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박입니다.”
“내 남편도 밀양 박이에요! 너무 반가워요!”
카자흐스탄 고려인협회 알렉산드라 최 부회장은 나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끌어안았다.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성씨라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전혀 어색하지 않게 서로 반겼다. 멀리 떨어져 살아왔지만 같은 뿌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찰나에 확인했다.
고려인들은 떠나고 싶어서 떠난 사람들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시기 우리 선조들은 살아내기 어려웠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러시아로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들을 ‘고려인’이라 부른다.
|
|
|
|
고려극장을 찾았을 때 오래 발걸음을 멈추게 한 전시물이 있었다. 1939년 3월 25일자 근무 명령서였다. ‘홍범도 동지를 고려극장 월급 100루블의 임시 경비원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생애 마지막 직업은 크즐오르다 고려극장의 경비원이었다.
고려극장 1층의 작은 전시 공간에는 홍범도 장군의 유품과 함께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진 고려극장의 여정도 함께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과 국립조선극장의 한글 대본, 러시아어로 극을 올리기 위한 행정서류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낯선 땅에서 고국의 말과 글 그리고 우리의 문화로 버텨낸 그 시간의 흔적들은 한국인의 정체성으로 그 시대를 살아내는데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홍범도 장군의 러시아 입국 신고서 사료를 보았던 기억이 있다. ‘입국 목적과 희망’이라는 항목에 단 네 글자가 적혀 있다. ‘고려 독립’. 그의 희망으로 만들어낸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
|
|
고려인협회를 방문했을 때는 또 다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일보의 오래된 지면들이 보관되어 있었고, 1923년 3월 1일 삼일절을 기리는 그날의 신문 사본도 포함돼 있었다. 전면이 한글로 발행된 신문에는 간절하게 독립을 바라는 글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소중한 지면들은 철제 캐비닛 속에 묶인 채 보관돼 있었다. 체계적인 보존 환경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고려일보의 지면들은 복원과 보존이 시급하다. 그것들은 고려인 사회의 기록을 넘어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제는 한국 정부가 나서 사료 복원과 보존을 지원해야 할 때다.
한 켠에는 한국 교과서도 쌓여 있었다. 뿌리를 지키기 위해 한국어 교육이 필요하지만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인들은 지금 한국의 우리 젊은 세대보다 한국 전통문화를 더 소중히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요즘 명절과 집안 대소사에서 전통을 천천히 잊어가는 데에 반해 그들은 전통을 여전히 예전의 방법대로 이어나가며 소중하게 여기고 있었다.
|
|
그 모습을 바라보다 나는 결국 눈물을 흘렸다. 고려극장 극장장님이 조용히 말했다.
“한국에서 와서 우리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 말 앞에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숙연해졌고,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깊게 밀려왔다. 내년이 고려인 강제이주 90주년 이라고 한다. 사실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 늦게 그들을 돌아보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한국을 떠날 때는 나라를 잃었었지만, 지금은 나라를 되찾았고 한국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한국이 잘사는 나라가 되니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운지 모릅니다. 카자흐스탄 에서도 우리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오히려 고려사람이라고 더 잘 대해줍니다.”
그들은 한국이 자신의 뿌리이자 역사적 고향이고, 카자흐스탄은 자신들을 살 수 있게 해준 고향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이 더 잘되기를 바란다고, 나에게도 “더 잘 살아가세요”라고 축복했다.
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이 세운 카스피안 그룹의 한국 법인에서 일하는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다. 고려인들과 함께 일하며, 그들이 선조들로부터 계승해 온 정신과 애정의 깊이를 가까이에서 체감하고 있다. 그들의 마음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연장된 삶이다.
고려인은 과거의 동포가 아니라 지금도 한국과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미 카자흐스탄의 경제리더로 성장해 알마티 인근에 알라타우 신도시 개발을 이끌고 있다. 그 입구에는 고려인 사회가 힘을 모아 조성하는 ‘K-파크’가 만들어지고 있다. 고려인을 받아준 카자흐스탄에 대한 감사와 선조에 대한 계승 그리고 한국 문화를 담는 문화복합단지다. 약 10ha(3만250평) 규모로 조성돼 2027년 고려인 강제이주 90주년에 맞춰 문을 여는 것이 목표다.
|
대한민국 역사박물관을 찾았을 때 고려인들의 독립운동사가 충분히 조명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한 축이지만, 제대로 기록해놓은 곳을 찾지 못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이 있었을 때, 현지 고려인 사회가 느꼈던 좌절감도 결코 작지 않았다고 들었다. 오랜 시간 독립운동의 기억을 지켜온 사람들에게 그 사건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자신의 역사를 부정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고려인의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일부다. 그 역사적 평가는 국내 정치 이념의 색깔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 이어가야 할 공동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한국인의 정체성과 문화를 지키기 위해 긴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질문하게 됐다.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독립을 위해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시간 위에 오늘의 한국이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지금의 국가적 위상을 이루기까지 그들의 노력이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고려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정체성의 일부이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한국을 향하고 있었다.
이제는 고려인 강제이주 90주년을 앞둔 이 시점에서, 한국이 응답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