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현대 사회의 '쾌적한 표준'이 도리어 억압하는 개인의 삶.
- 말하라, 침묵이여: 방대한 조사와 기록으로 들춰낸 신비로운 작가 W.G.제발트의 삶과 문학.
- 소비예찬: 소유를 '사유'로 확장하는 문구인의 궁극의 물건들.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구마시로 도루 / 생각지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의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 / 생각지도
일본의 질서의식과 청결함은 유명하다. 천재지변이 일어난 상황에서도 차분히 줄을 서서 구호를 기다린다거나, 홍수로 잠긴 지하철 역의 물조차 너무 깨끗하다거나, 극한의 상황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그 깊은 정연함이 번번이 세계 사람들을 놀래키곤 한다. 시민의식의 관점에서 칭찬받아 마땅한 일. 하지만 과연 좋은 일이기만 할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구마시로 도루는 현대 사회의 쾌적함 속에서 ‘강박’을 짚어낸다. 일본이 이룩한 질서와 청결, 효율과 균질화가 도리어 개인을 억압하고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상성’이라는 좁은 규격 안에 개인을 가두고 그 기준에 미달하는 이들에게 부적격 낙인을 찍는 사회는 분명 좀 더 쾌적해진다. 그리고 동시에, 숨이 막히는 곳이 된다. 자살률이 높아지고, 출생율이 내려간다. 그리고 그건 비단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콕, 타이베이, 서울… 안전하고 청결하며 급속한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이룬 세계화 표준의 대도시 모두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출간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서점인과 독자들이 그해 최고의 인문서에 수여하는 ‘기노쿠니야 인문대상’을 받기도 했다.
말하라, 침묵이여
전기작가 캐럴 앤지어가 파헤친 W.G. 제발트의 삶과 문학 '말하라, 침묵이여' / 글항아리
캐럴 앤지어 / 글항아리
W. G. 제발트는 기묘한 작가다. 소설보다는 에세이에 가까운 글에 이런 저런 흑백 사진을 흩뿌려 놓고, 그 주인공의 여행과 유랑을 통해 역사적 사실들을 들추어냈다. 그런데 그의 책에서 역사란 늘 사실과 허구가 제 멋대로 섞인 무엇이다. 그래서 이야기들은 소설이 된다. 가장 기묘한 부분은, 그 모든 것을 간파하지 못하고 읽는데도 왜 그 소설들이 재미있는가 하는 것이다. 전기작가 캐럴 앤지어는 이런 작풍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그 근원을 찾기로 했다. “작가들은 전기 작가를 원하지 않고, 제발트도 나를 원하지 않았으리라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틀렸어요. 당신은 늘 사람들이 당신 이야기를 믿길 바랐죠. 그런데 말이에요, 진실을 알면 사람들은 당신 이야기를 덜 믿는 게 아니라 더 믿을 거예요.” 제발트의 삶과 작품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구한 최초의 서적인 이 책은 제발트의 가족과 지인, 작중 인물의 실제 모델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는 것은 물론, 그의 인생 궤적을 따라 독일과 영국 곳곳을 누비고 미발표 원고와 편지, 교정지에 연구 논문까지 아우르는 광범하고 치밀한 문헌 조사를 바탕으로 한다. 그리하여 1000쪽 분량으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작가의 실체를 집요하게 밝혀낸다. 제발트가 숨겨놓았던 수수께끼들은 하나하나 풀려지며, 문학은 한층 숭고해진다.
소비예찬
문구인 김규림이 소개하는 자신의 궁극의 물건들 '소비예찬' / 위즈덤하우스
김규림 / 위즈덤하우스
김규림은 자칭 ‘문구인’이다. 모든 것이 구독이 되어가는 이 시대에 좋아하는 물건에 둘러싸여 생활함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말하는 ‘소비 애호가’이고, 다만 ‘소유’란’ 사유’의 영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설파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진 물건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이 물건이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어떻게 이어져 있는가?” 이 책의 독특한 매력도 그 ‘사유’에서 온다. 마냥 에세이라기에는 브랜드와 디자인에 대한 꽤 깊은 정보와 인사이트를 던져주는데, 그렇다고 디자인 관련 서적이라고 하기에는 아라비아핀란드의 고요한 잔과 타오바오에서 산 보석 잔뜩 박힌 잔이 나란히 놓인 풍경이 멋쩍어진다. 임스 라운지 체어나 김춘식 장인의 나주소반을 다룬 글에서는 절로 감탄이 나오고, 부모님의 연애사와 제주 여성들의 자립을 도왔던 브랜드 스토리가 뒤섞인 한림수직 스웨터 같은 챕터에서는 괜히 뭉클해지기도 하며, 마작이건 디제잉이건 다도건 마음이 동하면 일단 배워보고 보는 대목들에서는 웃음이 난다. 그리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우리 삶의 새로운 가능성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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