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올림픽 선수들에게 세금을 지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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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올림픽 선수들에게 세금을 지원하는가?

에스콰이어 2026-02-26 00:00:00 신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는 엘리트 스포츠에 나랏돈을 투자한다. ‘세금’으로 하든, 로또 같은 복권 형식의 ‘기금’으로 지원하든 형식만 조금 다를 뿐이다. 흥미로운 건, 그 투자 규모가 정확히 국제대회에서의 성적과 비례한다는 사실. 그러니 군비 경쟁하듯 모든 나라가 엘리트 스포츠에 투자한다. 이 지점에서 궁금한 건 투자의 이유다. 답은 꽤 오래전에 내려졌다. 국가의 공적 지원이 없으면 스포츠는 극적인 쇠퇴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존재 자체가 소멸하는 스포츠마저 생긴다. 흔히 생각되는 ‘아마추어’ 스포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상업화된 미국의 미식축구나 F1, 프로축구나 프로야구 리그 역시 국가나 지자체 지원을 받으며 유지된다. 이게 끊기면 극적인 변화를 겪을 수밖에 없다. 아, 그렇구나 싶겠지만, 답을 들으니 더 궁금해진다. 스포츠가 망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 지원해야만 하니 지원한다는 이유 말고, 도대체 왜 엘리트 스포츠에 국가가 돈을 대는가?

그 정당성을 설명하기 전 먼저 생각해봐야 하는 게 있다. ‘엘리트(elite)’란 단어의 의미다. 엘리트의 어원은 ‘선택하다’는 뜻의 ‘엘리제레(eligere)’로, 이는 ‘우아한’이란 의미의 엘레강스(elegance)와 선출하다는 의미의 일렉트(elect)의 어원이기도 하다. 즉 엘리트는 ‘선택된 자’를 말하고 어쩔 수 없이 선택과 ‘집중’이란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잘하는 사람이나 팀을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이게 엘리트 스포츠의 작동 방식(modus operandi)이다. 엘리트 스포츠는 차별해야 성공한다. 문제는 과연 어느 단계부터를 엘리트로 볼 것인가다. 기준이 명확해야 지원이 가능하니까. 여기서부터 혼란스러워진다. 초등학교 운동부에 들어가면 엘리트일까? 아니면 고등학교부터? 그도 아니라면 국가대표만 엘리트로 봐야 할까? 프로스포츠 선수는? 우리는 엘리트 스포츠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개념, 의외로 복잡하다.

몇몇 스포츠 선진국으로 알려진 나라에선 이 개념의 구분이 매우 엄격하다. 우리나라는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과 실업, 프로로 이어지는 경로 전체를 엘리트 스포츠라 부르지만, 영국이나 호주 같은 나라에선 ‘국가적 투자가 필요한 최상위 경기력 단계’만을 엘리트로 한정한다. 올림픽 같은 세계 무대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단계만이 ‘엘리트 스포츠’다. 공적 자금으로 이뤄지는 지원도 그 수준에 오른 사람들만 받는다. 그전 단계는 ‘재능군’으로서, 각자 알아서 동네 스포츠클럽에서 사비를 들여 훈련한다. 우리는 조금 다르다. 대한민국의 경우 초등학교 운동부부터가 엘리트 스포츠의 ‘토대’로 규정되며 국가와 지자체의 지원을 받는다. 우리가 ‘포괄적 분산 투자 구조’라면, 서구 국가는 ‘최상의 경기력 단계’란 별도의 제도적 영역에만 지원하는 ‘선택적 집중 투자’ 형식인 셈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왜 이리 넓게 엘리트 스포츠를 규정하고 포괄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취했을까? 제도 출발의 역사적 배경에 답이 있다. 우리의 엘리트 스포츠는 1960년대 중반 혹은 1970년대 초반부터 ‘국가 홍보’라는 임무를 부여받아 국가 주도로 육성됐다고 본다. 즉 “올림픽에 나가 국가를 홍보하고 위상을 높여라”라는 박정희 정부의 명령을 최초 동력으로 보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보면 이런 명령이 황당한 건 아니다. 당시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은 아무도 모르는 나라였다. 그런 상황에서 시상대에 올라 태극기를 휘날려야 세계에 대한민국의 이름을 알릴 수 있고, 그래야 수출이 가능해지고, 그래야 나라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국민 개인의 스포츠 재능을 개발하여 자아실현의 장을 마련한다 같은 이상은 생각지도 못한 시기였으니까. 매슬로식으로 말하자면, 1960~1970년대의 우리에게 최상위의 자아실현은 언감생시였다. 가장 밑단의 생리적 욕구 해결이 급했다.

엘리트 스포츠 체계는 그런 시대에 인적자원이 풍족하게 모인 ‘학교’ 중심으로 만들어졌고, 이렇게 시작된 구조가 지금껏 변화 없이, 더 정확한 표현으로는 ‘변화시킬 수 없게’ 유지되어 왔다. 이런 상황을 제도주의자들은 ‘경로 의존성’으로 설명한다. 초기 조건에 따라 내린 선택이 이후의 선택 가능성을 구조적으로 제한하고, 제한적 상태에서 발전한 제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되돌리기 어려워진다는 역사적 경향성을 말한다. 시간은 이미 흘렀고, 이를 바꾸는 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운 상태다. 그게 지금껏 우리가 학교 운동부란 독점 모델을 중심으로 프로스포츠까지 두루두루 투자하는 이유다.

물론 이는 우리나라 엘리트 스포츠의 현재 모습을 ‘일부’ 설명할 뿐, 그것이 공적 재원의 투자를 정당화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 이해해야 할 건,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가 엘리트 스포츠에 투자하는 공통의 이유다. 그 이유를 알아야 우리나라에서 다소 기형적으로 실행되는 몇몇 엘리트 스포츠의 문제를 고민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국가는 왜 엘리트 스포츠에 투자할까? 나는 엘리트 스포츠가 하나의 사회제도로서 국가 지원을 받는 나름의 정당성은 그 유용성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 본다. 대체 뭣에 쓰느냐는 말이다.

우선 엘리트 스포츠계는 ‘사회적 공정성의 보고’로 기능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꾸준히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우리는 성별, 인종, 피부색, 지역에 따른 차별과 은밀한 반칙이 만연한 사회에 산다. 그런데 이런 차별이 통용되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곳이 바로 엘리트 스포츠다. 이곳은 사회적 배경이 아닌 개인 능력과 노력에 따른 공정한 보상이 작동하는 제도로 기능한다. 공정한 규칙이 존재하고, 모든 구성원이 그 규칙을 따르면 결과도 공정하리란 믿음의 집합체. 사회가 발전하려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필요하다는 믿음. 가령 어떤 종목에서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선수를 뽑아 그 종목의 국제대회 성적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가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믿음을 강화한다. 이런 이유로 엘리트 스포츠에서는 약물복용이나 승부조작 같은 불법행위를 꽤 엄하게 다룬다. 작은 불법도 영구 제명으로 이어지는 곳. 엘리트 스포츠는 일종의 ‘사회적 도덕의 전시장’이다.

또한 엘리트 스포츠는 대중의 롤 모델을 길러내는 사회적 인큐베이터 역할도 한다. 오래전 은퇴한 미국 프로농구(NBA) 칼 말론(Karl Malone)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프로스포츠 선수)가 선택해야 할 건 좋은 롤 모델이 될지, 나쁜 롤 모델이 될지 뿐이다. 돈과 명성을 다 얻었고, 모두가 우릴 보고 있다는 걸 알면서(자신의 행동에)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 과거에도 그랬고 최근까지도 운동선수는 대중, 특히 어린이의 롤 모델이다.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순위에서 부동의 1위가 ‘운동선수’인 건 다 이 때문이다. 그만큼 사회적 주목도가 높은 존재다. 엘리트 선수들은 사회적 차원에서 ‘도덕적 상징자본’을 획득한 이들이며, 전쟁과 폭력이 스포츠로 대체된 시대의 영웅이다. 상상해 보라. 만약 내가 보고, 배우고, 되고 싶은 존재가 없는 사회가 어떨지. 좋은 사회일수록 영웅이 많은 법이다.

가장 중요한 엘리트 스포츠의 존재 이유는 재능 개발의 장으로서의 유용성이다. 어떤 종류의 재능을 지닌 사람이 한 명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어떻게 쓰고 싶을까? 대부분은 이를 개발해 유무형의 가치를 창출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교육제도를 만들어 ‘의무교육’ 개념을 도입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국민 개개인의 재능을 찾아 개발하여 사회적으로 가치 있게 쓰이도록 하려는 것이다. 여러분은 개개인의 다양한 재능이 썩도록 내버려두는 사회에 살고 싶은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스포츠는 여러 재능 중 가장 두드러지게 판별 가능한 영역이다. 엘리트 스포츠는 특정 소수에게 특혜를 주는 제도라기보단, 인간이 지닌 ‘탁월성’이란 가치를 사회적으로 보존하고 길러내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들 세 가지 유용성 관점으로 우리나라의 현재 엘리트 스포츠계를 보자. 모든 분야가 제대로 된 가치를 지향하며 올바르게 투자되고 있을까? 엘리트 스포츠를 육성하기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재정 투입의 방향성 정도는 살펴봐야 할 때가 아닐까. 그런 차원에서 생각해 볼 분야가 우리나라에서 독특하게 작동하는 ‘실업팀’이다. 시청이나 군청 같은 지자체나 체육회, 특정 기업이 프로화되지 못한 종목을 지원하는 제도다. 일본이나 독일, 대만도 이와 유사한 제도를 운영하나 우리와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실업팀의 정식 명칭은 ‘직장경기운동부’로, ‘학교’에서 운동부를 운영하듯, ‘직장’에서 운동부를 만들자는 초기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제도다. 원래 직장 가입자가 운동부 선수로 뛰는 구조여야 하는데, 우리는 지자체나 기업 홍보 차원에서 거의 대다수가 운동만 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그래서일까. 재정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쉽게’ 해고되는 이들도 실업팀이다.

살펴봐야 할 건 이 실업팀에 공적 재원을 투자하는 현재의 방식이 앞서 말한 엘리트 스포츠의 존재 당위성과 궤를 같이하느냐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못하다. 실업팀 대부분이 매년 10월에 열리는 전국체전 출전만 신경 쓰니 국제대회에 걸맞은 실력을 갖추지 못한다. 재정 지원을 위한 평가 담당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사무관이 무엇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지원해야 할지 되물을 정도다. 고립되어 운동만 하니 소속된 지역의 지역민들과의 소통도 이뤄지지 않는다. 비슷하게 실업팀을 운영하는 독일의 경우, 핸드볼 팀 선수에게 일정 시간 의무적으로 지역 스포츠클럽팀에서 자원봉사하는 걸 계약 사항에 넣는다고 한다. 롤 모델 역할도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올림픽 때가 아니면 자기 지역의 실업팀 선수 이름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스포츠 재능 발달의 창구 역할? 오히려 기존의 우수한 선수를 연봉이 주는 안락함에 안주하게 만들어 버렸다는 비판이 있다.

엘리트 스포츠의 단면인 실업팀을 사례로 들었지만, 우리가 고민할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의 엘리트 스포츠는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사회적 유용성과 온전히 맞닿아 있는가?” 실업팀 사례가 단적으로 보여줬듯, 엘리트 스포츠가 성적만 쫓고, 기존 제도적 관성에 매몰되며, 지역사회와는 단절된 채 운영된다면, 지금까지 지지받던 공적 자원의 투자 정당성이 앞으로도 유지될 수 있을까? 몇 년 전 불거졌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군 면제 혜택이 정당하냐는 국민적 반발이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이 있을까?

이제 우리에게 남은 정언은 하나다. ‘잘 이겨라(Winning Well).’ 져도 잘 지고, 이겨도 정당하게, 이상하지 않게, 오점 없이 이겨라. 엘리트 스포츠는 정의를 상실하는 순간, 단지 그 세계뿐이 아니라 작게는 스포츠계 전체를, 크게는 사회적 이상향의 한 축을 무너뜨릴 수 있다. 지난 2022년 호주에서 발표된 ‘Australia’s High Performance 2032+’ 전략 보고서에서 제시된 ‘Winning Well’이란 핵심 철학은 좋은 방향키다. 그들은 엘리트 스포츠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했다. ‘잘’ 이기는 것. 전략 보고서의 부제는 더 정확하다. ‘호주인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우리는 잘 이겨야 한다(We win well to inspire Australians).’ 얼마 전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이 끝났다.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기고 지는 일,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스포츠의 존재 가치이자 지속가능성이다. 그 가치는 단지 항상 이긴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민에게 울림을 주는가? 그게 핵심이다.


남상우는 충남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다. 스포츠사회학과 스포츠정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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