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만화를 그리고 싶다③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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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 만화를 그리고 싶다③ 방법

문화매거진 2026-02-20 09:55:39 신고

[아름다운 것] 만화를 그리고 싶다② 도구에 이어 

[문화매거진=MIA 작가]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진행하다 보면, 아이디에이션(Ideation) 과정을 거쳐 스토리보드 단계에서 매번 같은 질문이 들어오곤 한다. 바로 ‘글을 먼저 써야 하는지, 그림을 먼저 그려야 하는지’다. 아무래도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스토리보드 양식을 사용하기 때문인 것 같다. 창작 수업이 으레 그렇듯 무조건 따라야 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이런 경우 글을 먼저 쓰라고 조언하는 편이다. 처음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가이드는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 그림책 스토리보드 예시 / 사진: MIA 제공
▲ 그림책 스토리보드 예시 / 사진: MIA 제공


“내용을 바꿔도 되나요?” 그리고 어김없이 그다음 질문이 따라올 때, 나는 늘 같은 답변을 한다. “얼마든지요.” 수강생의 질문은, 사소해 보이지만 다시 말해 그림으로 그릴 만한 이야기가 예상치 못하게 떠올라 그것을 표현하고 싶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나는 왠지 이때가 마치 새로운 언어에 자극받아 창작의 샘이 막 솟아오르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과장된 해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업 순서를 생각하면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아이디에이션 단계에서 단어나 문장의 형태로 이야기를 구상하던 창작자가 글과 전혀 다른 성질의 텍스트, 즉 그림으로 이야기를 다시 써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바로 이 스토리보드 단계에 이르러서다. 네모난 빈칸이 창작자에게 ‘그림을 그리라’고 요구할 때, 글로는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장면으로 떠오른다. 미리 구상해 둔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려던 계획은 바뀌기 시작한다. 혹은 어떤 이야기는 그릴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소재를 아예 바꾸기도 한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나는 요즘 느끼는 ‘만화를 그리고 싶다’는 충동의 정체가 그림으로 말하는 법을 더 탐구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하게 되었다. 그래서도 일부러 글 칸이 없는 스토리보드 노트를 샀다. 좀 더 극단적으로, 글을 완전히 배제해 보는 시도가 좋을 것 같았다. 새삼 만화가들의 정석적인 작업 순서는 어떤지 궁금증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대로 배울 필요보다는 온전히 이 노트의 가이드라인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는 직감을 믿어보면서 말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첫 칸에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네 컷 안에서 무언가 달라질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리고 이어서 나머지 칸을 채운다. 만약 노트의 칸이 세 열로 되어 있었다면 난 세 컷 만화를 그렸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구매한 노트는 네 열로 되어 있었고 단지 그렇기 때문에 네 컷 만화를 그리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작업 방식을 시도할 때는 프로세스를 가능한 한 단순하게 만드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그걸 즐기는 편이라, 이번에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다.

며칠간 그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빈칸을 응시하는 습관이 생겼다. 예전에 동료 작가가 새 작업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 중 하나로 ‘책장에 꽂힌 드로잉북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림이 속삭인다’라고 말한 적 있는데 나도 비슷한 상황인 것 같다. 이런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언뜻 신비롭고 허황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예술가와 예술의 의지가 공명하는 순간에 대한 흔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 만화 작업 노트 / 사진: MIA 제공
▲ 만화 작업 노트 / 사진: MIA 제공


느린 속도로 칸 하나하나를 겨우 채운 노트를 보고 있으려니 작은 발버둥 같다. 지금은 그저 과정에서 생기는 몇몇 질문들을 따라가 볼 뿐이다. 이 조그만 칸 안에 배경을 꼭 그릴 필요가 있을까? 당연히 필요하다고 여겨온 생각 자체가 선입견은 아닐까? 한 장면 안에서 무언가가 부족하지 않게 있다고 느끼게 만드는 최소 조건은 무엇일까? 덕분에 요즘의 나는 그럴듯한 이유를 찾기보다 망설임 없이 먼저 연필을 드는 쪽에 더 가까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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