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의 귀환, 이봄소리의 시즌…봄소리 앤 클라이드[공소남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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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만의 귀환, 이봄소리의 시즌…봄소리 앤 클라이드[공소남 시즌2]

스포츠동아 2026-02-14 11:11: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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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니로 분한 이봄소리 사진제공=쇼노트

보니로 분한 이봄소리 사진제공=쇼노트



오래전 기사들을 다시 열어봤다. 생각보다 나는 이 배우를 오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썼구나, 싶어 아련해졌는데, 그는 데뷔 초부터 도드라져 입체감을 가진 배우였다.

“김솔을 맡은 김다혜는 파이팅과 호흡이 무척 좋았다.”
2015년 11월, 뮤지컬 ‘무한동력’을 보고 쓴 리뷰의 한 줄. 2017년 ‘록키호러쇼’ 기사에서는 “개그감을 장착한 임혜영 같다”였다.

몇 년이 흘러 2020년 9월. ‘마리퀴리’ 캐스팅보드에서 ‘이봄소리’라는 낯선 이름과 내가 보았던 김다혜를 동기화하는 데에는 5초도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 뜨거운 유리 같은 눈과 서사를 깊숙이 품은 목소리를, 내 몸이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봄소리’라는 활동명으로 새롭게 시작한 이 배우의 이후 행보는 여러분이 보신 바 그대로다. 이날 나는 이렇게 썼다.

“안느 코발스키 역 이봄소리의 연기도 흡족하다. 마리의 연기를 지지하면서도 안느라는 개성 있는 캐릭터를 명료하게 드러냈다. 튀려고 하지 않는데 튀어나온다. 마리(김소향)와의 이중창은 절절하기 그지없었다.”

이봄소리는 요즘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의 보니다. 지난 연말에 시작한 이 공연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3월 2일까지 이어진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를 배경으로 한다. 성실함이 보상이 되지 않던 시대였다. 웨이트리스 보니 파커와 가난과 차별로 세상으로부터 밀려난 클라이드 배로우. 두 사람은 서로를 만나며 도주와 범죄의 길로 들어선다. 은행을 털고 도망치며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무법자 커플’이 되지만, 이 질주의 끝은 총탄 세례였다. 관객은 결말을 알고 들어가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165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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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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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즌은 11년 만의 귀환이다. “초연 때와 체감이 꽤 다르다”는 말에 이봄소리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보셨어요. 거의 창작 초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만들었다고 해요. 심지어 어떤 넘버는 빼고, 어떤 넘버는 추가했고요. 콘셉트도 많이 바뀌었어요. 배우들도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라이선스 뮤지컬인데 그렇게까지 손을 보는 것이 가능했을까.
“원작자분들이 많이 열려 있으셨어요. 그래서 저희가 많이 비틀어보고 새로 조합해 보는 작업을 할 수 있었던 거죠.”

‘보니 앤 클라이드’는 실존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이기에 늘 ‘범죄자 미화’라는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연출과 제작자들, 배우들까지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고 한다. 누군가는 납득하고, 누군가는 여전히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겠지만, 작품을 관람하다 보면 곳곳에서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이 작품의 엔딩에도 묻어 있다.

“엔딩을 세 가지 버전으로 논의했습니다. ‘만약 첫 살인을 하지 않았다면’ 같은 상상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가면 너무 변명처럼 보일 수 있어서 조심스러웠습니다. ‘어쨌든 사람을 죽였잖아’라고 보시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래서 결과보다 과정을 어떻게 보여드릴지에 더 집중했습니다.”

이번 시즌 이봄소리의 ‘보니’는 기존의 보니와는 확실히 다른 면을 드러낸다. 보니가 갖고 있는 ‘섹시한 범죄자’의 이미지에서 확장되어 있다. 좀 더 영민하고 무모하지 않은 용기를 갖고 있는 보니다. 클라이드가 하려고 하는 일을 정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봄소리 보니의 사랑은 또 한 번 도드라져 있다. 

“대본만 읽었을 때는 저도 ‘미친 여자네’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김태형) 연출님이 ‘절대 그렇게 연기하지 말라’고 요구하셨어요. 보니는 똑똑한 애라고요. 꿈이 있고, 시를 쓸 만큼 예술적 감각도 가진 인물이거든요. 나쁜 건 나쁜 줄 알고, 선은 넘으면 안 된다는 기준도 있는데 클라이드에게 끌리고 흔들리면서 변해가는 인물이라고 하셨어요.”
이봄소리는 모범생처럼 연출의 아이디어를 흠뻑 받아들였을 것이다.

확실히 이봄소리의 ‘보니’는 충동으로 내달리는 인물이 아니라, 알고도 그 길을 가는 사람으로 보인다. 무모한 질주가 아니라 눈을 크게 뜬 선택으로 읽히는 것이다.
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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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이야기를 꺼냈다. 이 작품에서 소품으로 몇 번이나 등장하는 사과는 당연히 식탁에 올려진, 행인1과 같은 사과가 아니다. 리뷰에 이렇게 적었다. 보니와 클라이드가 꿈꾼 건 낙원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이름의, 지긋지긋한 ‘에덴’으로부터의 탈출이었을지 모른다고. 초록색 사과가 엄마의 손에서는 위안이지만, 보니가 한입 베어 문 순간 ‘선악과’처럼 선택이 돼버린다고.

“이 해석, 제대로 본 겁니까. 너무 혼자 달린 겁니까.”
이봄소리가 웃었다.
“그 리뷰를 읽고 조금 놀랐어요. 저하고 비슷한 생각을 많이 하신 것 같았거든요. 배우마다 사과를 다르게 해석하기도 하는데, 연습실에서 연출님이 주고자 했던 방향은 기자님이 말씀하신 선악과 쪽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이봄소리는 사과 얘기를 조금 더 들려주었다.
“첫 살인을 저지른 후 ‘사과가 썩었다’며 둘이 싸우는 것도 다 비유잖아요. ‘내가 분명히 예쁜 걸 담아왔는데 썩었어. 그럼 지금 나보고 이 썩은 걸 먹으란 소리야?’ 이런 말들은 사실관계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좋은 남자인 줄 알았는데 완전히 다른 얼굴이구나. 근데 지금 나보고 이런 삶을 같이 살자는 거야?’ 같은 마음이 들어가죠. 또 엄마 말대로 그냥 단맛 나는 사과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쳐다도 안 봤으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수 있고요.”

왜 하필 초록색 사과였을까. 사과는 유혹의 상징으로 긴 시간 수많은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해 왔다. 그 유혹의 사과는 하나같이 황홀할 정도로 빨간색이었다.
“연출님이 초록색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풋사과 같은 느낌이요. 다 익은 사과가 아니라, 어리고 미숙한 상태를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선악과 이미지도 같이 있는 거죠.”

공연에서 보았던 장면들이 다시 이어졌다. 에덴은 안전하지만 숨이 막힌다. 탈출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대가가 따른다. 이 작품은 그 대가를 미화할 생각이 애초부터 없었다.
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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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직전, ‘집으로 가자’는 선택에 대해서도 물었다. 결말을 알고 있는데 이들은 왜 돌아가려 했을까. 망설이는 클라이드에게 ‘돌아가자’며 용기를 주는 쪽은 보니였다. 난 이 장면이 참 슬펐다.

“이미 희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아닐 수도 있잖아’라는 오기 같은 마음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공연에서의 보니는 엄마를 정말 보고 싶어 하는 인물입니다. 엄마도 ‘(내 딸은) 죽어서라도 돌아올 것’이라고 말하잖아요. 운명을 직감했지만, 엄마에게 돌아가는 것도 자기 운명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죠.”

총격전 중 클라이드의 형 벅이 죽는 순간은 이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등장한다. 보니의 변곡점 중 하나로 보았다. 이봄소리도 부정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죽는 걸 볼 때는 점점 무뎌질 수 있는데, 가까운 사람이 타인에 의해 죽는 걸 보면 다르잖아요. 벅의 죽음을 보고 ‘이건 잘못됐다’고 깨닫는 것 같습니다. 그때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극 중에서 날 것의 긴장감이 터지는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살벌한 살인의 현장도, 긴박한 추격신도 아니라는 점이 의외다. 보니와 벅의 아내 블랜치가 대치하는 순간이다.

“보니와 블랜치가 부딪히는 장면은 마치 한국 드라마처럼 느껴졌다”는 말에 이봄소리가 까르르 웃었다.
“저만 그렇게 기 싸움을 세게 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보니 역 배우들은 조금 더 장난스럽게 풀거나, 가볍게 긁는 식이라면 저는 아예 악의를 담고 들어가거든요.”

블랜치는 극 중에서 가장 ‘정상인’에 가까운 인물이다. 열렬한 기독교 신자로, 남편에게 끊임없이 자수를 권한다. 반면 보니는 이미 선을 넘은 상태다. 세상을 향한 반발심으로 가득하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보니)는 블랜치가 마음에 안 들었어요. 인사도 안 받아주고, 저를 벌레 보듯 하면서 ‘이 남자(클라이드) 만나지 말라’고 하잖아요. 그 말이 귀에 들어갈 애면 애초에 클라이드랑 도망 안 나왔겠죠. ‘네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이런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이 상대를 향해 던지는 날 선 대사들은 단순한 신경전이 아니다. 서로의 삶을 부정하는 선언에 가깝다. 블랜치가 회개하라고 하자 보니는 세상에 대한 분노로 되받아친다.
“블랜치가 계속 좋은 길로 가자고, 자수하라고 하는데 저는 그게 더 화가 나는 거죠. 저는 이미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자꾸 ‘깨끗해질 수 있다’고 하니까요.”
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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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쇼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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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봄소리는 2012년 뮤지컬 ‘우리들의 청춘 롤리폴리’로 데뷔했다.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를 거쳐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했고, 어릴 때부터 뮤지컬 배우를 꿈꿨다. 고2 때 본 ‘노트르담 드 파리’가 그 꿈을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에스메랄다의 ‘보헤미안’을 불러 대학에 진학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김다혜에서 이봄소리로 이름을 바꾼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오디션을 많이 보던 때였는데요, 제 이름이 너무 흔하니까 감독님들께서 잘 기억을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꾸고 싶었습니다. 예전부터 ‘봄소리’라는 이름을 좋아했는데, 엄마 성이 이 씨라서 ‘이봄소리’로 하겠다고 했습니다.”

배우에게 이름은 명함이 아니라 기억이다. 기억돼야 다시 불린다. 유명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는 뮤지컬 배우 ‘김봄소리’를 만나게 되었을지 모른다. “진짜 신기한 게, 사람들이 이제 제 이름을 절대 안 잊어버리더라고요”.

마지막으로, 공연을 보러 올 관객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이렇게 정리했다.
“뮤지컬은 넘버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은 처음 들어도 귀에 꽂히는 넘버가 계속 나옵니다. 어떤 캐스트로 오셔도 충분히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기왕이면 제 회차로 보러 와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하하”

데뷔 초부터 주머니 속 호두처럼 단단히 여물어 있던 이 배우는 이제 제 봄을 만난 나무처럼 힘차게 가지를 뻗고 있다. 이봄소리라는 이름이 앞으로 어떤 무대에서 또 어떤 인물을 피워낼지, 그다음 막을 기다리는 일은 꽤 설레는 일이다. 이 봄 소리의 계절은 이제부터가 진짜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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