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유럽, 의료기기 또는 의약품으로 분류...엄격한 임상시험 거쳐야
방치하는 사이 거대시장 형성, 국민 건강 위협...관리방안 마련 시급해
지난해 5월 대만 위생복지부(MOHW)는 대만피부과의학회를 비롯한 18개 주요 의학회와 대학병원에 ‘피부분말주사제형 제품관리규정’에 관한 공문을 전달했다. 대만 위생복지부는 인체 조직물이라는 명목으로 관리사각지대에 있었던 제품인 ‘피부분말주사제형(Dermal Powder Injectable)’은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인체유래제품, ‘최소조작’·‘동종사용’원칙 지켜야
대만은 피부분말주사제형은 더 이상 인체조직물이 아니기 때문에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하기 위해 엄격한 임상시험을 거쳐야 한다고 밝혔다. 또 인체시험과 데이터를 바탕으로 품목허가를 받아야만 시장에 유통할 수 있으며 대만 내에서 제조하는 제품뿐 아니라 수입행위도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대만만의 독자적 판단이 아니라 국제적인 흐름이다. 미국은 인체유래제품에 대해 ‘최소조작’과 ‘동종사용(Homologous Use)’이라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특히 진피를 가공해 분말형태로 만든 것은 최소조작을 넘어선 것으로 간주, 의료기기나 생물학적 제제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임상시험과 품목허가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야 한다.
특히 이번 대만에서 ‘동원사용(同源使用)’이라고 언급한 것은 미국 가이드라인의 동종사용원칙을 반영한 것이다. 즉 피부분말주사가 진피 본연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용·성형 효과를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이는 동종사용이 아니라는 판단인 것이다.
유럽 역시 미용제품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피부분말주사제형은 인체에 침습적으로 주입된다는 점에서 규제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의료기기로 분류하고 있다. 따라서 CE 인증 과정에서 임상평가보고서는 물론 실제 인체에서의 안전성과 유효성 데이터를 필수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또 사후부작용 모니터링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대만 위생복지부가 임상시험을 통해 등록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은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 발맞춘 것이다. 이번 대만의 조치는 그동안 공통적으로 제기됐던 ‘인체조직 가공제품의 기준’과 ‘안전성 검증’ ‘효능 입증’이라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까지 환자를 시험대에 올릴 것인가
문제는 우리나라다. 현재 국내 피부 ECM(세포외기질) 기반 주사제들은 여전히 ‘조직이식재’로 분류돼 있고 병·의원에서 ‘스킨부스터’라는 이름으로 시술되고 있다. 피부구조를 지탱하는 진피를 분쇄해 주사했다면 과연 조직 본래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는지, 또 이를 주사하는 것이 동종사용원칙에 부합되는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식약처도, 관련 학회도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
식약처 관계자는 “무세포동종진피는 현재 인체조직으로 관리하고 있으며 전문가회의 및 외국의 분류사례 등에 대한 연구를 거쳐 향후 관리방안을 적극 검토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 대학병원의 피부과 교수는 “의료기기·의약품과 인체조직이식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안전성·유효성 검증을 위한 임상시험 여부”라며 “인체조직이식재는 해당 조직이 없는 대상자에게 구조적으로 동일한 조직을 이식해 본래의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재료로 기존과 동일한 역할을 해 유효성을 검증할 임상시험을 생략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도 안전성은 지속적으로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추적관리가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단 기존 기능 복원이 아니라 기능 향상 또는 변조를 목적으로 한다면 이 시술이나 약제·의료기기를 적용해 유무형의 손실을 대체할 수 있는 충분한 이익이 있는지 확인하는 유효성 입증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부작용 발생 시 소비자가 입을 수 있는 피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남용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과거 안전하다고 여겼던 유방모형물도 한참 뒤에 발생한 지연형 부작용으로 인해 리콜과 기업파산까지 발생한 적이 있듯이 인체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물질은 항상 주의해야 한다. 특히 시트형태의 조직이식재는 끄집어내면 제거할 수도 있지만 분말형의 경우 현실적으로 주입한 피부를 다 도려내는 것 외에는 제거할 방법이 없다.
이처럼 심각한 문제 발생위험이 있는데도 기업과 병원들은 자극적인 문구로 소비자를 현혹하며 거대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이번 대만 위생복지부가 공문에서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고 일갈한 대목은 우리 식약처가 상대적으로 관대하게 대응하는 자세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해야 할 정부가 규제 공백을 방치하는 사이 국민은 검증되지 않은 주사제의 실험대상이 되고 있다. 규제는 산업 발전의 발목을 잡는 장치가 아니며 어떤 산업도 건강보다 앞설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명확하고 안전한 규제체계를 마련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