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소리를 찾아서] 들녘을 울린 신명의 박자, '옹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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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리를 찾아서] 들녘을 울린 신명의 박자, '옹헤야'

뉴스컬처 2026-02-26 14:30:46 신고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경상도 들녘에서 울려 퍼지던 보리타작소리 ‘옹헤야’는 노동 현장에서 태어난 집단적 리듬이자 생존의 음악이었다. 도리깨가 허공을 가르며 내려칠 때마다 “옹헤야” 하고 터져 나오는 후렴은 곡식의 알곡을 털어내는 소리이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피로를 덜어내는 외침이었다. 노동과 음악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대, 이 노래는 삶의 박자를 이끄는 구심점이었다.

보리타작은 벼농사가 끝난 뒤 이어지는 중요한 농사 과정이었다. 겨우내 자란 보리를 봄에 거두어 말린 뒤, 마당에 펼쳐 놓고 여러 명이 둥글게 서서 도리깨질을 한다. 이때 상도리깨꾼이 선소리를 메기면 종도리깨꾼들이 “옹헤야”로 받는다. 노래는 작업 지시이자 호흡 조절 장치였고, 공동체 질서를 유지하는 구두 신호였다. 음악은 기능성과 정서를 동시에 품고 있었다.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옹헤야’라는 말은 “오헤”를 길게 늘인 입타령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뚜렷한 사전적 의미를 갖기보다 소리의 탄력을 살린 음절에 가깝다. 그러나 바로 그 비의미성 속에 집단적 에너지가 응축된다. 설명이 없어도 같은 박자에 몸을 싣는 순간 모두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경상도 지역 안에서도 후렴은 다채롭게 나타난다. '함양보리타작소리'는 ‘어’로, '거창보리타작소리'는 ‘허야’로, '산청보리타작소리'는 ‘에야 이야’로 받는다. 또 '창녕보리타작소리'와 '김해보리타작소리'는 ‘옹헤야’로 받는다. 동일한 노동 환경 안에서도 지역적 음성 습관과 억양이 후렴을 달리하며, 이는 민요가 살아 있는 구전 예술임을 보여준다. 노래는 악보 이전에 사람의 목청 속에서 전승된다.

가사는 즉흥성과 현실성이 돋보인다. “여기 쳐라”, “얼른얼른 때리라 패라” 같은 작업 지시가 섞이고, “양반의 보린가” “상놈의 보린가” 같은 사회적 풍자도 등장한다. 보리의 알곡 상태를 신분에 빗대어 표현하는 재치는 농민들의 유머 감각을 보여준다. 노동의 현장은 동시에 언어 놀이의 무대였다.

'옹헤야'는 고된 노동을 견디기 위한 심리적 장치이기도 했다. 도리깨질은 반복적이지만 상당한 체력을 요한다. 빠른 속도와 정확한 타격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신명 나는 후렴은 피로를 분산시키고 집단적 흥분 상태를 유도해 노동 강도를 완화한다. 음악은 집단적 활력의 원천이었다.

근대 이후 ‘옹헤야’는 또 다른 변화를 맞는다. 경상도 보리타작소리를 2소박 4박자, 즉 4/4박자로 편곡해 동살풀이장단에 맞춘 합창곡 ‘옹헤야’가 만들어지면서 학교 교과서에 실렸다. 이 편곡본은 선소리 2박, 후렴 2박 구조로 정리되어 보다 씩씩하고 단정한 인상을 준다. 현장의 즉흥성은 줄었지만, 대신 대중적 확산이라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이러한 과정은 전통 민요가 ‘민속’에서 ‘공연예술’로 이행하는 전형적 사례다. 생활 현장의 기능적 음악이 무대 위 재현물로 변모하면서, 음악은 기록되고 표준화된다. 동시에 원래의 노동 맥락은 희미해진다. 그러나 신명성과 집단성은 여전히 청중을 매혹한다. 이는 전통이 단절이 아니라 변형을 통해 지속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옹헤야’의 의의는 여기에서 더욱 또렷해진다. 가장 토속적인 노동요가 현대 합창 레퍼토리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산업화로 도리깨질이 사라진 오늘날에도, 이 노래는 공동체적 에너지를 상징하는 문화 코드로 남아 있다. 농경 사회의 리듬이 도시의 무대 위에서 다시 울린다.

문화사적으로 볼 때 ‘옹헤야’는 경상도 민요의 한 갈래이면서도 지역성을 넘어서는 보편성을 획득한 사례다. 지역적 정서를 품되, 빠른 메기고 받기 구조를 통해 전국적 확산이 가능했다. 노동의 소리가 예술로 전화되는 과정은 한국 민요사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평가된다.

결국 ‘옹헤야’는 보리타작소리라는 범주를 넘어선 문화적 유산이다. 그것은 몸의 박자, 땅의 호흡, 공동체의 연대가 만들어낸 집단적 음향 기억이다. 도리깨가 사라진 자리에도 그 후렴은 남아 있다. “옹헤야”라는 외침은 곡식의 알곡을 털어내던 소리이자, 시대의 먼지를 털어내며 살아남은 문화의 맥박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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