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대법원이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단하면서 관세 환급을 둘러싼 권리 거래가 월가의 새로운 투자처로 떠오르고 있다. 기업들이 이미 납부한 관세를 돌려받을 수 있는 ‘관세 환급 청구권’을 시장에서 매각하거나 매입하는 사례가 늘어나며 관련 시장이 빠르게 형성되는 모습이다.
25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일부 기업은 복잡한 환급 절차와 소송 부담을 감수하는 대신, 정부에 관세 환급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할인된 가격에 매각하고 있다. 중개인들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 이전에는 환급 청구권이 액면가 1달러당 약 0.2달러 수준에 거래됐으나, 판결 직후에는 약 0.4달러까지 오르며 두 배로 뛰었다.
투자자문사 애셋 인핸스먼트 솔루션스의 매니징 디렉터 닐 세이든은 “지금 환급액의 40~45% 수준에 매각할지, 더 높은 가격을 기대할지, 아니면 100% 환급을 기다릴지가 기업들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크리스마스 장식품, 의약품, 수입 식품 등을 판매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총 2000만 달러 규모의 환급 청구권 거래를 진행한 바 있다.
다만 대형 투자자들은 일반적으로 1000만 달러 이상의 대규모 청구권을 선호하는 만큼, 소규모 기업은 권리 매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WSJ은 자금 여력이 있는 대기업의 경우 소송 비용을 감당하며 장기간에 걸쳐 전액 환급을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관세 환급 청구권 거래는 채권 시장에서 새로운 투자 기회로 인식되고 있다. 세금 환급 청구권이나 파산 기업 채권 등 각종 법적 권리를 사고파는 시장의 연장선상이다. 과거 헤지펀드들이 파산한 암호화폐 기업 FTX의 채권이나 리먼브러더스의 청구권을 매입해 수익을 거둔 사례와 유사한 구조다.
이번 사안은 대법원이 지난 20일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대통령의 관세 부과를 위법으로 판결하면서 촉발됐다. 다만 133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관세 환급 여부에 대한 구체적 판단은 미국 국제무역법원(CIT)에 맡겨진 상태다. 환급까지는 수년이 걸릴 수 있지만, 청구권 가격이 급등한 것은 환급 가능성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가 높아졌음을 보여준다.
환급 청구권을 매입한 풀크럼 캐피털의 대표 매튜 해밀턴은 “대법원이 관세 납부자의 손을 들어줄 것으로 확신한다”며 추가 매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일부 월가 투자은행들도 수수료를 받고 거래를 중개하고 있다. 중개인들은 아직 시장 규모는 작지만 관심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폴리앤라드너의 한 관계자는 “과거 거래를 거절했던 고객들도 환급 청구권 판매를 재검토하고 있다”며 기업들이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법적 절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일부 투자자는 환급 청구권 매입과 함께 기업의 법률 비용까지 부담하는 구조로 거래에 참여하고 있다. 다만 실제 환급 신청은 해당 수입업체가 직접 해야 한다.
WSJ은 현재까지 최소 1800개 기업이 관세 환급 소송을 제기했으며, 참여 기업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미 관세국경보호청(CBP)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최소 30만1000명의 수입업자가 무효 판결이 내려진 관세의 적용을 받았고, 이 가운데 개인 구매자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안을 과거 석면 피해 보상 소송에 비견하고 있다. 다만 이번 관세 소송은 거의 동시에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관세 환급을 둘러싼 법적 다툼이 본격화되면서, 월가의 청구권 시장 역시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
차승민 기자 smcha@nv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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