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해지자. 이 칼럼이 나갈 때쯤이면 누구도 2월 2일의 그래미 어워드에 대해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APT.’ 〈케이팝 데몬 헌터스〉 속 헌트릭스의 ‘Golden’이 케이팝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리며 역사상 최초로 본상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는 소식은 고색창연한 위키피디아에 트리비아로만 남을 것이다. “그래도 케이팝 최초로 그래미 트로피, 하나 받았다던데?” 맞다. 베스트 송 리튼 포 비주얼 미디어(Grammy Award for Best Song Written for Visual Media) 부문에서 자랑스러운 ‘Golden’이 그라모폰 트로피를 하나 챙겨 갔다. 대다수는 이 부문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거라 확신한다. 한국 시각으로 새벽 6시부터 시작한 그래미 시상식은 총 95개 부문을 시상했다. 사회자들은 속사포처럼 부문과 후보를 읽고, 수상자는 걸음을 재촉하는 백밴드의 연주에 떠밀려 사이퍼로 소감을 전하고 내려갔다. ‘음악계 최고의 영예’가 이렇게 신속하게 내려져도 괜찮은 걸까.
이날 나는 4만 8000명의 팔로워를 보유한 인스타그램 음악 채널 ‘레코드 매거진’의 한승희와 함께 그래미 해적 방송을 진행했다. 이름하여 ‘피래미 어워드’. 음악 이야기로 네 시간을 꼬박 채웠다. 한두 명 정도 들어올 거로 생각했던 동시 접속자 수는 250명이 넘었고, 최종 시청자는 7000여 명에 달했다. 솔직히 놀라웠다. 방탄소년단이 ‘Dynamite’와 ‘Butter’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 올랐을 때 급격히 성장했던 그래미에 대한 관심은 이듬해 케이팝 가수의 무관 소식이 들리자마자 곧바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과연 로제, 헌트릭스, 캣츠아이가 없었다면 그래미 어워드에 대해 관심이나 있었을까? 존박과 신아영, 김윤하 평론가의 명진행만큼은 못 하지만, 어떻게든 웃겨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헌트릭스와 로제가 빈손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빌리 아일리시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송 오브 더 이어’ 부문을 수상할 때만큼은 그러지 못했다. 빌리가 상을 받은 노래 ‘Wildflower’는 2024년 5월 발표한 정규 3집의 수록곡으로, 그래미는 무려 2년 전 노래에 지난해 싱글 커트됐다는 이유만으로 수상의 영광을 허락했다. 배드 버니가 역사상 처음 스페인어로만 된 앨범으로 ‘앨범 오브 더 이어’를 수상하지 못했다면 자칫 분위기가 험악해질 뻔했다.
그래미 어워드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그래미 시상식의 시청자 수는 지난 2년간 250만 명 이상이 줄었다. 지루한 시상 절차를 줄이고 인기 가수의 공연을 늘려도 소용이 없었다. 악명 높은 ICE에 저항하는 음악가들의 발언은 멋졌지만, 속만 시원할 뿐 시청률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래미를 주최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에는 과거 ‘비밀 위원회’가 있었다. 음악산업계의 거물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15~30명 사이의 ‘흑막’들은 수천 명의 투표인단이 뽑은 상위 후보군을 바탕으로 최종 후보를 확정했다. 2020년 당시 레코딩 아카데미 회장이었던 데보라 두건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이 조직은 심히 부패했고, 특정 아티스트들에게 특혜를 주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 결과가 우리가 그래미라고 하면 떠올리는 ‘백인 아저씨들의 컨트리 음악 사랑’이다. 가장 큰 피해자가 1992년부터 2001년까지 18회 연속 후보에 올랐지만, 단 하나의 트로피도 가져가지 못한 채 병풍에 머물렀던 머라이어 캐리, 그리고 2021년 그래미에 외면당하며 그래미 스넙(Snub)을 당한 위켄드다. 당시 비욘세, 저스틴 비버, 드레이크 등 아티스트들의 보이콧이 이어지자 레코딩 아카데미는 즉시 비밀 위원회를 폐지했다. 오늘날 그래미 어워드는 1만 3000여 명 레코딩 아카데미 회원들의 투표인단과 심사위원의 투표로만 결과가 결정된다.
그래서 오늘날 그래미는 달라졌을까. 글쎄다. 차라리 과거 비밀 위원회 시절 머라이어 캐리를 끝까지 외면하던 그래미는 ‘우리는 대중의 인기와는 타협하지 않는다’라던 밥맛 떨어지는 자존심으로 포장이라도 할 수 있었다. 오해는 마시길. 데보라 두건이 폭로한 부패와 범죄의 시절이 그립다는 말이 아니다. 단지 오늘날 시상식이 중구난방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투표권을 가진 관계자들을 단어 그대로 ‘구워 삶기’ 위한 수많은 캠페인과 로비가 전 세계에 횡행하는 가운데, 수상 결과는 관습의 유지이거나 평균의 함정이다.
2018년 이후로 올해의 신인 부문은 올해 올리비아 딘까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상을 가져갔다. 2024년 본상 4대 수상자는 정말 ‘우연의 일치’로 백인 여성 싱어송라이터였던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마일리 사이러스였다. 〈To Pimp a Butterfly〉나 〈DAMN.〉 등 힙합 역사에 길이 남을 앨범을 연이어 내놓은 켄드릭 라마 역시 드레이크를 향한 살벌한 디스곡 ‘Not Like Us’를 내놓기 전까지는 본상 수상의 영예를 누리지 못했다. 시상대 위에서 내뱉는 아티스트들의 발언들은 매우 진보적이었지만, 그래미 자체의 공정성은 느리게 변해 왔다. 그 긴 변화 끝에 올해 간신히 케이팝 곡이 후보에 오르고, 배드 버니가 이례적으로 본상 한 자리를 차지했다. 레코딩 아카데미가 죽어가는 시상식에 심폐소생술을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더라도 오늘날 세계 음악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기엔 무리가 있다.
미국 대중음악 시장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미국 팝 음악 리스너 세 명 중 한 명은 스페인어로 된 음악을 듣는다. 라틴 음악의 점유율은 이제 컨트리 음악과 큰 차이가 없다. 이민자로 만들어진 나라답게 하나의 시장 안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음악이 동시에 성장하고 있다. 배드 버니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그 현상이다. 각자의 커뮤니티로부터 등장한 슈퍼스타가 다른 커뮤니티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격변의 한가운데에서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그래미의 주도 세력이 무슨 특정한 경향이 있네 없네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그래미 어워드의 시대가 지났다는 걸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이 다양한 음악들은 “이제 당신도 미국 대중음악의 인증을 받았습니다”라는 장엄한 선언이 필요 없다. 오히려 그래미를 수상했다는 사실이 아티스트에게 고루한 이미지를 씌우는지 염려해야 한다. 브루노 마스나 테일러 스위프트 같은 음악가가 최근 몇 년간 급격하게 연륜 있어 보인다면 그건 시간의 흐름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래미를 자주 받아서이기도 하다. 아직 20대인 사브리나 카펜터나 채플 론이 데뷔한 지 10년이 넘은 기성 가수처럼 느껴지는 것도 어쩌면 그래미가 찜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억에 남는 건 결국 과거다. 매년 시상식마다 가장 진실한 순간은 누군가의 감격에 찬 수상 소감이 아니라 세상을 떠난 음악가들을 기리는 추모 공연이었다. 포스트 말론과 슈퍼밴드가 오지 오스본을 기리며 노래할 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디안젤로와의 작별을 위해 로린 힐과 수많은 후배 음악가들이 호흡을 맞출 때 비로소 영혼이 충만해졌다. 50년쯤 후에도 시상식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세상을 떠난 팝스타를 어떻게 추억하게 되려나. 아마 대다수는 누가 언제 무슨 상을 받았는지도 잊어버렸겠지만, ‘인간 음악산업의 전성기’를 추모하는 인공지능들의 ‘슬프고도 감격에 찬 음악으로 구성해 줘’라는 프롬프트로 10초 만에 꾸려진 무대가 등장할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 시상식은 박제된 거장들의 유령 사이를 헤매는 시상식이 될 것이다. 무려 2010년에 음악평론가 사이먼 레이놀즈가 ‘레트로 마니아’의 머릿말에서 내놓은 섬뜩한 예언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바야흐로 팝이 레트로에 환장하고 기념행사에 열광하는 시대다. … 내가 상상하는 각본은 대재앙이 아니라 점진적 쇠퇴에 가깝다.”
박제에 박제를 거듭하는 오늘날 대중음악에서 시상식은 어떤 의미를 가져야 할까. 26일 열리는 한국대중음악시상식을 준비하면서도 고민이 크다. 라틴 음악과 케이팝, 그리고 하이퍼팝의 한 시대를 지나 등장하는 인터넷의 ‘하이퍼-하이퍼’ 음악 무법자들이 지배하는 흐름의 맥락을 권위 있는 ‘시상식’이 제대로 짚을 수 있을까. 가깝고도 먼 미래에 아버지를 충실히 본받아 공부에서 손을 떼고 음악에만 심취한 김도헌 주니어가 ‘그때는 이런 음악이 인정받았구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아빠, 이런 음악을 좋다고 뽑았어?’라고 말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까불지 마라. 너도 그제 브루노 마스 할아버지랑 헌트릭스 할머니들 노래 하루 종일 들었잖아’라고 대답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김도헌은 음악 웹진 ‘IZM’의 에디터부터 편집장까지 맡았던 대중음악 평론가로, 음악 웹진 ‘제너레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한국대중음악상(KMA) 선정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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