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밸류업' 기조를 뒷받침하는 3차 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마자 일부 제약사들이 자사주를 상호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지분 재편에 나서면서 시장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라는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꼼수' 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대약품을 중심으로 신풍제약, 대화제약, 삼일제약이 하루 사이에 자사주 처분·취득을 결의하면서 주주들 사이에서 원성이 터져나오고 있다.
27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약품은 지난 26일 이사회에서 보통주 478만654주를 처분하기로 결의했다. 처분 단가는 1주당 1만2810원으로 총 처분 예정 금액은 약 612억원 규모다. 처분 방식은 시간외대량매매 150만주, 장외처분 328만654주로 신풍제약·대화제약·삼일제약 등이 상대방에 포함됐다. 현대약품은 천안공장 증설과 제2형 당뇨병 치료제(HDNO-1605) 임상 자금 확보, 전략적 제휴 구축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같은 날 신풍제약도 보통주 243만7310주를 현대약품에 장외처분하기로 결의했다. 처분 단가는 1만2130원, 총 295억원 규모다. 신풍제약은 처분 목적으로 '전략적 제휴를 통한 사업 시너지 및 R&D 파트너십 강화'를 내세웠다. 삼일제약 역시 보통주 14만1000주(약 16억원 규모)를 현대약품에 장외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대화제약은 현대약품 주식 84만4493주(약 108억원 상당)를 취득하기로 결의하며 자사주 교환에 참여했다 .
표면적으로는 '전략적 제휴'와 '사업 시너지'를 앞세운 협력 구조지만 시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3차 상법 개정안은 자사주를 신규 취득 시 1년 이내, 기존 보유 자사주는 법 시행 후 1년 6개월 이내에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의무화했다. 자사주를 대주주의 우호 세력에게 넘겨 의결권을 되살리는 행태를 차단하는 것이 핵심 취지다. 그런데 해당 법안이 25일 국회를 통과한 직후 아직 대통령 공포 이전에 일제히 이사회 결의를 단행했다는 점에서 '시간차를 이용한 선제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현대약품의 경우 처분 수량은 발행주식 총수의 약 14%에 달한다. 현대약품은 "장외처분을 통한 전략적 협력 관계 구축 목적이므로 주식가치 희석 효과는 제한적"이라고 설명했지만 주주들은 자사주 소각 대신 맞교환을 한 걸 두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신풍제약 역시 처분 수량이 발행주식의 4.6% 수준으로 단기간 내 지분 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이번 맞교환 구조가 경영권 안정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각 회사가 상호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외부주주의 경영 참여나 주주제안에 대한 방어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사주 소각 의무화 시행을 앞두고 이뤄진 결정이라는 점에서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 맞교환을 발표한 이후 현대약품 주가는 2거래일 연속 큰 폭으로 하락하고 있다. 27일 오전 11시 20분 기준 현대약품 주가는 1만1830원으로 전일 대비 7.65% 떨어진 채 거래되고 있다. 26일에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2.29% 하락하면서 자사주 소각이 아닌 맞교환을 통한 주식 처분에 대해 시장에선 부정적인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온라인 주주 게시판과 커뮤니티에서는 비판이 거세다. 일부 주주들은 "대통령 바뀔 때까지만 서로 주식 교환해서 들고 있으려는 것 아니냐" "주주친화적이지 않은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다른 주주는 "사실상 담합이나 다름없다. 국회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도전한 만큼 응당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법적 대응 가능성을 언급했다.
실제로 법적 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자사주 처분이 정관상 목적과 절차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거나 주주 평등 원칙을 침해했다는 주장이 제기될 경우 가처분 신청이나 무효 확인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다른 상장사에서 자사주를 활용한 교환사채 발행이나 맞교환에 대해 법원이 제동을 건 사례가 있어 이번 사안 역시 법적 판단대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상법 개정의 핵심은 기업이 회사 자금으로 취득한 자사주를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소각을 통해 주주가치를 높이자는 데 있다. 그러나 이번 제약사들의 일련의 맞교환은 제도 시행 직전 자사주를 '우호 지분'으로 전환한 사례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논란이 거세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밸류업 정책의 성패는 법 조문 그 자체보다 기업들의 실행 태도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교수는 "기업 입장에서 전략적 차원에서 소각 대신 처분을 선택했다곤 하지만 상법 개정안에 담긴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핵심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위로 볼 여지가 크다"며 "밸류업 정책으로 인해 증시가 활기를 되찾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결정은 주주 이익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Copyright ⓒ 르데스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