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광의 고대 이집트 미술과 신화 #19] 룩소르, 대지에 새긴 문명의 미학⑥ 2부: 세티 1세(Tomb of Seti I): 어둠 속 피어난 우주와 입체 예술의 경이에 이어
[문화매거진(이집트)=한민광 작가] 앞서 몇 차례 언급했듯 이집트 룩소르의 타오르는 태양 아래, 메마른 바위산들이 겹겹이 쌓인 ‘왕가의 계곡’은 수천 년간 침묵을 지켜온 거대한 공동묘지다. 수많은 파라오가 영생을 꿈꾸며 이곳에 웅장한 안식처를 마련했으나, 대부분 무덤은 역사의 거센 풍파와 도굴꾼의 손길에 그 속살을 내주어야 했다. 그러나 단 한 곳, 번호조차 소박한 ‘KV 62’만은 예외였다. 3,300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우리 앞에 나타난 소년 왕, 투탕카멘의 이야기는 단순한 고고학적 발견을 넘어 인류 예술사의 찬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1. 모래 속 숨겨진 기적, 하워드 카터의 집념
1922년 11월,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와 그의 후원자 카나번 경은 절망의 끝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했다. 왕가의 계곡에서 더 이상 나올 것이 없다는 학계의 비웃음 속에서도 카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발견된 열여섯 개의 계단 끝에는 봉인된 문이 있었다. 구멍 사이로 촛불을 들이밀었을 때, “무엇이 보입니까?”라는 카나번 경의 물음에 카터는 “네, 놀라운 것들(Wonderful things)이 보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발견은 이집트 고고학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전까지의 발굴이 도굴된 빈 무덤에서 과거의 흔적을 유추하는 작업이었다면, 투탕카멘 무덤의 발굴은 고대 이집트 신왕국의 생활상과 예술적 정수를 있는 그대로 박제해 온 사건이었다. 투탕카멘이 현대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파라오가 된 것은 그가 위대한 정복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그의 무덤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소박한 입구, 그 속에 담긴 파라오의 무게
왕가의 계곡을 걷다 보면 수많은 화려한 입구들 사이로 의외로 단출한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TOMB OF TUT ANKH AMUN NO: 62’. 현대의 서체로 정갈하게 쓰인 이 나무 간판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왕의 안식처치고는 다소 겸손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 소박한 간판을 지나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관람객은 시간을 거스르는 감각의 전이에 휩싸인다. 지상에서의 화려한 명성과 달리 무덤의 규모는 다른 파라오들의 그것에 비해 확연히 작고 초라하다. 대개 수십 미터에 달하는 화랑과 수많은 방을 갖춘 일반적인 무덤과 달리, 투탕카멘의 무덤은 전실, 별실, 매장실, 그리고 보물창고로 구성된 네 개의 작은 방이 전부다.
이토록 무덤이 작은 이유는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관련이 깊다. 18세 혹은 19세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 그를 위해 장례를 준비할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무덤은 원래 파라오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위 관료를 위해 준비되던 곳을 급히 개조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3. 지워진 이름, 그리고 신들의 품으로
투탕카멘의 아버지 아케나톤은 이집트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종교 개혁가였다. 그는 수많은 신을 부정하고 오직 태양신 ‘아톤’만을 섬기게 했으며, 예술적으로도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깨고 사실주의적인 묘사를 지향했다. 하지만 그가 죽은 뒤, 보수적인 사제 세력은 아케나톤의 흔적을 철저히 지워버렸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투탕카멘은 아버지의 종교를 버리고 다시 전통적인 ‘아문’ 신앙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의 이름 자체가 ‘아톤의 살아있는 형상(투탕카톤)’에서 ‘아문의 살아있는 형상(투탕카멘)’으로 바뀐 것은 그가 처했던 정치적 상황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아버지의 이단적 흔적을 지움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정당화하고 혼란에 빠진 제국을 안정시키려 노력했다.
매장실 벽면에 그려진 벽화는 이러한 그의 염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다. 정면의 벽화는 투탕카멘이 사후 세계의 신들에게 인도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왼쪽에서부터 이집트의 왕권을 상징하는 흰 왕관을 쓴 오시리스 신이 서 있고, 그 앞에 선 투탕카멘은 신의 축복을 받으며 영생의 길로 나아간다. 그림 속 인물들의 신체 비율과 선의 처리는 아마르나 시대(아케나톤 시기)의 부드러운 곡선미와 전통적인 이집트 예술의 엄격함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화려한 금빛 배경은 이곳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신성한 공간임을 강조한다.
4. 밤의 열두 시간을 지키는 영적 수호자
무덤의 서쪽 벽면에는 독특한 문양이 시선을 끈다. 바로 열두 마리의 비비(Baboon)가 그려진 벽화이다. 이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고대 이집트인들이 믿었던 사후 세계의 시간을 상징한다.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신 라(Ra)는 매일 밤 지하 세계(두아트)를 여행한다. 밤의 12시간 동안 각 구간을 통과할 때마다 마주하는 시련을 이겨내야만 다시 아침의 태양으로 부활할 수 있다. 벽화 속 열두 마리의 원숭이는 바로 이 밤의 12시간을 지키는 영적인 존재들이다. 소년 왕이 어두운 죽음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여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길 바라는 간절한 기도가 이 기하학적인 배열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거친 벽면 위에 그려진 이 동물들의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5. 3,300년의 침묵을 깬 소년의 얼굴
무덤 깊숙한 곳, 투명한 유리관 속에는 투탕카멘의 실제 미라가 안치되어 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아마포에 감겨 황금 마스크 속에 숨겨져 있던 그의 육신은 이제 현대의 관람객들과 마주한다.
검게 변한 그의 피부와 앙상하게 드러난 발가락 끝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신으로 추앙받던 절대 권력자이기 이전에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화려한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부장품들이 그의 ‘사회적 자아’를 상징한다면, 이 메마른 미라는 그의 ‘본질적 자아’를 드러낸다. 발굴 당시 확인된 그의 두개골 뒤편의 상처나 골절의 흔적들은 그가 겪었을 치열한 권력 다툼이나 불운한 사고를 짐작하게 하며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6. 카이로에서 기자로, 다시 빛나는 황금의 미소
투탕카멘 무덤의 백미는 단연 ‘황금 마스크’다. 오랫동안 타흐리르 광장의 카이로 고고학 박물관을 지켜오던 이 보물은 2025년 가을, 마침내 기자 지구에 새로 문을 연 대박물관(GEM)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전 박물관에서는 엄격한 사진 촬영 금지 규정 때문에 눈으로만 담아야 했던 아쉬움이 컸으나, 새로운 보금자리에서는 마침내 사진 촬영이 허용되었다.
11kg의 순금과 청색 라피스 라줄리, 홍옥수 등으로 장식된 마스크는 고대 이집트 금속 공예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상화된 소년 왕의 얼굴은 고요하면서도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제 대박물관의 마스크 주변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모두가 손에 든 스마트폰으로 이 영원한 아름다움을 기록하려 애쓰는 모습은 3,300년 전의 파라오와 21세기의 현대인이 기술과 예술을 통해 조우하는 진풍경을 만들어 낸다.
무덤이 왜 온전히 남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흥미롭다. 후대 파라오인 람세스 6세의 무덤을 만들 때 나온 흙더미가 투탕카멘 무덤의 입구를 덮어버린 것이 결정적이었다. 역사 속에서 잊혔기에 오히려 영원히 살아남게 된 역설. 투탕카멘은 그렇게 ‘지워진 왕’에서 ‘영원한 왕’으로 부활했다.
왕가의 계곡 제62호 무덤은 단순한 유적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조차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인간의 의지이며, 시간을 이겨낸 예술의 승리다. 우리는 그 작은 방들을 거닐며 소년 왕이 남긴 짧은 생애의 흔적과 그를 영생으로 인도하려 했던 고대인들의 지극한 정성을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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