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대 후반 - 리키 마틴: 니트 톱과 레더 팬츠로 퍼포먼스 의상이 곧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될 수 있음을 각인시킨 순간.
- 2000년대 초반 - 안드레 3000: 라임 컬러 자켓과 체크 타이로 턱시도 중심의 시상식 드레스 코드를 과감히 비튼 프레피 룩을 선보였다.
- 2010년대 초반 - 저스틴 비버 & 칸예 웨스트: 베스트 중심의 단정한 포멀웨어, 그리고 블랙 벨벳 수트로 각기 다른 방식의 절제된 테일러링을 제시했다.
- 2020년대 초반 - 해리 스타일스: 체크 자켓과 퍼 머플러로 젠더리스 감성을 레드카펫의 새로운 언어로 확장했다.
- 2020년대 중반 - 켄드릭 라마: 데님 온 데님과 커스텀 턱시도를 오가며, 시상식 룩의 경계를 허무는 현대적 포멀웨어의 방향을 제시했다.?.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배드 버니의 모습. / 이미지 출처: www.reuters.com
지난 1일, 제68회 그래미 어워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올해의 앨범 트로피는 배드버니가 차지했고, 올해의 레코드는 켄드릭 라마가 2년 연속 수상의 영광을 안았습니다. 또한 올해의 노래는 빌리 아일리시에게 돌아갔죠. 그래미는 전 세계 뮤지션이 한 번쯤 꿈꾸는 무대이자, 음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무대가 주목받는 이유는 수상 결과만은 아닌데요. 그래미의 레드카펫, 퍼포먼스 의상, 수상 순간의 차림은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 각 아티스트의 정체성과 시대적 감각을 단번에 보여주는 장면으로 소비되죠. 많은 패션 관계자들이 매년 이 무대를 주목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스카아파렐리의 꾸뛰르 피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선 배드 버니의 모습. /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schiaparelli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스카아파렐리의 꾸뛰르 피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선 배드 버니의 모습. /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schiaparelli
레드카펫 위 샤론 오즈번과 영블러드의 모습. /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garmmys
애프터 파티 속 밴슨 분과 영블러드의 모습. / 이미지 출처: 인스타그램 @garmmys
이번 그래미에서도 유독 돋보였던 남자 아티스트들이 있었습니다.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가 제작한 최초의 남성 꾸뛰르 피스를 착용하고 등장한 배드 버니, 가슴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레오퍼드 퍼 칼라로 포인트를 준 블랙 레더 자켓을 입은 영블러드까지. 오늘날의 그래미는 단순한 뮤지션이 아닌 아티스트로서의 존재감을 확인받는 자리로 변했습니다. 그렇다면 과거는 어땠을까요? 라틴 팝의 아이콘부터, 힙합의 틀을 깬 스타일, 젠더리스 무드의 레드카펫 룩까지. 1999년부터 지금까지 남자 아티스트들이 그래미에서 남긴 결정적 패션 순간을 연도별로 되짚어봤습니다.
1. 1999년 - 리키 마틴, 퍼포먼스 의상이 아이콘이 되던 순간
제41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의 백스테이지에서 마돈나와 리키 마틴이 나란히 사진을 찍은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41회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서 자신의 히트곡인 ‘Livin' La Vida Loca’을 선보이는 리키 마틴.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1999년, 리키 마틴은 ‘La Copa de la Vida’ 퍼포먼스 무대로 라틴 팝의 글로벌 확장을 알리는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그는 리브 니트 톱과 블랙 레더 팬츠를 착용했는데, 이는 단순히 무대 의상으로 끝나지 않았죠. 레더 팬츠는 조명 아래에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냈고, 퍼포먼스 전체의 에너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했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이후 이 룩은 90년대 말 남성 퍼포먼스 스타일의 표본으로 남게 된 순간이었죠. 이 의상이 주목받은 이유는 단지 섹시함 때문이 아녔습니다. 당시 시상식 퍼포먼스 의상이 음악과 스타일을 동시에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이 퍼포먼스는 수많은 매체에서 그래미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히며, 리키 마틴의 존재감을 더욱 공고히 하기도 했죠.
2. 2004 - 안드레 3000, 드레스 코드를 비튼 프레피 룩의 등장
제46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라임 컬러의 자켓과 체크무늬 캡을 매치하여 독창적인 프레피 룩을 선보인 안드레 3000.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아웃캐스트 멤버인 빅 보이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안드레 3000. 당시 베스트 앨범상을 포함해 3개 부문에서 수상을 했다.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2004년은 아웃캐스트가 ‘Hey Ya!’로 그래미 무대를 장악한 해였습니다. 안드레 3000은 라임 톤 자켓, 화이트 셔츠, 체크 패턴 타이를 매치해 현장에서 가장 독창적인 프레피 룩을 선보였습니다. 전통적 블랙 턱시도가 지배하던 자리에, 컬러감과 패턴이 뚜렷한 룩을 선택한 건 당시로서는 대담한 시도였죠. 포멀한 타이와 캐주얼한 컬러 자켓의 조합은 하이·로우믹스 스타일의 가능성을 그래미 레드카펫에 처음 선보였던 자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이후 많은 아티스트가 자신의 드레스 코드를 재해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룩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최근 시상식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세련된 스타일처럼 보인다는 점에서도 당시의 파급력을 짐작할 수 있겠네요.
3. 2010 - 저스틴 비버, 소년 스타의 포멀웨어 재해석
제52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포멀한 룩을 선보이는 16살의 저스틴 비버의 앳된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52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포멀한 룩을 선보이는 16살의 저스틴 비버의 앳된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 레드카펫에서 발렌시아가 커스텀 룩을 입고 자세를 취하는 저스틴 비버.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무대에서 브랜드 SKYLRK의 실크 복서 쇼츠를 입고 공연을 하고 있는 저스틴 비버. / 이미지 출처: 그래미.
2010년 그래미 어워드 포토존에서 16세였던 저스틴 비버는 블랙 베스트와 동일 톤의 타이를 매치한 매우 단정한 룩으로 등장했습니다. 자켓 없이 베스트를 전면에 드러낸 스타일은 당시 10대 팝 스타라는 정체성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는데요. 과하지 않으면서도 단정하고, 포멀웨어 테이블에 자신만의 언어를 얹는 방식은 훗날 레드카펫에서 종종 재현되는 스타일링 패턴이 되기도 했죠. 당시 이 룩은 소년 스타가 수트를 어른스럽게 입으려 하지 않은, 새로운 포멀웨어 해석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16년이 지난 제68회 그래미 어워드에서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스타일링을 선보였죠. 비버는 레드카펫에서 발렌시아가의 블랙 커스텀 룩을 입고 등장했는데요. 박시한 핏의 자켓과 루즈하게 떨어진 팬츠는 정제된 느낌과 세련된 느낌을 동시에 주기도 했죠. 이후 이어지는 그래미 무대에서는 과감하게 셔츠를 입지 않고, 그가 새롭게 선보이는 패션 브랜드 'Skylrk'의 실크 복서 쇼츠를 중심으로 한 미니멀 룩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마치 거실에서 곡을 연주하는 듯한 친밀하고 솔직한 퍼포먼스를 연출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이처럼 비버는 2010년 당시의 포멀웨어 해석에서 2026년 퍼포먼스의 과감한 미니멀 룩까지, 자신의 스타일 스펙트럼을 꾸준히 넓혀왔습니다. 과거의 단정한 모습과 비교하면, 이번 무대 의상은 자신의 음악과 패션을 결합한 퍼포먼스 인식의 확장을 보여준 장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4. 2015 - 칸예 웨스트, 블랙 벨벳 수트로 남긴 절제된 스타일링
제57회 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에서 발망의 블랙 벨벳 수트를 입고 나타난 칸예 웨스트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57회 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에서 킴 카다시안과 함께 포토존에서 다정히 사진을 찍은 칸예 웨스트.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2015년 그래미에서 칸예 웨스트는 발망의 블랙 벨벳 수트를 선택해 레드카펫에 등장했습니다. 화려한 디테일 없이도 벨벳 특유의 은은한 광택과 테일러링이 만들어낸 실루엣은, 절제된 룩으로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줬죠. 별다른 액세서리 없이도 룩 자체가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한 이 스타일은, 힙합 아티스트가 레드카펫에서 보여줄 수 있는 우아한 절제를 보여주기에 충분했죠. 칸예 웨스트는 이후 여러 레드카펫에서도 틀에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을 보여 왔고, 특히 이 2015년 순간은 그의 패션 변천사에서도 중요한 기준점으로 자리합니다.
5. 2021 - 해리 스타일스, 구찌와 젠더리스 감성의 확장
제63회 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에서 구찌의 체크 자켓에 퍼플 퍼 머플러를 매치하여 젠더리스 룩을 선보인 해리 스타일스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63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구찌의 체크 자켓에 퍼플 퍼 머플러를 매치하여 젠더리스 룩을 선보인 해리 스타일스의 모습. / 이미지 출처: 그래미.
2021년 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에서 해리 스타일스는 구찌의 체크 자켓과 브라운 벨벳 팬츠, 그리고 퍼플 퍼 머플러를 매치해 독보적인 젠더리스 룩을 선보였습니다. 클래식한 체크 패턴 위에 강한 텍스처와 컬러를 더한 이 스타일은 단순한 시각적 인상을 넘어, 1970~80년대 록스타를 떠올리게 하는 레트로 무드를 완성했죠. 레드카펫 이후 이어진 공연에서는 다른 컬러의 퍼 머플러를 활용해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스타일링의 재미를 더했습니다.
시간이 흐른 2026년 그래미에서 그는 디올의 커스텀 바 자켓과 스트레이트 팬츠, 여기에 민트 컬러 발레 플랫을 매치한 룩으로 등장했습니다. 셔츠 없이 자켓만 걸친 연출은 남성 레드카펫에서 성별과 형식의 경계를 유연하게 넘나드는 선택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죠. 조나단 앤더슨의 감각이 반영된 이 센슈얼한 스타일은 해리 스타일스 특유의 스타일 실험 정신을 다시 한번 각인시킨 순간이었습니다.
6. 2025 - 켄드릭 라마, 데님 온 데님으로 경계를 허물다.
제67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메종 마르지엘라의 데님 셋업을 입고 수상을 한 켄드릭 라마.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67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메종 마르지엘라의 데님 셋업을 입고 수상을 한 켄드릭 라마.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제68회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샤넬의 커스텀 턱시도를 입고 수상 소감을 하는 켄드릭 라마. / 이미지 출처: 게티 이미지.
2025년 그래미에서 켄드릭 라마는 메종 마르지엘라의 데님 셋업을 입고 등장하며 시상식 드레스 코드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캐주얼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데님을 구조적으로 정제해 끌어올린 이 룩은, 전통적인 수트가 아니어도 충분히 설득력 있는 시상식 패션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줬죠. 룩만큼이나 화제가 된 건 그가 착용한 네크리스였는데요. 주얼리 디자이너 벤 볼러(Ben Baller)가 제작한 다이아몬드 체인의 예수 피스로, 다소 담백할 수 있는 의상에 강한 힙합 무드를 더하는 결정적인 포인트가 됐습니다.
1년 뒤인 2026년 그래미에서 그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샤넬의 커스텀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켄드릭 라마는 정제된 블랙 수트 위에 진주 장식 체인을 더해, 격식과 개성을 동시에 드러낸 것이죠. 클래식 포멀웨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룩은 샤넬과의 협업이라는 점에서도 의미를 더했죠. 이날 그는 음악적으로도 큰 성과를 거두며, 스타일과 음악 양쪽에서 강한 존재감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그래미 어워드는 매년 음악의 역사를 쓰는 무대이자, 남성 패션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습니다. 퍼포먼스 의상부터 레드카펫, 그리고 수상 순간의 옷차림까지 아티스트들의 선택은 그 시대의 감각을 고스란히 담아내기 때문인데요. 다음 그래미에서는 또 어떤 패션의 장면이 탄생할지, 자연스럽게 기대가 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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