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조국혁신당이 11일 더불어민주당이 제안한 ‘연대 및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공식 동의했다.
전날 민주당이 ‘지방선거 전 합당 중단, 선거 후 통합 논의’로 방향을 튼 데 대해 하루 만에 화답한 것이다.
조국 대표는 이날 국회 긴급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제안한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한다”며 “이번 주 안으로 당무위원회를 열어 오늘의 결정을 추인받겠다”고 밝혔다.
다만 혁신당은 수용과 동시에 민주당 측에 ‘연대’와 ‘통합’의 구체적 의미를 분명히 해달라고 가이드라인을 요구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면서 “지방선거 연대가 맞는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어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뒤 기자들과 만나 “양당 간 후보 정리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국민께 보고드릴 수 있는 선거 연대가 돼야 한다”며 교섭단체 구성 조건 완화 등 정치개혁 의제에 대한 민주당의 답변을 촉구했다.
이번 통합추진준비위 구성 합의는 양당 관계가 요동친 끝에 나온 ‘접점’이다.
지난달 22일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전격적으로 지선 전 합당을 제안했으나 당내 반발이 거세지면서 19일 만인 지난 10일 합당 논의 중단을 선언했다. 이 과정에서 혁신당 측을 향한 비방성 여론까지 확산되며 양당 간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정 대표가 “혁신당 당원에게 사과한다”며 합당 논의 중단과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동시에 꺼낸 것은 급전환에 따른 충격을 완충하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혁신당 역시 사과를 수용하면서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쐐기를 박아 당원들의 상처를 환기했다.
정치권에선 혁신당의 이 같은 신속한 수용에는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합당 논의를 일방적으로 제안했다가 일방적으로 철회한 상황에서, 혁신당이 후속 제안마저 거부할 경우 ‘연대 자체를 원하지 않는 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힐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빠르게 수용한 뒤 연대의 범위와 통합의 내용을 규정하는 논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셈법도 깔려 있을 수 있다. 조 대표가 이날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고 경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합당 논의 과정에서 민주당 내부 계파 갈등이 논의를 좌초시켰다는 인식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면서, 향후 논의에서 혁신당의 요구가 정당한 것임을 선제적으로 각인시키려는 의도로도 읽힌다.
문제는 민주당의 반응이 기대만큼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이날 “조 대표의 의사 표명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서도 “현재 만남이나 소통 등은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통합추진준비위를 제안해 놓고도 구체적 일정과 의제 설정에는 한 발 물러선 모양새다.
이는 민주당 내부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합당 논의 자체가 당내 격한 반발 속에 중단된 만큼, 곧바로 혁신당과의 접촉에 속도를 내기엔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준비위를 만들자’는 제안은 합당 중단에 따른 관계 파열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을 뿐, 즉각적인 실행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향후 양당의 당면 과제는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어떤 형태의 연대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다. 혁신당이 요구하는 ‘실질적 선거 연대’가 실현되려면 후보 단일화, 공동 공약, 선거운동 협력 등 구체적 합의가 뒤따라야 한다. 반면 민주당이 내부 반발을 의식해 ‘우호적 공존’ 수준에서 그칠 경우, 혁신당의 반발이 재연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온다.
박 선임대변인은 합당 논의가 지선에 미칠 영향에 대해 ‘양날의 칼’이라고 표현했다. 혁신당 독자 후보에 대한 유권자 신뢰가 떨어질 수 있는 반면, 향후 합당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지지층 확장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이번 국면이 조 대표의 정치적 판단력에 대한 시험대라는 평가도 나온다. 조 대표는 지난달 민주당의 합당 제안에 전격 호응했다가 상대측의 일방적 철회를 지켜봐야 했고, 이번에도 후속 제안을 하루 만에 수용하며 ‘대승적 결단’을 강조했다.
그러나 연대의 수위와 실행 방안이 모호한 채로 시간만 흐를 경우, 혁신당으로서는 선거 준비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동시에 당의 정체성마저 흐려지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직면할 수 있다.
결국 민주당의 제안에 응하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혁신당의 독자적 정치 공간과 협상력을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 ‘큰 정치’ 내세우며 대의를 앞세워 온 조 대표가 실리없는 명분에 반복적으로 끌려가는 모양새가 굳어질 경우, 당 안팎에서 리더십에 대한 의문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합당이라는 큰 물줄기는 일단 멈췄지만, 양당이 띄운 통합추진준비위가 실질적 논의 기구로 작동할지, 형식적 ‘완충 장치’에 머물지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려 있다”며 “양당의 온도 차가 좁혀지지 않는다면, 준비위 구성 합의는 합당 무산이라는 파열음을 덮기 위한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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