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 마이 러브', 대사 없이 관객의 목을 조르는 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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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 마이 러브', 대사 없이 관객의 목을 조르는 광기

엘르 2026-02-22 19:31:53 신고

오래된 난제가 있다. 사랑은 상대가 좋아하는 걸 해 주는 걸까, 싫어하는 걸 안 하는 걸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속 그레이스(제니퍼 로렌스)는 남편 잭슨(로버트 패틴슨)에게 이끌려 화려한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시골에 정착한다. 울창한 숲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낡은 집은 자살한 잭슨 삼촌의 소유물이었다. 잭슨은 뉴욕의 코딱지 만한 방 대신 이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고 싶다. 그레이스는 내키지 않는 마음을 억누르고 남편이 좋다는 대로 따른다. 언제부터 쌓였는지 모를 낙엽과 먼지를 치우고 집을 꾸미는 것도 처음에는 나름 재미있었다. 층간 소음, 벽간 소음 신경쓰지 않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짐승처럼 섹스하는 게 이 부부의 유일한 낙이다. 그러다가 덜컥 아기가 생겼다. 그레이스와 잭슨의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시골에 산 이후로 급격히 단조로워진 그레이스의 삶에 해소되지 않는 스트레스가 파고들었다. 위대한 문학 작품을 쓰겠다는 작가로서의 꿈은 이제 그레이스가 아닌 타인의 기억에만 남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면서 글을 쓸 수는 없다. 설거지를 하면서 청소기를 돌릴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씩 설거지와 청소를 맡는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잭슨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주일에 사흘을 일하고 집에 와서 생색을 낸다. '무의미한 존재가 되는 느낌'이라 별 구경 하기 싫다는 그레이스 곁에서 천체 망원경을 끼고 산다. 그레이스의 유일한 오락인 섹스조차 보채지 않으면 시작되지 않는다. 잭슨은 그 와중에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아내 앞에 개를 데리고 나타난다. 조용하던 집은 아기 울음과 개 짖는 소리로 가득차 버리고 만다. 그레이스의 발산하지 못한 욕망은 결국 분노로 표출된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을 해 주지도, 싫어하는 것을 안 하지도 않는 잭슨은 이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 잭슨의 이상한 집착한 그레이스로 하여금 남편의 한계를 시험하듯 자기 파괴로 질주하도록 만든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조실부모해 가족이 없는 그레이스는 시어머니 팸(시시 스페이섹)에게 기대려 해보지만 거기서 확인한 건 남편 대신 총을 끌어안고 사는 자신의 미래다. 임신하기 전에는 주변의 아무도 그 힘듦을 이야기한 적 없지만, 아이를 갖고 나서는 모두가 묻지도 않은 경험담을 늘어 놓으며 참견을 한다. 팸만은 그레이스를 이해한다는 표정을 짓지만 위로는 피상적이다. 그레이스의 근원적 고독을 어렴풋이 읽어낼 수 있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관객 뿐이다.


사실 〈다이 마이 러브〉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여성의 임신과 출산, 육아에 수반되는 갈등은 굳이 미디어에서 찾지 않더라도 어느 곳에서든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이 여성을 주저 앉히는 사회적 문제든, 호르몬의 작용 탓에 오는 개인적 문제든 마찬가지다. 다만 이 영화는 산후우울증을 앓는 여성의 특정 서사로 고립된 인간의 권태와, 거기서 말미암은 신경증을 영상화하며 보편적 특별함을 획득한다. 〈다이 마이 러브〉는 그레이스의 고독이 커지는 과정을 아카데미 포맷의 화면비 속에서 시간의 부피로 설명한다. 그의 고립감이 관객 체험의 영역으로 전환되도록 만든 비상한 연출이다.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 〈다이 마이 러브〉


영화는 이미 엉망진창이 된 그레이스의 머릿속을 옮겨 놓은 듯 흘러간다. 뒤죽박죽 엉킨 타임라인 위로 기호적인 요소들이 충돌할 때, 현실과 환상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이로써 미쳐가는 그레이스는 영화 그 자체로 화한다. 〈다이 마이 러브〉가 러닝타임에 비해 현저히 적은 대사량에도 질식할 듯한 압박감을 주는 건 캐릭터의 광기가 필터 없이 부딪혀 오기 때문이다. 숨통을 조여 오는 '흔한 괴로움'을 그대로 스크린에 옮겨다 놓은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떨까. 감독의 작품 중 〈케빈에 대하여〉가 아들 케빈(에즈라 밀러)의 존재로 모성 신화를 박살냈다면, 〈다이 마이 러브〉에서는 어머니가 그 역할을 맡은 걸지도 모르겠다. 3월 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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