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나만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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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나만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기분

나만아는상담소 2026-02-25 14:53:50 신고

세상에서 나만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기분

밤공기가 선선한 산책로. 캔 맥주 하나를 들고 나란히 걷다가 벤치에 주저앉는다. 직장에서 겪은 불합리한 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족에 대한 서운함,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헛헛함을 두서없이 털어놓는다.

남들이라면 “다들 그렇게 살아”,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고 가볍게 넘겼을 이야기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눈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 - “너 진짜 힘들었겠다. 내가 네 입장이었어도 딱 그렇게 느꼈을 거야. 너랑 이야기하면 꼭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우린 참 결이 비슷하네.”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내 취향, 내 상처, 내 시시콜콜한 일상까지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사람. 드디어 세상에서 나를 온전히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났다는 황홀함에 빠져든다.

그동안 겪었던 외롭고 겉돌던 연애들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한 긴 준비 과정이었구나 싶다. 마음의 빗장을 전부 풀고 그가 들어올 자리를 한껏 넓혀 비워둔다.

지독한 착취의 굴레에 첫발을 들이는 순간이다.

내 몸에 딱 맞는 맞춤옷이라는 환상

내현성 나르시시스트가 관계 초반에 보여주는 공감 능력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하다. 좋아하는 음악, 영화 취향부터 싫어하는 인간상이나 사소한 습관까지 기가 막히게 맞춰낸다.

비 오는 날 카페에 앉아 멍때리는 걸 좋아한다고 하면 자신도 그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맞장구를 친다. 사람 많은 모임은 기가 빨려서 싫다고 하면 자신도 원래 내향적이라 단둘이 있는 게 좋다고 미소 짓는다.

운명적인 영혼의 이끌림이 아니다. 상대의 취향과 약점을 빠르게 파악해 그대로 반사해 내는 치밀한 거울 행세에 가깝다.

  • - “내가 원래 매운 거 진짜 못 먹는데, 이상하게 네가 먹자고 하는 건 다 맛있어.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신기해.”

나라는 사람 자체를 온전히 사랑해서 그가 변하고 있다는 달콤한 착각을 심어준다. 숨은 의도는 서늘하다. ‘네가 나를 완벽한 운명으로 믿게 만들기 위해 지금은 기꺼이 네 입맛에 맞춰주는 연기를 하겠다’는 뜻이다.

상대의 경계심을 완전히 허물고 절대적인 의존을 만들어내기 위한 미끼다.

이 시기의 그들은 내 몸에 소름 돋게 딱 맞는 맞춤옷처럼 느껴진다. 어디 하나 끼거나 불편한 곳 없이 부드럽게 감싸준다. 세상의 거친 시선과 평가로부터 나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는 최고급 외투를 입은 기분이 든다.

평생 이 옷만 입고 살면 어떤 추위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옷장 밖의 세상을 차단하다

우리는 서로를 가장 잘 아는 특별한 사이라는 믿음이 굳건해지면 이들은 다음 단계를 밟는다. 주변 사람들과의 단절이다. 나와 세상 사이에 아주 교묘하게 선을 긋는다.

오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겪은 서운함을 털어놓으면 그는 내 편을 드는 척하며 관계의 틈을 파고든다.

  • - “네 친구들은 널 진짜 모른다. 어떻게 너한테 그런 말을 해? 나라면 절대 너 상처받게 안 둬. 다른 사람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나랑만 있자.”

얼핏 들으면 나를 지극히 아껴서 해주는 따뜻한 위로 같다. 진짜 목적은 정반대다. ‘네 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다 널 이해하지 못하고 상처만 주는 적들이니 오직 내 곁에만 머물러라’라는 고립의 주문이다.

객관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주변의 시선들을 하나둘 차단하며 내 세상을 축소시킨다.

점점 친구들을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다.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않던 고민을 오직 그에게만 쏟아낸다. 내 세상의 크기가 그 사람 한 명으로 좁혀진다.

그가 없으면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싹튼다.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며 입어야 할 다양한 평상복들을 스스로 다 버리고 오직 그라는 맞춤옷 하나만 남겨두게 된 셈이다.

숨통을 조여오는 치수

관계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완전히 넘어갔다고 판단되는 순간 상황은 급변한다. 완벽했던 공감은 온데간데없고 툭하면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는 낯선 사람이 눈앞에 서 있다.

이제부터는 내가 그를 일방적으로 이해해야 할 차례다. 초반에 보여주었던 헌신과 다정함을 밀린 청구서처럼 불쑥 내민다.

  • - “넌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이면서 왜 그렇게밖에 말을 못 해? 내가 그동안 너한테 얼마나 다 맞춰줬는데, 넌 그 정도도 양보 못 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거나 조금이라도 독립적인 태도를 보일 때 던지는 날 선 원망이다. ‘내가 초반에 그만큼 연기하며 널 구슬려 놨으니 이제부터는 네가 내 기분을 맞추고 나를 떠받들어라’라는 노골적인 강요다.

당황스럽고 억울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한때 나를 세상에서 가장 특별하게 만들어주던 그 따뜻한 눈빛을 다시 찾고 싶어 발버둥 친다.

내가 조금 더 이해하면, 내가 조금 더 그의 비위를 맞추면 예전의 그 영혼의 단짝으로 돌아올 거라 믿으며 안간힘을 쓴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봐 입을 꾹 다문다.

한번 줄어들기 시작한 맞춤옷은 멈추지 않고 쪼그라든다. 숨을 쉴 때마다 갈비뼈를 조여온다. 나를 한없이 편안하게 해주던 옷이 이제는 몸을 억누르고 피를 안 통하게 만드는 구속복으로 변해버렸다.

예전처럼 편안해지려면 내 살을 깎아내서 그 줄어든 옷에 억지로 구겨 넣는 수밖에 없다. 내 감정, 내 취향, 내 자존감마저 뭉텅 잘라내며 오직 그의 기분만 살피게 된다. 늘 눈치를 보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자책하는 나날이 이어진다.

낡은 옷을 벗고 맨몸으로 나설 때

나만 완벽하게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났다는 건 처음부터 허상이었다. 그 사람은 당신의 영혼을 깊이 알아본 게 아니다. 당신을 어떻게 다뤄야 가장 쉽게 통제할 수 있는지 사용 설명서를 재빠르게 훑었을 뿐이다.

세상에 나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고 찰떡같이 알아주는 운명의 상대란 존재하지 않는다. 달콤했던 착각은 이제 내려놓는 게 낫다.

타인에게 온전히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다는 열망은 자연스럽다. 누구나 그런 결핍을 조금씩 안고 산다. 내현성 나르시시스트들은 인간의 그 본연적인 외로움과 갈증을 기가 막히게 후벼 판다.

당신의 그 순수한 열망을 볼모로 잡고 자신의 결핍을 채울 도구로 썼다.

예전의 그 다정했던 모습이 진짜라고 자꾸만 믿고 싶어질 거다. 지금의 차갑고 이기적인 모습은 일시적인 스트레스나 내 잘못 때문일 거라고 합리화하며 계속 곁에 머문다.

그건 그냥 당신의 간절한 바람일 뿐이다. 처음 보여준 완벽한 공감은 당신을 낚기 위한 미끼였고, 지금 당신을 깎아내리며 숨 막히게 통제하는 모습이 그 사람의 앙상한 진짜 민낯이다.

이제 나를 옥죄는 그 옷을 벗어던져야 한다. 벗어버리면 당장 세상의 찬바람에 살갗이 닿아 춥고 허전할 거다. 그 사람이 없으면 세상천지에 내 편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 두려움이 밀려온다.

막상 겪어보면 그렇지 않다. 숨통을 틀어막고 피를 말리는 옷을 입고 버티는 것보다는 맨몸으로 시원한 바람을 맞는 게 훨씬 살 만하다.

한 사람에게 내 세상 전체를 의탁하고 그 사람의 표정에 내 하루의 기분이 좌우되는 삶은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다. 혼자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부딪히고 서툴게 조율하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평범한 세상 밖으로 걸어 나오면 된다. 나를 잃어버리면서까지 억지로 입어야 할 옷은 세상에 없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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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규진 소장 저 | 북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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