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가격 급등세 둔화 우려에 국내외 반도체주 일제히 하락
증권가 전문가들 "빅테크 경쟁 극단화…수익성 악화 우려 계속될 듯"
"AI주 밸류에이션, 3년 전 수준 회귀…포지션 축소 일러" 반론도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글로벌 인공지능(AI) 대장주 엔비디아가 깜짝 호실적을 내놓고도 5% 이상 급락하며 국내 증시에 충격이 미친 것과 관련, 증권가 전문가 사이에서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다.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간밤 뉴욕증시 정규장에서 전일 종가 대비 5.46% 하락한 채 거래를 종료했다.
엔비디아는 전날 장 마감 직후 실적발표에서 회계연도 4분기(작년 11월∼올해 1월)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3% 오른 681억3천만 달러(약 98조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시장평균전망치(662억 달러)를 웃도는 수치였던 까닭에 시간외 거래에서 한때 4% 가까이 주가가 오르는 모습이 나타났지만, 정작 이튿날 정규장에선 정반대의 주가 흐름이 나타났다.
대체로 시장의 눈높이가 너무 높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호실적)에 대한 기대가 이미 주가에 반영된 상황에서 앞으로도 현 수준의 실적 증가세가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며 대대적인 차익실현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특히 AI의 급격한 발전이 산업 전반에 대격변을 일으킬 것이란 공포에 최근 투매가 일어났던 소프트웨어(SW)뿐 아니라 브로드컴(-3.19%), 마이크론(-3.13%), AMD(-3.41%), TSMC(-2.82%), 인텔(-3.03%) 등 반도체주 전반도 간밤에는 주가가 큰 폭으로 내렸다.
서상영 미래에셋증권[006800] 연구원은 "컨퍼런스콜에서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가 2027년 수요에 대비한 선제적 재고 축적을 언급한 것이 역설적으로 공급 부족에 따른 가격 프리미엄 기대가 약화하고 질서 있는 공급 확대 국면으로 전환됨을 시사했다"고 반도체 약세의 배경을 진단했다.
그동안 공급 부족 우려로 반도체 가격 급등 지속에 대한 기대가 이어져 왔지만, 이러한 기대감이 약화하면서 메모리 기업들을 비롯한 반도체 섹터의 주가가 고점에 도달한 것 아니냐는 불안이 고개를 들었다는 의미다.
아울러 투자회사들이 칩 제조사에서 AI 서비스 기업으로 전환하는 AI 로테이션 현상이 가속화된 점, 하이퍼스케일러(초대형 클라우드 사업자)들의 자본지출 지속 여부 및 수익화에 대한 불안도 시장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이날 한국 증시에서도 그간 'AI발 대격변' 우려에서 비켜나 있던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가 오전 11시 9분 현재 각각 1.83%와 3.64% 하락하는 등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영향이 미치는 모습이 나타났다.
하지만 한지영 키움증권[039490] 연구원은 "엔비디아 실적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고 주요 투자은행들은 목표주가를 300달러대 이상으로 상향했다"면서 "현시점에서도 AI주에 대한 포지션 축소 작업을 지속하는 것은 지양하는 게 맞다"고 조언했다.
컨퍼런스콜에서 시장을 놀라게 할 만한 내용이 없었다는 평가와, 고객사인 하이퍼스케일러들의 현금흐름 약화 우려도 해소되지 않는 등 문제 있는 건 사실이나 비중 축소를 고려하기엔 이르다는 분석이다.
한 연구원은 "엔비디아 포함 AI주들의 밸류에이션은 3년 전 수준으로 회귀한 상태이며, 3월 중순 예정된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6' 이벤트가 또 다른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허재환 유진투자증권[001200] 연구원은 "엔비디아는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그런데도 주가는 5.5% 하락했는데 뉴스에 팔았을 수도 있고, 차익실현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엔비디아 실적은 늘 믿기 어려울 정도로 좋다. 항상 정점 우려가 따라붙는 이유"라면서도 "5% 급락에서 느껴지는 최근 분위기는 좀 다르긴 하다. 엔비디아의 눈부신 실적이 누군가의 고통과 출혈로 결국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이전보다 투영된 듯 보인다"고 짚었다.
데이터센터 건설 붐의 영향으로 공급 병목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하드드라이브, 전선, 전력기기, 발전기 등의 업황은 계속 좋겠지만, 이는 빅테크간 경쟁이 극단적으로 치우친 데 따른 것인 만큼 빅테크 수익성 우려는 잦아들지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허 연구원은 "빅테크들의 경쟁이 극단적으로 치우칠수록 위기 속에서도 미국 증시들 굳건히 지켜준 빅테크들이 다치고 있다는 증거"라면서 "예컨대 올해 아마존은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로 예상돼 빚을 내야 한다. 이제 빅테크들은 심지어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담보로 대출을 받기에 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성능이 빨리 좋아질수록, 담보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위험에도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투자하고 있는 것"이라며 "미국 경기가 양극화에도 상대적으로 양호한 이유이지만 누군가 다칠 수 있고 금융도 일부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면 미국 증시, 특히 빅테크 기업들에게 더 이상 차별화된 밸류에이션을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허 연구원은 "그동안 규제 산업은 성장 매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분위기에서는 규제라는 답답한 진입장벽이 AI로부터 지켜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규제 산업을 다시 봐야겠다"고 덧붙였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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