면, 이제 공포와 수사는 두 사람의 관계를 매개하고 확장하는 세련된 장치로 기능한다.
손예진이라는 교차점: 계승하고, 또 전수하다
흥미롭게도 이 두 리메이크의 한가운데 한 배우의 이름이 놓인다. 2011년 〈오싹한 연애〉에서 독보적인 캐릭터를 완성했던 손예진은, 15년이 흐른 지금 이미숙의 조씨부인을 이어받아 〈스캔들〉의 중심축에 선다. 누군가가 남긴 자리를 자신만의 색으로 채우고, 동시에 자신이 머물던 자리를 박은빈이라는 다음 세대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모양새다. 배우로서 이토록 유의미한 계보의 중심에 서 있다는 사실은, 최근 영화 〈어쩔 수가 없다〉로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거머쥐며 증명한 그녀의 여전한 전성기와도 긴밀히 맞닿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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