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증가와 주가 급등으로 경기가 회복 국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소비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한국은행 분석이 제시됐다. 회복의 과실이 일부 산업과 고소득층에 집중되는 이른바 'K자형 구조'가 소비 확산을 제약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27일 한국은행 조사국은 '과거 회복기에 비추어 본 현 소비 국면 판단과 향후 전망'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보고서는 한국 경제가 지난해 상반기를 저점으로 하반기부터 완만한 회복 흐름에 들어섰다고 평가했다. 실제 지난해 3분기 민간소비는 전기 대비 1.3% 증가하며 급반등 구간을 통과했고, 올해도 완만한 개선세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통상 경기 회복기에는 소득 증가와 통화 완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소비가 동반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기준금리 인하와 재정 지출 확대 등 정책적 지원도 소비 심리를 자극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이번 회복 국면은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 한은의 판단이다. 연구진은 "구조적 취약성이 심화된 상황에서 거시 여건 개선이 소비 증가로 연결되는 파급 효과가 과거보다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소비 부진의 배경으로는 수출 구조의 편중이 지목됐다. 최근 수출 회복은 반도체 등 IT 업종이 주도하고 있으며, 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과의 경쟁 심화로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반도체 산업이 경기 확장에 비해 고용 유발 효과가 크지 않다는 점이다. 반도체 산업의 취업 유발 계수는 2.4로, 제조업 평균(5.1)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이는 수출 증가가 일자리 확대와 광범위한 소득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소득 증가가 소비로 직결되지 않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한계소비성향은 12%로, 전체 평균(18%)보다 낮다. 고소득층은 추가 소득의 상당 부분을 저축이나 자산 축적에 활용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식시장 상승 역시 소비 확대를 이끄는 동력으로는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종목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수 상승을 견인하면서 고소득층의 금융자산이 크게 늘었다.
하지만 금융자산 증가에 따른 소비 확대 효과는 미미하다. 전체 가구의 주식·채권·펀드 자산에 대한 한계소비성향은 1% 수준이며, 고소득층은 0.8%에 불과하다. 한은은 지난해 10월 이후 시가총액 증가분 2300조원과 개인투자자 보유 비중(28%)을 반영하면, 올해 주가 상승이 민간소비를 약 0.5%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다만 상승 효과가 상위 계층에 집중되면서 경제 전반의 자산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가계가 최근 경기 개선을 일시적 현상으로 인식하는 점도 소비를 억제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저출생·고령화 등 구조적 성장 둔화 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가계는 소득 증가를 장기적 추세로 보기보다 일시적 여건 개선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단기적인 경기 호조와 중장기 성장 불확실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환경에서, 가계는 소비 확대보다 저축을 통한 미래 대비를 선택할 유인이 크다"고 진단했다.
결국 수출과 자산 가격 상승이라는 긍정적 신호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과거 회복기만큼 빠르게 살아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 한은의 결론이다.
[폴리뉴스 김지혜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