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사 통합’ 빠진 합병···국내 항공사 재편의 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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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사 통합’ 빠진 합병···국내 항공사 재편의 속내

이뉴스투데이 2026-02-27 08: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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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항공사 합병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지만, 합병의 성패를 가를 조종사 통합은 여전히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항공사 합병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지만, 합병의 성패를 가를 조종사 통합은 여전히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뉴스투데이 김재한 항공·방산 전문기자] 국내 항공사 합병의 윤곽이 점차 드러나고 있지만, 합병의 성패를 가를 핵심 과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다름 아닌 복합적인 요소들이 얽혀 있는 조종사 통합 문제다. 서로 다른 회사에서 형성된 승급 기준과 인사 관행, 운항 문화가 한 체계로 정리되지 않는다면, 합병 이후에도 현장에서는 ‘보이지 않는 분리’가 지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선 조종사들로부터 나온다.

이번 재편의 가장 큰 특징은 단일 항공사 간 합병이 아니라, 대형항공사와 저비용항공사(LCC)가 동시에 구조 재편에 들어갔다는 점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과 함께 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 등 3개 저비용항공사 재편이 병행되면서 국내 항공산업은 전례 없는 변화 국면에 들어섰다.

특히 5개 항공사가 동시에 재편되는 사례는 국내 항공산업 역사상 처음이다. 노선과 기단, 재무 구조를 중심으로 한 외형적 통합 논의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지만, 사람과 조직을 어떻게 묶을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연공서열·콕핏 문화, 통합 기준은 아직 안갯속

26일 일선 조종사들에 따르면, 통합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은 승급과 서열, 인사 체계다. 조종사에게 승급, 특히 기장 승급은 단순한 직급 변화가 아니라 생애 소득과 직업적 경로를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5개 항공사는 회사별로 승급 기준과 평가 방식, 기종 운용 원칙을 달리 운영해 왔고, 이는 합병과 동시에 하나의 기준으로 통합돼야 한다. 일선 조종사들도 이런 차이가 명확한 합의 없이 통합되면, 합병 이후에도 현장 혼선이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일선 조종사들은 통합 논의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로 한 항공사 기장에 따르면, 연공서열 체계는 아직 완전히 확정되지 않았지만, 부기장의 경우 임명일 기준으로 서열을 정하는 방안이 거론되는 수준이다. 콕핏(조종석) 문화 통합 역시 이제 논의를 시작한 단계로, 여러 방안이 동시에 검토되고 있지만 확정된 안은 없는 상태라는 설명이다.

저비용항공사 통합의 경우 기종 운용 문제가 변수로 꼽힌다. 3개 저비용항공사가 보잉 737, A320 등 서로 다른 기종을 운용하고 있어 단기간에 통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보잉 737을 주력으로 운용 중인 진에어가 향후 A320 계열 항공기를 추가 도입하는 시점을 계기로, A320을 운용하는 에어부산의 인력을 단계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안과 대한항공 교관을 투입해 통합을 진행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금 역시 통합 과정의 또 다른 뇌관으로 지목된다. 일선 조종사들에 따르면, 저비용항공사의 경우 연봉이 가장 높은 진에어를 기준으로 통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는 가운데, 진에어와 나머지 두 항공사 모두에서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진에어 측에서는 추가 인상 여지가 사라진다는 불만이,  두 항공사 측에서는 조속한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봉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형항공사 통합, “문화 충돌이 더 크다”

대형항공사 통합을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도 엇갈린다. 일선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을 두고 “문화 차이가 지나치게 커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양사 조종사가 함께 참여한 특정 기종 시뮬레이터 교육 과정에서,  대한항공 기장과 아시아나항공 부기장 간 갈등이 격화돼 서로에 대한 리포트가 작성된 사례도 있었다는 전언이다. 같은 매뉴얼을 두고도 해석과 적용 방식에서 충돌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양사 조종석 문화의 이질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거론된다. 이 일을 계기로 당초 계획됐던 조종사 통합 일정이 미뤄졌다는 이야기가 현장에서 나온다.

특히 항공기 운항의 핵심 주체인 조종사 통합 문제는 단순한 조직·인사 이슈를 넘어 비행 안전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민감한 사안으로 꼽힌다. 일선 조종사들에 따르면, 항공기 운항은 매뉴얼과 규정에 따라 이뤄지지만, 실제 조종실에서는 기장과 부기장 간 의사소통 방식, 판단 과정, 상황 인식 공유 등 ‘운항 문화’가 안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로 다른 조직에서 형성된 문화와 관행이 충분한 조율 없이 하나의 조종실 안에 공존할 경우, 비상 상황이나 판단이 엇갈리는 국면에서 혼선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같은 문제는 조종사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정비사와 객실승무원 등 다른 현장 인력 통합 과정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합병 과정에서 한 항공사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더 큰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조종사는 “같은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진에어 간 이질감도 큰데, 다른 항공사 간 문화 차이는 통합 이후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사례가 보여준 ‘반복되는 난제’

해외 항공사 합병 사례에서도 조종사 통합은 반복적으로 쟁점이 돼 왔다. 미국에서는 US항공과 아메리칸 웨스트항공 합병 이후 조종사 서열 통합을 둘러싼 갈등이 장기간 이어졌고, 관련 분쟁이 법정으로까지 번진 바 있다. 또한 아메리칸항공과 US항공의 합병 과정에서도 조종사 서열 통합 절차를 둘러싼 소송이 제기됐다. 특히 이미 한 차례 합병을 경험한 US항공이 또다시 조종사 통합 문제를 겪은 것은 조종사 통합이 얼마나 어려운 과정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특히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통합과 동시에 진에어·에어서울·에어부산 재편이 병행되는 구조라는 점에서 통합의 난도가 더 높다는 평가가 나온다. 일선 조종사들은 산업 구조 재편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지금의 논의는 숫자와 재무에 치우쳐 있고, 문화와 사람을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항공사 통합은 비용과 효율을 넘어 안전과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전례 없는 동시 재편이 진행되는 지금, 조종사 통합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는 통합 항공사의 운영 안정성과 안전 문화를 가늠하는 핵심 변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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