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가 지속적인 성장세 속에서도 시장이 던지는 질문은 늘 같다. 얼마나 더 오를 수 있는지가 아니라, 상승 추세 속에서 충격이 왔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다. 최근 시장은 방향성 자체는 상승 기조를 유지하고 있지만, 변동성 확대 구간에서 산업별 체력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27일 기준 반도체·방산·철강·건설기계 업종의 실적 흐름과 투자 전략을 종합하면, 시장이 산업을 평가하는 기준은 한층 분명해졌다. 반도체와 방산은 수요 가시성과 현금 창출력이 뒷받침된 ‘현금흐름 중심 산업’으로, 철강과 건설기계는 투자 사이클과 원가 변수에 민감한 ‘자본 사이클 산업’으로 구분되고 있다. 겉으로는 이익 개선 흐름이 공통적으로 나타나지만, 이익의 질과 지속 가능성은 서로 다른 구조 위에 형성돼 있다는 점이 시장의 핵심 판단 기준으로 작동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쌍두마차로 하는 반도체는 ‘메모리 가격이 올랐다’는 1차원 뉴스에서 이미 한 발 더 나아가 있다. 시장이 보는 핵심은 가격(ASP) 반등이 아니라 수요의 성격 변화다. AI 서버 중심의 메모리는 스마트폰·PC처럼 계절과 경기의 흔들림을 그대로 맞는 소비재 수요가 아니라, 데이터센터의 설비투자(Capex)·전력(opex)·모델 학습·추론 운영비와 묶여 움직이는 ‘인프라 수요’에 가깝다. 이 구조는 회계적으로도 차이를 만든다. 과거에는 재고(완제품·원재료) 평가와 출하 타이밍이 이익을 흔들었다면, 지금은 제품 믹스(HBM·서버 DDR5·기업용 SSD)와 고부가 패키징·공정 전환 비용이 손익의 스위치를 쥔다. 즉 “매출이 늘었다”가 아니라, 매출 1원당 남는 현금의 질이 바뀌는 국면이다.
다만 AI 수요가 실적 변동성을 ‘완전히’ 지워 주는 건 아니다. 반도체의 고질은 늘 재고와 가동률이다. 가격 상승이 둔화되는 순간, 고객사는 주문량을 줄이는 방식이 아니라 납기 조정·재고 정상화(디스톡)로 즉각 반응한다. 그때부터 손익의 핵심은 판매량이 아니라 고정비 레버리지로 바뀐다. 감가상각비·라인 유지비가 큰 산업에서 가동률이 몇 %만 흔들려도 마진이 급격히 밀린다. 게다가 AI 메모리 경쟁은 단순히 “더 많이 팔면 끝”이 아니라 수율, 공정 전환 속도, 고사양 제품의 초기 비용(개발·라인 전환·패키징) 처리가 같이 가는 싸움이다. 시장이 경계하는 건 ‘업황’이 아니라, 호황 구간에서의 Capex 집행이 다음 분기의 감가·원가 구조를 어떻게 바꿀지다. 반도체는 결국 P/L보다 현금흐름표에서 답이 나온다. 영업이익이 늘어도 운전자본(재고·매출채권)과 Capex가 같이 뛰면, ‘이익’은 곧바로 ‘현금’이 되지 않는다. 2/27 시장이 보는 건 딱 그 지점 즉, 이익의 질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중심으로 한 방산은 안정성의 문법이 다르다. 방산은 사이클 산업이 아니라 계약 산업이고, 가격이 아니라 잔고(backlog)와 인식(Revenue recognition) 구조가 중심이다. 투자자 입장에서 방산은 ‘매출이 늘었다’보다 “이미 따 놓은 매출이 언제, 어떤 마진으로 P/L에 들어오느냐”가 더 중요하다. 회계적으로는 납기·검수·진도 기준에 따라 매출·원가가 나뉘고, 프로젝트가 커질수록 WIP(미청구공사·계약자산), 선수금(계약부채), 충당부채(보증·지체상금 가능성)가 재무제표에 그늘과 빛을 동시에 만든다. 그래서 시장이 보는 리스크는 ‘수주가 없다’가 아니라, 수주가 있어도 분기 실적이 흔들리는 지점 즉, △납기 지연 △검수 지연 △환율 △원가 상승분의 전가(가격조정 조항) △하도급·부품 공급망 병목 같은 '타이밍 리스크'다.
환율 변수도 방산은 성격이 다르다. 단순히 원·달러가 오르면 좋다 수준이 아니라, 계약 통화·헤지 비율·부품 조달 통화가 엇갈리면 손익은 얼마든지 비틀린다. 매출 인식은 진행되는데 결제는 뒤로 밀리는 구조에서는, 현금흐름의 타이밍이 실적보다 먼저 주가에 반영된다. 그럼에도 방산이 제조업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분명하다. 다른 업종이 수요·가격·재고의 삼중고에 흔들릴 때, 방산은 계약으로 매출 경로가 ‘잠금(lock-in)’돼 있고, 수주 잔고가 곧 미래 매출의 반석이 된다. 그래서 시장은 방산을 '성장 산업'이라기보다 가시성이 높은 '현금흐름 산업'으로 분류한다. 단, 그 가시성의 시험대는 언제나 ‘규모’가 아니라 ‘납기’다.
포스코홀딩스·현대제철·세아베스틸지주로 이어지는 철강 산업은 표면적으로 이익이 회복됐지만,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보수적이다. 핵심 이유는 이익의 ‘출처’다. 최근 수익성 개선의 상당 부분이 판매량 확대나 판가 상승이 아니라 원재료 가격 하락에 따른 스프레드(제품가격–원가) 확대에서 발생했기 때문이다. 철강의 이익은 매출이 아니라 스프레드에서 나오는데, 이 스프레드는 경기보다 더 빠르게 움직인다. 철광석과 원료탄 가격이 반등하는 순간, 판가 전가가 지연되면 마진은 곧바로 압축된다. 시장이 철강 실적을 ‘호황’으로 해석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의 이익은 수요 사이클이 아니라 원가 사이클의 산물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철강 산업의 구조적 한계는 자본집약도에서도 드러난다. 대형 고로·전기로 설비는 감가상각과 유지보수 비용이 크고, 가동률이 몇 %만 흔들려도 영업이익률이 크게 변한다. 즉 철강은 가격 산업이 아니라 가동률 산업에 가깝다. 여기에 건설 경기 둔화가 겹치면 내수 판매 비중이 높은 봉형강 등은 곧바로 출하 압력을 받는다. 자동차강판이나 특수강처럼 상대적으로 방어력이 있는 제품군이 존재하지만, 산업 전체 밸류에이션은 결국 전방 산업의 투자 사이클을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다. 시장이 철강을 구조적 성장 산업이 아니라 경기 민감 자산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여기에 더해 탄소 비용은 철강의 장기 밸류에이션을 누르는 또 하나의 축이다. 배출권 가격 상승과 탈탄소 설비 투자(전기로 전환·수소환원·전력 사용 확대)는 단기적으로는 비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의 전제가 된다. 문제는 이 전환 비용이 당장의 현금흐름을 압박한다는 점이다. 철강 기업의 투자 스토리가 성장이라기보다 “비용을 들여 미래 리스크를 줄이는 구조조정형 투자”로 읽히는 이유다. 결국 시장이 보는 핵심은 이익의 절대 규모가 아니라, 원가 상승과 수요 둔화 국면에서도 유지될 수 있는 스프레드 방어력과 현금창출력의 지속 가능성이다.
HD현대건설기계와 두산밥캣으로 대표되는 건설기계 업종은 전형적인 투자 사이클 산업의 전개 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최근 외형은 확대됐지만 이익률은 동시에 압박받는 국면인데, 이는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라 산업 구조적 특성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건설기계는 수요가 발생한 뒤 곧바로 매출로 이어지는 소비재와 달리, 수주 → 생산 → 인도 → 현금 회수까지 시차가 긴 장주기 산업이다. 이 과정에서 재고와 매출채권이 동시에 늘어나며 운전자본이 확대되고, 이는 곧바로 영업현금흐름을 제약한다. 시장이 매출 성장에도 불구하고 밸류에이션을 공격적으로 높이지 않는 이유다.
최근 수익성 둔화는 구조조정 비용과 투자 부담이 겹친 결과이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글로벌 투자 사이클의 속도 조절이다. 건설기계 수요는 건설 경기뿐 아니라 광산·에너지·공공 인프라 투자에 동조하는데, 이 투자 사이클이 둔화되는 순간 신규 장비 판매는 급격히 탄력을 잃는다. 특히 선진 시장은 교체 수요 비중이 높아 경기 민감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신흥시장 비중이 높을수록 업황 변동성은 커진다. 이 때문에 업종 전체 실적은 매출 증가 여부보다 주문잔고(Book-to-Bill)와 장비 가동률이 더 중요한 선행 지표로 작용한다.
현금흐름 구조 역시 시장 평가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건설기계는 판매 확대 국면에서 재고 축적과 금융 프로그램(할부·리스 지원)이 늘어나며 운전자본이 빠르게 증가한다. 이때 회계상 이익은 늘어도 잉여현금흐름은 오히려 줄어드는 ‘이익과 현금의 괴리’가 발생한다. 여기에 금리 상승기에는 고객 금융 부담이 커지면서 판매 속도까지 둔화된다. 결과적으로 건설기계 기업의 밸류에이션은 단순 실적이 아니라 현금 전환 속도와 부채 레버리지 관리 능력에 의해 결정된다.
시장이 보는 핵심은 외형 성장 자체가 아니다. 글로벌 인프라 투자 사이클이 둔화되는 환경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현금을 회수하고, 애프터마켓(부품·정비) 비중을 높여 수익 구조를 방어할 수 있느냐다. 이 업종이 성장주보다 경기 민감 자산으로 평가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 있다. 건설기계 기업의 주가는 결국 매출이 아니라 투자 사이클의 방향과 현금흐름의 질에 의해 움직인다.
결국 산업별 리스크는 하나의 지표로 수렴된다. 이익 감소의 폭이 아니라, 현금이 줄어드는 속도다. 회계상 이익은 가격·회계 처리·일회성 요인에 따라 흔들릴 수 있지만, 현금흐름은 기업의 실제 체력을 보여준다. 최근 증시 자금이 반도체와 방산으로 이동하는 흐름 역시 같은 맥락이다. 두 산업은 매출 변동성보다 현금 창출 가시성이 높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반면, 철강과 건설기계는 이익이 개선되더라도 운전자본과 투자 사이클 영향으로 현금흐름 변동성이 크다. 업종 간 주가 격차가 확대되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3월 시장을 움직일 핵심 변수도 금리나 환율 자체라기보다, 그 변화가 각 산업의 현금흐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다. 같은 거시 환경에서도 현금 창출력이 안정적인 산업은 밸류에이션이 유지되고, 그렇지 못한 산업은 할인 폭이 확대된다. 이번 사이클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단순히 실적이 좋은 기업이 아니라, 매출이 흔들려도 현금 유입 구조가 유지되는 기업일 가능성이 크다. 시장이 지금 선택하는 기준은 성장률이 아니라 현금흐름의 지속 가능성이다.
한화투자증권은 이날 발표한 3월 월간 플레이북에서 “변동성 확대 구간에서는 이익 증가율보다 현금흐름의 안정성이 시장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며 “수주 기반 산업과 구조적 수요가 확보된 업종을 중심으로 한 선별적 접근이 유효한 전략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뉴스로드] 최지훈 기자 jhchoi@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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