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시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태국이 2026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현지 정부와 글로벌 경제 기구들은 태국 경제가 2.8%에서 3.3% 사이의 안정적인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완전히 벗어나 관광 대국의 명성을 되찾는 동시에, 전기차(EV)와 디지털 산업이라는 미래 먹거리를 확보해 중진국 함정을 탈출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화려한 전망 뒤에 숨은 가계부채와 인구 구조의 급격한 변화는 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고질적인 변수로 남아있다.
◇ '관광의 귀환'과 '디지털 월렛'… 내수 진작을 향한 필사적 행보
2026년 태국 경제의 최대 동력은 단연 관광산업이다. 현지에서는 연간 외국인 관광객 수가 팬데믹 이전 수준인 4,000만 명 선을 완전히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관광 수입은 태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12%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기에, 관광객 유입은 곧바로 외환 보유고와 고용 시장 활성화로 직결된다. 특히 태국 환율의 안정세가 유지된다면 동남아시아 여행을 계획하는 글로벌 여행객들의 발길이 더욱 잦아질 전망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월렛' 정책도 내수 소비의 핵심 변수다. 국민 1인당 1만 바트를 지급해 지역 경제의 실물 소비를 강제로 끌어올리겠다는 이 포퓰리즘 성격의 정책은 단기적으로 유통 업계와 소상공인들에게 단비가 될 수 있다. 다만 막대한 재정 투입이 국가 채무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에서 현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소비를 일시적으로 부양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소득 증대 없이는 '반짝 효과'에 그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 전기차(EV) 허브로의 변신… 'S-커브' 산업에 쏟아지는 자본
태국은 더 이상 관광에만 목매지 않는다. 현지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는 '동부경제회랑(EEC)' 프로젝트와 '신성장(S-Curve)' 산업 육성책이 2026년 본격적인 결실을 맺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 전기차 업체들의 잇따른 태국 공장 가동과 현지 생산 비중 확대는 태국을 동남아시아의 EV 생산 허브로 굳히는 모양새다.
반도체와 전자제품 수출도 회복세에 접어들 전망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태국은 지정학적 중립성을 유지하며 다국적 기업들의 생산 기지 이전 대상지로 각광받고 있다. 전기차 관련주나 이차전지 등 한국 투자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영역에서의 협력 기회도 열리고 있다. 스마트 시티 건설과 디지털 헬스케어 등 디지털 전환(DX) 수요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기술 기반 한국 스타트업들에게는 태국이 매력적인 테스트베드가 될 가능성이 크다.
◇ 가계부채 90% 상회… 고령화라는 거대한 그림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은 GDP 대비 91%를 넘어선 가계부채다. 높은 부채 수준은 실질 가처분 소득을 감소시켜 소비 여력을 제한한다. 금리 변동에 민감한 서민 경제는 작은 외부 충격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다. 금융권의 대출 심사가 까다로워지면서 자동차나 부동산 등 고가 내구재 시장의 활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인구 구조의 변화 역시 심각하다. 태국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빠르게 늙어가는 나라다. 생산 가능 인구의 감소는 잠재 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진다.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마트 팩토리나 로봇 자동화 도입이 서둘러 진행되고 있지만, 숙련된 기술 인력 양성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정치적 불안정성과 주변국인 베트남, 인도네시아와의 유치 경쟁 심화도 태국이 넘어야 할 산이다.
◇ 한국 기업 "인프라와 틈새시장을 노려라"
2026년 태국 시장을 두드리는 한국 기업들은 단순 소비재 수출을 넘어선 전략이 필요하다. 태국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인프라 구축 사업이나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에 B2B 형태로 참여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한 태국 현지의 높은 디지털 기기 보급률과 온라인 쇼핑 열풍을 공략하되, 가계부채로 인해 실속형 소비를 지향하는 현지 트렌드를 정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태국 경제는 분명 회복 궤도에 올랐지만, 구조적인 모순들이 성장의 상단을 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는 이 시장에서 데이터에 기반한 냉철한 접근만이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 미소의 나라 태국이 2026년 진정으로 웃을 수 있을지는 정부의 재정 관리 능력과 산업 구조 고도화의 속도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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