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가파도 풍경 / VISIT JEJU-제주관광공사 제공
제주 본섬의 번잡함에서 잠시 벗어나 바다 너머의 또 다른 고요를 마주하고 싶을 때, 사람들은 흔히 ‘섬 속의 섬’을 찾는다.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남쪽으로 배를 타고 10여 분 남짓이면 닿는 가파도는 그중에서도 가장 평온한 휴식을 선사하는 곳이다. 수평선과 맞닿을 듯 낮게 깔린 이 섬은 국토 최남단 마라도와 제주 본섬 사이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숨을 쉬고 있다. 가파도에 발을 내딛는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것은 시야를 가로막는 높은 건물이 하나도 없다는 해방감이다.
가파도 풍경 / 연합뉴스
가파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섬으로 불린다. 최고 지점의 높이가 해발 약 20m 내외로 섬 전체가 완만한 평지를 이룬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덕분에 가파도는 무릎이 좋지 않은 어르신들이나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지가 된다. 가파른 오르막이나 계단이 거의 없어 해안 길을 따라 걷는 4.2km 코스나 섬 중앙을 가로지르는 올레길 10-1코스 4.3km를 걷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도 한두 시간이면 섬 한 바퀴를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은 가파도만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다.
가파도 청보리 / VISIT JEJU-제주관광공사 제공
이 섬을 상징하는 최고의 풍경은 단연 봄날의 청보리다. 봄이 되면 가파도는 약 18만 평에 달하는 광활한 대지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든다. 거친 바닷바람을 이겨내며 자란 가파도의 청보리는 다른 지역의 보리보다 키가 쑥쑥 자라, 바람이 불 때마다 마치 초록색 파도가 일렁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돌담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청보리 물결과 그 너머로 보이는 푸른 바다의 대비는 보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정화시킨다. 이 시기에는 가파도 청보리 축제가 열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상춘객들로 섬이 활기를 띠기도 한다.
가파도 여행의 묘미는 단순히 보리밭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길을 걷다 고개를 돌리면 바다 건너 제주 본섬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우뚝 솟은 산방산과 그 뒤로 위엄 있게 자리 잡은 한라산, 그리고 형제섬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바다 위에 펼쳐진다. 제주 본섬 안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섬 밖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모습’은 가파도를 찾은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다. 길가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과 낮게 쌓인 현무암 돌담은 제주다운 서정을 더하며 산책의 즐거움을 배가시킨다.
해녀 불턱 / VISIT JEJU-제주관광공사 제공
가파도로 향하기 위해서는 서귀포시 대정읍에 위치한 운진항(모슬포 남항)을 이용해야 한다. 가파도는 섬 자체에 별도의 관람료를 받지는 않지만, 입도 시 '마라해양도립공원' 입장료 1000원은 별도로 결제해야 한다. 운진항 기준 왕복 승선권은 성인 1인당 1만 5000원 선으로, 시기나 운항사 상황에 따라 다소 변동이 있을 수 있으니 예매 시 확인이 필요하다. 가파도로 향하는 배편은 운진항에서 정기적으로 운항되나, 바다 날씨에 민감한 만큼 출발 전 반드시 운항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 청보리가 일렁이는 봄철에는 전국에서 인파가 몰려 표가 매진되는 경우가 잦으므로 온라인 예약을 권장한다. 또한 승선 시 신분증 지참은 필수다. 섬 내부에는 소박한 식당과 카페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산책 중 갈증을 달래줄 청보리 아이스크림이나 구수한 미숫가루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가파도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볼거리가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섬의 울림을 노래 삼아 힐링 산책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이보다 더 완벽한 장소가 없다. 자전거를 대여해 시원한 바닷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이들도, 느릿한 걸음으로 섬의 구석구석을 눈에 담는 이들도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가파도의 평화로움을 향유한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수평선과 나란히 걷고 싶은 날, 가파도는 그 자리에 낮게 엎드려 찾아오는 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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