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거울로 우주를 비추다” 수행자의 예술 ‘성파선예’ [전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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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거울로 우주를 비추다” 수행자의 예술 ‘성파선예’ [전시리뷰]

경기일보 2026-02-10 18:58:48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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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열린 기자정담회에서 성파스님이 작품 세계에 담긴 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성파선예(性坡禪藝)는 수행자 성파가 풀어내는 예술의 본질이자 정수, 수행의 길을 감상할 수 있다. 이나경기자

 

“똑같은 사물일지라도 거울에 때가 묻어 있는 것과 거울이 맑을 때 그 모습은 달리 보입니다. 마음속 거울에 따라 비치는 세상은 다를 것이니 눈앞의 그림이나 글자 그 자체에 얽매이지 말고, 그저 스스로 평안하게 작품 너머를 느끼면 됩니다.”

 

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성파선예(性坡禪藝): 성파스님의 예술세계’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기자정담회에서 성파스님이 던진 이 말은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화두와도 같았다. 정답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고, 깨달음을 찾아 헤매는 수많은 대중에게 그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곧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불교의 진리를 꺼냈다.

 

전시는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가’를 묻는다. 여든을 훌쩍 넘은 노 스님은 지난 작업 과정을 이야기하는 내내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는 이번 전시를 ‘도 닦는 자’의 그림으로 봐달라고 말했다. 종교를 떠나,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존재가 도를 닦는 수행자라는 겸허한 인식이다. 삶의 태도와 마음가짐이 고스란히 담긴 이번 전시가 평범한 대중에게도 고요함과 평안함을 전할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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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을 맞이해 열린 특별전 ‘성파선예 : 성파스님의 예술세계’에서 만나볼 수 있는 성파스님의 삼천불전 도자불상 일부. 윤원규기자

 

“도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평상의 마음이 도”라고 말한 스님은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삶 가운데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빚고 옻칠하고 천을 염색해 온 시간을 돌아봤다. 그는 이 모든 순간이 ‘날마다 좋은 날’이었다고 말한다. 이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으니, 이 전시를 통해 많은 분들이 마음을 조금이라도 평안하게 갖고, 사회가 안정되길 염원한다”고 전했다.

 

경기도 주최,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 주관으로 열린 이번 특별전은 성파스님이 2025년에 제작한 옻칠 회화를 중심으로, 그간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통도사 삼천불전(三千佛殿)의 도자불상 일부와 장경각의 16만 도자 대장경판 일부, 불교 교리의 핵심을 담은 반야심경 작품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통도사 밖으로 나온 옻칠·도자·서예를 아우르는 방대한 작업은 한 수행자가 평생에 걸쳐 축적해 온 사유의 기록이자 수행의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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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 특별전 ‘성파선예(性坡禪藝): 성파스님의 예술세계’에서 관람객들이 ‘미륵존’(가운데)과 삼천불전 도자불상을 감상하고 있다. 윤원규기자

 

성파스님은 조계종 제15대 종정이라는 상징적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40대 중반 통도사 주지를 마친 뒤, 전통문화와 예술의 연구와 실천이라는 특별한 길을 택했다. 흙으로 구운 삼천불전과 16만 도자 대장경 조성은 이러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스님은 “도 닦는 사람이 그린 그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기교나 양식이 아니라, 수행의 태도가 작품을 만든다는 인식이다. 방수·방충·방부라는 옻의 유익한 물성에 주목한 작업은 서양 미술과는 다른 동양 예술의 가치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전시는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제1부 ‘영겁(永劫)’에서는 아득하고 먼 우주의 시작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옻칠 회화와 삼천불 도자 불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스님은 이를 “무엇을 먼저 생각하거나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시작한 그림”이라고 설명했다. 붓으로 통제하기보다 깊은 명상에 잠긴 상태에서 손이 가는 대로, 옻이 흐르고 굳어지는 과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우주에 자리한 단 하나의 존재처럼 자리한 작품 ‘미륵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보는 이에게 미소가 전염된다. 동시에 수많은 별과 함께하고 있는 공존을 드러낸다.

 

제2부 ‘물아불이(物我不二)’에서는 과거·현재·미래를 상징하는 삼천불 도자 불상이 물과 거울, 반사를 통해 배치된다. 6m 수중에 설치된 옻칠 회화는 물에 비친 나와 거울에 비친 우주를 동시에 보여준다. 불상들은 타자가 아니라 ‘나 자신’의 얼굴로 다가온다. 약병을 든 약사여래 역시 특별한 존재라기보다,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하는 마음의 상징이다. 각기 다르면서도 닮아 있는 조그마한 불상 하나하나를 들여다볼수록, ‘나’와 ‘남’의 경계는 흐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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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 내건 옻칠염색 작품과 수중에 잠긴 옻칠 회화 작품 등이 다양하게 연출돼 있다. 이나경기자

 

제3부 ‘문자반야(文字般若)’는 반야심경을 주제로 한다. 흙으로 구운 도자판과 옻으로 쓴 글씨는 반야심경 가운데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사유를 시각화한다. 형상은 실체가 아니며, 공은 곧 형상이라는 깨달음에 대해 스님은 “글자에 매이지 말고, 그 안에 담긴 뜻을 보라”고 말한다. 물질과 정신, 음과 양, 비움과 채움이 하나임은 읽는 경전이 아닌, 삶 속에서 체득되는 진리다.

 

전시를 마무리하는 제4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선 가장 자유롭고 유희적인 옻칠 회화가 펼쳐진다. 스님은 “옻칠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다. 평상의 마음으로 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수행과 예술, 삶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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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에 걸쳐 성파스님이 제작한 16만 도자대장경 가운데 일부와 반야심경 작품이 전시장에 조성돼 있다. 흙으로 만들어낸 도자대장경은 그 자체로 남다른 울림을 준다. 이나경기자

 

전시는 ‘중력’이란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모든 것을 당기는 우주의 기본 법칙처럼, 성파선예의 사유는 ‘나’에게로 귀결된다. 내가 곧 우주이며, 우주가 곧 나라는 인식. 나와 남, 인간과 사물, 생명과 비생명의 구분 또한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성파스님이 반복해 강조한 ‘일체유심조’는 공존과 배려라는 동시대의 관람객에게 건네는 가장 분명한 메시지다.

 

전시는 5월 31일까지 이어지며, 개막 후 3일간 드론과 비행선을 활용한 옻칠 염색 작품의 공중 전시가 진행된다. 이달 중순부터 전시 연계 참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3·4월에는 특강, 5월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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