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N유산] 둥근 탑신에 담긴 고려의 우주관,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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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N유산] 둥근 탑신에 담긴 고려의 우주관,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

뉴스컬처 2026-02-27 16:26:4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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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국보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은 고려 전기 불교 조형미의 정수를 보여주는 승탑이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나, 본래 충청북도 충주 하천리 정토사 터에 세워졌던 것을 1915년 경복궁으로 옮겼다가 2005년 용산 박물관으로 이전했다. 유구한 시간의 층위를 품은 채 장소를 옮겨 다닌 이력 자체가 한국 근대 문화재 수난사와 보존사의 단면을 드러낸다.

천 년의 시간을 품은 돌 한 기가 박물관의 정적 속에 서 있다. 둥글게 부푼 탑신과 치밀하게 새겨진 문양은 한 시대의 신앙과 권력을 응축한 상징처럼 다가온다.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은 고승 한 사람의 입적을 기리는 조형물이면서, 동시에 고려라는 왕조가 불교를 통해 구축한 정신적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증언하는 유산이다.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은 고려 현종 8년(1017)에 입적한 홍법국사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옆에 세워졌던 탑비의 비문이 그 근거다. 현종 대는 거란의 침입 이후 국가 체제를 재정비하던 시기로, 불교는 왕권의 정신적 기반이자 사회 통합의 이념적 축이었다. 고승의 입적은 국가적 의미를 지닌 의례였다.

홍법국사라는 시호 자체가 보여주듯, 그는 왕실로부터 공인된 고승이었다. 국사 칭호는 당대 불교 교단 내 위상과 국가적 신망을 동시에 반영한다. 그의 승탑은 개인의 추모비를 넘어 왕실 불교의 권위를 시각화한 상징물이다. 승탑은 곧 시대의 정치·종교적 질서가 응축된 구조물이었다.

형식적으로 이 탑은 팔각원당형 승탑의 전통을 계승한다. 기단 위에 탑신을 두고 그 위에 옥개석과 상륜을 얹는 기본 구성을 따르면서도, 세부에서는 과감한 창안이 더해졌다. 

팔각 지대석 위에 복판 연화문이 장식된 복련석을 얹은 기단부는 안정감이 돋보인다. 중대 각 면에 새겨진 안상은 고려 특유의 조형 감각을 잘 보여준다. 통일신라의 유려한 곡선과 달리, 네모에 가까운 형태로 변화된 안상은 보다 구조적이고 단단한 인상을 준다.

안상 내부를 빈틈없이 채운 운룡문 조각은 장식의 치밀함을 극대화한다. 용과 구름은 불법을 수호하는 상징이자, 하늘과 땅을 잇는 존재다. 조각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상징 체계의 시각적 구현이다. 고려 전기 조각이 보여주는 장식성과 상징성이 절묘하게 결합된 대목이다.

상대석은 얇고 원형에 가깝게 처리되었으며, 하부에는 앙련이 새겨졌다. 연판마다 더해진 꽃무늬는 장식적 섬세함을 강조한다. 반복되는 연화문은 승탑이 곧 정토 세계의 상징임을 암시한다. 연꽃은 더러움 속에서 피어나는 청정의 상징으로, 고승의 깨달음과 극락왕생을 시각화하는 핵심 모티프다.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단연 원구형 탑신이다. 일반적인 팔각형 몸돌과 달리 둥글게 처리된 형태는 파격적이다. 둥근 구체는 완전성과 원만함을 상징하며, 불교적 세계관에서 우주적 질서를 암시한다. 

탑신 표면에는 두 줄의 양각선을 둘러 수평적 리듬을 만들고, 이를 십자 형태로 교차시켰다. 교차점에는 꽃무늬를 배치해 변화를 주었다. 기하학적 질서 위에 유기적 문양을 더한 구성은 고려 장인의 조형 감각을 잘 보여준다. 구조와 장식, 엄격함과 유연함이 한 몸처럼 결합된다.

옥개석은 비교적 절제된 편이지만, 팔각 귀퉁이의 귀꽃 장식이 시선을 붙든다. 장식은 과하지 않으면서도 전체 조형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옥개석 하면을 깊숙이 파 삿갓 모양을 만든 구성은 공간감과 입체감을 동시에 강화한다.

옥개석 아래 원통형 석재 둘레에는 활달한 비천상이 조각되었다. 하늘을 나는 비천은 정토로의 인도를 상징하며, 상승의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지상에서 천상으로 이어지는 상징적 동선이 탑 전체에 내재되어 있다. 승탑은 땅 위에 놓여 있지만, 하늘을 향해 열린 상징적 축이다.

상륜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옥개석 정상의 연화좌 위에 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상륜은 불교 우주관의 정점을 상징하는 장치다. 비록 실물은 사라졌으나, 남겨진 구조만으로도 전체 형식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아울러 이 탑은 통일신라 승탑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적 미감을 본격화한 이행기의 기념비적 작품이다. 전통적 틀 안에서 창의적 해석을 가미한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가 크다. 고려 전기 불교 미술이 단순한 답습이 아니라 능동적 변용의 과정이었음을 증명한다.

‘충주 정토사 터 홍법국사탑’은 한 고승의 사리를 봉안한 기념물인 동시에, 왕권과 불교, 지역 사찰과 중앙 권력이 교차하던 고려 사회의 문화적 풍경을 응축한 상징물이다. 돌에 새겨진 문양 하나하나에는 시대의 정신과 신앙, 그리고 권력이 겹겹이 새겨져 있다. 오늘도 박물관 한가운데에서, 천 년 전 고려의 시간과 조용히 마주 서 있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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