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만 더봄] 해방 이후, 노래는 ‘미국’을 만나 산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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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만 더봄] 해방 이후, 노래는 ‘미국’을 만나 산업이 되었다

여성경제신문 2026-02-27 13:00:00 신고

6·25 전쟁과 미8군 그리고 1960년대로 넘어가는 문턱

처음에 이번 글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함께 묶어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1950년대만으로도 충분히 한 편의 서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시대에는 말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아울러 이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들의 음악적 특징을 통해 오늘날 K-팝의 형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해방 직후 한국 대중음악은 다시 시작할 발판을 찾고 있었다. 장세정의 <울어라 은방울> 의 의미는 분명하다. ‘노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음반을 완성하는 일’을 국내 기술로 전 과정을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이 선언 같은 사건을 발판 삼아 한국 대중음악은 곧 더 큰 격랑을 맞는다.

6·25 전쟁과 대중음악의 체질 변화

전쟁은 모든 것을 부수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대중음악의 체질을 바꾸어 놓았다. 삶이 무너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더 절실하게 노래를 찾았고 노래는 위로이자 생존 방식이 되었다. 피난지 부산을 중심으로 공연과 라디오가 살아남았고 음반 제작은 불안정했지만 무대는 계속 움직였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 곧 미군 주둔이 놓이게 된다.

미8군 무대는 ‘한국 팝의 학교’ 역할

휴전 이후 한국에 주둔한 미군은 자신들의 생활권 안에 클럽과 쇼 무대를 운영했다. 흔히 말하는 ‘미8군 쇼’(US Eighth Army Show)가 그것이다. 이 무대는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라 한국 음악인들에게는 서구 팝의 실전 훈련장이었다.

여기서 요구된 것은 좋은 목소리만이 아니었다. 영어 가사 전달, 박자감, 무대 매너, 마이크 테크닉, 밴드와의 합 등 모든 기준이 달랐다. 그래서 미8군 무대 출신 가수들의 음악은 이전 유행가와 스타일이 달라진다. ‘노래’가 아니라 ‘쇼’를 하게 되었고 그 쇼는 곧 한국 대중음악이 1960년대에 맞이할 변화의 예행연습이 된다.

미8군 공연모습 /사진=김성만

이 시기 미군 클럽에서 주로 연주되던 음악 스타일은 대략 이런 스펙트럼이었다.

△스윙·빅밴드(Swing/Big Band) - 브라스 섹션 중심의 경쾌한 4비트 리듬으로 무대가 살아야 하는 공간에서 가장 강력한 요소였다.
△재즈 스탠더드(Jazz Standards) - 느린 발라드부터 업템포까지 보컬은 발성과 프레이징(phrase)이 중요해졌다.
△부기우기·점프블루스(Boogie-woogie/Jump Blues) - 피아노와 리듬 섹션이 주도하는 춤추는 음악으로 ‘흥’을 팝 문법으로 바꾸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라틴(맘보·차차차·룸바) - 전후 아시아의 클럽 문화에서 강세였고 한국 가요에도 이후 라틴 리듬이 적극 흡수된다.
△컨트리·포크(Country/Folk) - 간결한 코드 진행과 스토리텔링으로 훗날 한국 통기타와 포크의 감수성과 연결된다.
△초기 로큰롤(Rock’n’Roll) - 1950년대 후반부터 확산하며 젊음의 리듬이 무엇인지 무대에서 체득하는 시간이었다.

즉 미8군 무대는 단순히 미국 노래를 따라 부르는 곳이 아니라 한국 음악인들이 서구 팝의 문법인 리듬·화성·편곡·공연 형식 및 퍼포먼스)을 몸으로 익힌 곳이었다.

‘기록의 시대’에서 ‘기획의 시대’로

이 시기에 레코드사는 ‘노래’가 아니라 ‘사람’을 사업으로 삼기 시작했다. 이 변화는 곧 산업으로 이어진다. 전후 국내 레코드사들은 단지 음반을 찍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8군 무대에서 검증된 가수들을 섭외·관리·음반화하며 ‘스타’를 상품화하기 시작했다.

당시의 레코드사와 흥행 조직이 수행한 사업은 지금의 매니지먼트와 상당히 닮아 있다. 당시 레코드사의 주요 비즈니스 업무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미8군·클럽 출신 가수 섭외 및 전속 계약
△공연 섭외(클럽·극장·지방 순회)와 음반 발매 연계
△밴드(세션) 조직·편곡자·악단 운영
△번안곡(서구 히트곡의 한국어화) 기획
△라디오 출연·홍보·이미지 메이킹

여기서 핵심은 한 가지다. 전쟁 전 음반사는 ‘기록’ 의미가 컸다면 전후 음반사는 ‘기획’의 의미가 커졌다. 한국 대중음악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산업의 언어를 갖추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세계 무대’ 상상한 김시스터즈 사건

이 변화의 상징으로 가장 정확한 이름이 김시스터즈(The Kim Sisters)다. 그들이 단지 ‘잘 된 가수’가 아니라 ‘사건’인 이유는 한국 대중음악이 처음으로 해외 시장을 현실로 경험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시스터즈 /연합뉴스 

미8군 무대를 통해 실력을 다진 이들은 1959년 미국으로 진출한다. 그리고 마침내 미국 대중문화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에 출연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의 상징성은 지금의 음악 프로그램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시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던 최고 인기 버라이어티 쇼였고 한 번의 출연이 곧 ‘전국적 인지도’를 의미하던 무대였다. 훗날 비틀즈(The Beatles)가 미국 시장에 폭발적으로 진입한 계기도 바로 이 프로그램 출연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김시스터즈가 선 그 무대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김시스터즈의 배경은 그들의 음악성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김시스터즈는 이난영(‘목포의 눈물’로 알려진 당대의 대표 가수)의 딸들이며 아버지 김해송은 당시 대중음악계에서 영향력 있는 지휘자이자 음악가(작곡가로도 알려짐)였다. 즉 그들은 ‘우연히 재능이 터진 가수’가 아니라 음악적 환경 속에서 성장한 예술가의 2세대였다.

전쟁으로 가족이 큰 시련을 겪는 가운데 이들은 미군 무대에서 생존형 공연을 시작했고(이 과정에서 영어, 팝 문법, 무대 퍼포먼스를 익힘) 결국 미국 무대에 올라간다. 그들의 강점은 단순히 ‘영어로 노래했다’는 점이 아니다.

△화성 앙상블(코러스 하모니) △리듬의 정확함(스윙·라틴·업템포 대응력) △무대형 퍼포먼스(쇼로 완성되는 보컬) △능숙한 악기 연주를 포함한 종합 엔터테인먼트 능력, 그리고 원어민에 가까운 영어 발음과 구사 능력이다.

오늘날 K-pop이 ‘퍼포먼스 음악’이라면 김시스터즈는 이미 1950년대에 퍼포먼스형 보컬 그룹의 형태를 구현해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한국 최초의 글로벌 걸그룹’이라고 부르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트로트에서 팝 디바까지 스타의 계보

이 시기 ‘대형 가수’들의 탄생은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여러 갈래의 길에서 동시에 일어났다. 당시 유명 가수를 몇 명 재조명해 보려 한다.

이미자 -‘한(恨)의 미학’을 대중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목소리

이미자는 1959년 데뷔 이후 1960년대에 폭발적인 대중적 반응을 얻으며 트로트의 정점을 만든다. 그녀의 핵심은 ‘슬픔’이 아니라 ‘정교한 애수’다. 단순히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가사의 사연을 한 줄씩 ‘연기’하듯 끌고 가는 서사가 있다. 전쟁 이후 상실을 겪은 사회에서 이미자의 노래는 개인의 슬픔을 공동의 언어로 바꾸는 힘이 있었다.

남인수·현인 - 전후 정서를 붙잡은 남성 보컬의 두 축

남인수는 전쟁 전후를 잇는 연결 고리로 한국 대중가요의 ‘정통 창법’과 대중성의 균형을 보여준 인물로 기억된다. 현인은 전후 복구기의 정서를 대표하는 목소리로 자리 잡았고 특히 전쟁이 남긴 상처와 생존의 의지를 노래로 붙잡아 ‘시대의 가수’가 된다. (이들의 이름이 지금도 ‘전후 가요’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유다.)

패티김 - 미8군 무대가 만든 ‘팝 디바’의 전형

패티김은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대표적 인물이다. 그녀는 트로트 중심의 감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팝 스탠더드의 발성과 무대 감각을 통해 ‘도시적 세련미’를 구현했다. 전후의 한국이 가난만이 아니라 ‘근대적 욕망’을 품기 시작할 때 패티김의 음악은 그 욕망을 매우 선명하게 대변했다.

좌로부터 이미자·남인수·현인·패티김 /연합뉴스 
좌로부터 이미자·남인수·현인·패티김 /연합뉴스 

1960년대의 문이 열리는 순간

해방 이후의 한국 대중음악을 난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노래는 전쟁을 지나, 미군 클럽에서 세계의 문법을 배우고, 레코드 산업 안에서 스타 시스템을 갖추며 1960년대로 넘어갔다.”

이제 1960년대에 들어서면 음악의 중심이 또 한 번 이동한다. 청년문화가 전면에 등장하고 통기타·포크·록이 ‘세대의 언어’로 자라며 대중음악은 더 분명한 세대 교체를 맞이한다. 전쟁은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대중음악에게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세계의 문법을 들여오는 통로가 되었다. 그리고 그 통로 위에서 다음 시대의 음악이 시작된다.

프레이징(phrasing)=음악에서 멜로디의 흐름을 자연스럽고 의미 있게 나누어 표현하는 법을 말한다. 문장에서 띄어 읽기나 호흡 조절을 통해 감정을 전달하듯 가수나 연주자가 소리의 강약과 호흡을 조절해 음악적 문장을 완성하는 기술이다.

여성경제신문 김성만 음악프로듀서 · 공연기획자 
musicman2@hanmail.net

김성만 음악프로듀서·공연기획자

중앙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Bassiano Accademia delle Arti에서 예술 매니지먼트 최고 과정을 수료했다. 삼성에버랜드 엔터테인먼트팀 음악감독과 전략기획팀을 거치며 대형 공연·전시·테마 콘텐츠의 음악 및 기획을 담당했다. 국내외 대형 문화행사를 비롯해 엑스포, 국가 기념행사, 테마파크, 영상·게임·드라마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왔다. 숭실대학교, 수원여자대학교 대학원, 경민대학교 등에서 공연기획과 음악콘텐츠 프로듀싱을 강의했으며, 현재는 서울재즈아카데미(SJA)에서 후진 양성에 힘쓰는 한편 문화예술콘텐츠 기획·제작사 (주)바콘웨이브 대표로 활동 중이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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