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한민국 남성들의 백화점'으로 불렸던 용산 전자상가 일대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의 대중화로 오랜 기간 침체의 늪에 빠졌던 용산 전자상가 일대는 최근 전 세대를 겨냥한 '경험 중심 소비' 전략을 앞세워 과거의 위상을 서서히 되찾아 가고 있다. 단순히 전자 제품을 사고·파는 공간을 넘어 전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의 거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중고 플랫폼에 없는 물건, 용산엔 다 있어요" 서브컬처 문화 파고든 전자메카의 생존 전략
27일 서울 용산구 아이파크몰 리빙파크 3층에 위치한 '도파민 스테이션'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방문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브컬처(하위·부분문화)'를 주제로 기획된 이곳에선 애니메이션 캐릭터, 게임 등 특정 마니아층을 공략한 체험형 전시 및 상품 판매가 이뤄지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중·장년층, 청소년, 커플, 가족 등 다양한 형태의 고객층이었다. 고객들은 공간 내 전시물과 체험형 콘텐츠를 각자의 방식대로 소비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캐릭터 사진 옆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동안 인근 체험형 게임존에서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콘텐츠를 즐기는 식이었다.
특정 매니아층에 국한됐던 서브컬처 문화가 전 세대가 함께 즐기는 주류문화로 발돋움하는 최근의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졌다. 현장을 찾은 소비자들의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자녀들과 함께 매장을 찾았다는 조영은(32·여·가명) 씨는 "과거의 용산 전자상가는 폐쇄적이고 어두운 분위기로 가족 단위 방문객이 찾기엔 부담되는 측면이 많았다"며 "하지만 지금은 밝고 개방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콘텐츠를 직접 체험할 수 있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서 찾은 용산 전자랜드 4층에 자리한 '게임 특화 구역'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가전제품과 IT기기 매장이 밀집한 1~3층과 달리 건물 4층은 최신 기기부터 수십 년 전 출시된 중고 게임기를 판매하는 매장들로만 채워져 있었다. 온라인에서조차 구하기 힘든 레트로 게임기를 구하려는 소비자들이 유독 많아 보였다. 한 상점 점원에 따르면 'Y2K' 감성이 유행하며 '닌텐도 3DS' 등 단종된 기기의 중고 시세가 급등하면서 소비자들이 부쩍 늘었다.
실제로 이곳에서 만난 소비자들 중 상당수는 최긴 기기 보단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중고 또는 단종된 기기를 찾는 이들이었다. 대학생 박희수 씨(24·남·가명)는 "요즘 옛날 게임을 즐겨하고 있는데 기기나 게임CD도 예전 걸로 해야 확실히 감성이 살아나는 것 같아 구경하러 왔다"며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구하기 어려운 제품들이 많아 종종 이곳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용산 전자상가 곳곳에 이러한 매니아층을 겨냥한 공간들이 생겨나고 있는 배경에는 '희소성'과 '타깃 소비층 설정'으로 한 상인들의 생존 전략이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인들은 온라인 쇼핑 발달로 오프라인 쇼핑을 즐기는 소비자들이 줄어들어 이곳만의 특별한 무언가가 없인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에 변화를 시도했다고 입을 모았다. 20년 가까이 용산에서 게임CD를 판매했다는 한 상인은 "최신 게임의 경우 온라인 플랫폼의 가격 경쟁력과 할인 혜택에 밀려 오프라인 판매 비중이 급격히 줄었다"며 "그래서 선택한 전략이 온라인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옛날 게임 칩과 기기를 찾는 매니아층을 노리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용산 전자상가 일대의 변화는 '필요'에서 '경험'으로 바뀐 소비자들의 성향 변화와 맞물려 앞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홍주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용산 전자상가 일대는 전자제품 도매나 조립상가 이미지로 인해 제한적인 소비자들만 찾는 목적형 방문 중심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온라인 쇼핑이라는 강력한 경쟁자의 등장으로 큰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며 "하지만 최근 체류와 경험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복합 소비 공간으로 성격이 점차 바뀌고 있는데 경험을 중시하는 소비 성향에 부합하는 측면이 많아 앞으로도 다양한 연령대의 발길이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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