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셰프' '키스는 괜히 해서' B급 로코 '밤티' 드라마의 성공 비결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폭군의 셰프' '키스는 괜히 해서' B급 로코 '밤티' 드라마의 성공 비결

코스모폴리탄 2026-02-13 00:00:01 신고

3줄요약

오래전 드라마 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한쪽엔 전공 책을, 다른 한쪽엔 각종 드라마 작법 책을 끼고 다녔던 그 시절 내게 드라마란, 미지의 세상을 열어주는 창구와도 같았다. 노희경 작가의 〈그들이 사는 세상〉을 보며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의 삶에 ‘나’를 대입하며 꿈을 정교하게 빚었고, 〈달콤한 나의 도시〉의 ‘오은수’(최강희)를 보며 어엿하게 일도 사랑도 할 줄 아는 30대의 어느 날을 그렸으며, 〈커피프린스 1호점〉 〈내 이름은 김삼순〉 〈연애시대〉와 같은 드라마를 통해선 수많은 형태의 사랑을 만났다. 내친김에 더 오래전의 기억도 꺼내본다. 〈토마토〉를 볼 땐 구두 디자이너, 〈이브의 모든 것〉이 인기일 땐 아나운서, 〈호텔리어〉를 보고 나서는 호텔리어로, 학기 초 학교에 제출하는 가정통신문의 ‘장래 희망’ 칸은 당시 어떤 드라마를 보고 있었느냐에 따라 여러 번 그 내용이 바뀌곤 했다. 내게 드라마란 내 인생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루던 굵은 가지였다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드라마 연대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결코 내 삶에 ‘밤티’ 로코 드라마는 없었다는 걸 주장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입맛이 바뀌고,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했던가. 30년 넘게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드라마에 발을 들이고 만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밤티’ 드라마에.

‘밤티’라는 이 낯선 용어부터 짚고 넘어가자. X(구 트위터)에서 처음 등장해 유행하기 시작한 ‘밤티’는 젠지들의 신조어로, 현재는 ‘못생기거나 촌스러운 것’을 뜻하는 대명사로 통용된다. 이 표현을 드라마에 대입하면 촌스럽고 유치한, 이른바 B급 감성의 드라마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밤티’ 감성 다분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에 빠지게 된 현상을 단순히 나이를 먹어서, 취향이 바뀌었다는 개인적 변화로 치부하기에는 개연성이 부족하다. 2025년 방영된 ‘밤티’ 드라마를 살펴보라. 〈키스는 괜히 해서!〉 〈우주메리미〉 〈폭군의 셰프〉 등 시청률과 화제성 모두 챙긴 이 드라마들은 ‘밤티’ 감성이 촌스럽고 재미없는 구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2026년에도 여전한 저력을 지닌 장르임을 말하고 있다. 지난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밤티’ 드라마로 〈폭군의 셰프〉와 〈키스를 괜히 해서!〉 두 작품을 꼽을 수 있을 텐데, 가장 최근 종영한 〈키스는 괜히 해서!〉는 첫 방송 4.5%의 시청률로 시작해 자체 최고 시청률 6.9%를 기록했고 마지막 회 순간 최고 시청률은 8.1%를 찍으며 방영 내내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해외에선 국내 이상의 성적을 냈는데, 넷플릭스 비영어쇼 부문 2주 연속 1위, 방영 내내 4위 안에 랭크되는가 하면,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은 종영 이후에도 넷플릭스 영어·비영어 쇼를 통틀어 6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제주도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남자 주인공 ‘공지혁’(장기용)과 여자 주인공 ‘고다림’(안은진). 꿈같은 데이트 후 여자 주인공은 사라지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주인공이 팀장으로 있는 회사에서 둘은 재회한다. 하지만 쓰러진 엄마와 사채로 종적을 감춘 동생으로 생계가 어려워진 여자 주인공이 싱글 대디이자 절친한 남사친의 아이 엄마로 위장 취업했다는 것이 문제. 한국 드라마의 근본인 외모와 재력 모두 겸비한 남자 주인공과 힘들어도 명랑함을 잃지 않은 햇살 같은 여자 주인공, 서류 하나면 위장 취업은 바로 확인될 텐데 거뜬히 스루하는 무근본 전개, 온갖 클리셰를 범벅한 설정까지. 예외라고는 1도 없는 드라마가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아는 맛’에 있다. 이 클리셰를 배우들의 뻔뻔한 연기와 코믹과 설렘을 넘나드는 연출, 적재적소에 배치한 직관적인 대사를 통해 뻔한 맛을 극강의 ‘아는 맛’으로 극대화한 것. 그리고 (표면적으론) 유부녀를 사랑하게 되는, 다소 민감한 설정이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제작진이 섬세하게 설계한 남자 주인공의 공도 크다. ‘지혁’은 시종일관 조심스럽고 다정하며, 또 솔직하다. ‘다림’을 향한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지만, 일말의 선을 넘지 않도록 아버지의 불륜으로 가정이 파괴된 트라우마를 심은 세밀한 설정, 폭력적이지 않고 늘 여자 주인공을 배려하는 사소한 행동은 2025년의 시대 감수성을 담고 있다.

한편 〈폭군의 셰프〉는 저 세상 ‘밤티’로 똘똘 뭉친 드라마다. ‘망운록’이라는 책을 읽다가 조선시대로 떨어진 셰프 ‘연지영’(임윤아), 엄청난 요리 실력 덕분에 단번에 수라간 대령숙수가 되고 ‘이헌’(이채민)의 요리사가 되며 로맨스에 빠져들게 되는 전형적인 타임슬립 로코. 조선시대로의 타임슬립, 폭군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여자 주인공이라는 클리셰는 물론이고 역사 고증은 1도 고려하지 않은 설정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조선시대에 난데없이 서바이벌 요리 대회가 개최되거나, 마카롱이나 슈톨렌 같은 현대의 음식이 등장하고, 음식의 맛 표현을 하는 장면에서 팡팡 터지는 과장된 CG는 그야말로 지금껏 본 적 없는 ‘밤티’ 감성이었다. 여기에 남성만 가능했던 대령숙수 자리에 여성이 오르는 전복적 설정, 다채로운 음식의 비주얼과 박진감 넘치는 요리 경연 장면, 역사적 사실로 인해 예견된 두 주인공의 이별과 절절한 서사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드라마에 몰입하게 만드는 데 충분했다. 마지막 회에서 ‘지영’과 함께 현대로 오게 된 ‘이헌’이 “어떻게 되었냐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얼버무린, 허무맹랑한 엔딩에도 불구하고 〈폭군의 셰프〉는 시청률 17%를 기록하며 케이블 12부작 드라마 중 최고 시청률이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넷플릭스에서도 비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중 가장 빠르게 누적 시청 3억 시간을 돌파한 올해의 문제작이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반향을 일으키는 점 또한 흥미로운데, 넷플릭스 도입 초반 K드라마의 정체성은 거대한 세계관, 무거운 서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면, ‘밤티’ 드라마는 K드라마의 팔레트를 확장하는 역할을 하며 다양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거대한 자본과 기술력이 투입된 블록버스터 작품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밤티’ 드라마가 왜 그리 잘되는 걸까? 드라마 작가 K는 “아는 맛이 무섭다는 절대 불변의 진리. 그것이 ‘밤티’ 드라마가 잘되는 이유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에 캐비아 요리가 나온다고 한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궁금해하겠나. 하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김삼순’(김선아)이 양푼 비빔밥을 먹는 장면에선 어김없이 양푼을 따라 꺼낸다. 적재적소에 입맛을 자극하는 ‘단짠’의 조합처럼 ‘밤티’ 드라마의 잘 버무려진 클리셰는 시대를 초월하고 별 5개를 받기에 충분하다”라고 말한다. 물론 시각적 카타르시스와 굵직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이야기는 그 자체로 볼 가치가 있다. 하지만 수년간 블록버스터 작품 위주의 공급이 이어지며 거기서 느낀 피로감 또한 상당했을 것. 무거운 작품들 사이에서 시청자들은 숨통을 트일 곳이 필요했고, ‘밤티’ 드라마가 사막 속 불현듯 나타난 오아시스가 된 거다. 이제 ‘오글거림’을 부정적인 감정이 아닌, 웃음 포인트로 여기며 ‘밈’화해 소비하는 젠지의 성향 역시 ‘밤티’ 드라마 흥행에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덕분에 〈김비서가 왜 그럴까〉 〈사내맞선〉 〈상속자들〉 〈꽃보다 남자〉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밤티’ 드라마가 역주행하는 동시에, 지금의 시대상과 젠지를 겨냥한 각종 클리셰와 인터넷 소설 재질의 대사를 일부러 과장해 가미한 새로운 ‘밤티’ 드라마가 탄생하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며 과거에도, 지금도 존재하는 ‘밤티’ 드라마를 보며 깨닫게 되는 점도 있다. “소위 ‘밤티 로코’로 사랑받는 드라마들을 보기 위해서는 개연성이라는 늪을 건너 핍진성이라는 어둠의 동굴을 지나야 한다. 재벌 2세와 가난한 5수 공시생이 같은 호텔에 머물 확률, 상서로운 요리책을 펼쳤다가 과거로 빨려 들어가는 장면 등이 자꾸만 발목을 붙잡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소 냉소적인 자세로 드라마를 구경하다시피 하던 나는 소소한 부분들에서 속절없이 무너진다. 여자의 작은 아픔을 기억하고 있던 남자, 젖어버린 아버지의 선물을 소중히 말리는 딸, 손녀를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은 할머니의 고군분투 등에서 말이다. 그러고 나면 드라마에게 마음을 온전히 내어주고 해피 엔딩까지 함께 달려갈 수 있게 된다.” 〈아무튼, 아침드라마〉 남선우 저자의 말처럼, ‘밤티’ 드라마의 포장지를 한 꺼풀 벗겨내면 절로 마음을 주게 되는 가장 순수한 감정과 마주하게 된다. 말도 안 되는 클리셰가 주인공의 여정을 가로막지만, 해피 엔딩에 다다르는 이 스토리엔 어떠한 침전물 없이 투명한 감정, 사랑만이 남는다. 〈키스는 괜히 해서!〉를 연출한 김재현 PD는 한 인터뷰를 통해 말했다. “생각하지 않게, 지루할 틈 없이, 웃기고 설렐 수 있게,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를 만들고 싶었다. 가장 아이 같은 문장으로 가장 분명한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동화처럼 따뜻하고 낭만을 잃지 않은 이 스토리의 공식, 2026년 ‘밤티’ 드라마가 존재하는 이유다.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