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문영서 기자】 인공지능(AI)을 통한 생산성 혁신이 인플레이션 없는 성장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제기되는 가운데 실업률 상승과 물가 압력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경기 부양과 물가 안정 사이에서 통화정책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에서다.
AI 도입이 기업의 비용 구조를 개선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기적으로는 노동시장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자동화와 효율화가 가속되면서 일부 산업에서는 고용 감소가 불가피해지고, 이로 인해 실업률이 상승할 경우 소비 위축과 경기 둔화 압력이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10일 AP에 따르면 올해 아마존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1만6000여 명을 해고할 예정이며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지난해 각각 약 600명과 1만5000명을 감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지난 10월 구조조정 때도 1만4000여 명을 해고한 바 있다.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기업의 단위당 생산비를 낮추고 공급 여력을 확대할 경우, 물가 안정 효과가 나타나면서 통화정책 완화 여지가 커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실업률 상승으로 경기 둔화 신호가 강화되는 가운데 AI 확산이 상품·서비스 가격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연준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할 명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iM증권 박상현 연구원은 “AI 활용이 중장기적으로 더 확대되고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진다면 실업률에는 당연히 일정 부분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물가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봤을 때, 기준금리 인하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러한 고용 둔화 국면에서도 물가 압력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AI 인프라 구축에 따른 대규모 설비 투자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확대, 반도체·전력·부동산 등 특정 부문의 비용 상승은 서비스 물가와 자산 가격을 자극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를 ‘AI발 신(新)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 즉 ‘AI플레이션’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나온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인공지능이 산출과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논문을 통해 AI는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장·단기적으로 GDP(약 35%)와 소비를 모두 증가시킨다고 밝혔다.
BIS는 AI 생산성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경로를 두 가지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AI의 영향을 사전에 예측하지 못할 경우, 공급 증대 효과가 먼저 나타나며 초기에는 물가가 하향 안정되지만 약 4년의 시차를 두고 수요 확대로 인한 물가 상승이 발생한다. 반면 시장이 AI의 잠재력을 사전에 예측하고 반응할 경우, 미래 소득에 대한 기대로 소비가 즉각 폭발하면서 공급 능력이 갖춰지기도 전에 물가가 즉시 치솟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 경제학부 안동현 교수는 “AI로 인한 공급량이 늘어나더라도 그게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투자 등으로 소득이 늘어나면 물가를 자극할 여지도 커진다”고 짚었다.
안 교수는 이어 “AI를 통한 고성장·저인플레이션을 이루기 위해서는 성장률이 매우 높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뿐만 아니라 BIS는 시장이 AI의 잠재력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소비를 늘릴 경우, 연준은 기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도입 초기부터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 시나리오에서 정책 금리는 생산 능력이 수요를 완전히 상쇄할 때까지 약 10년 이상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AI의 영향이 예기치 않게 전개될 경우 초기에는 완화적인 금리 운용이 가능하나, 약 4년 후 수요 과열이 본격화되는 시점부터는 후행적인 금리 인상이 불가피해진다.
이 경우 연준은 실업률 상승으로 인한 경기 둔화 신호에도 불구하고 물가 안정 기조를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연준 입장에서는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고용과 경기를 부양할 경우 인플레이션 재확산 위험을 감수해야 하고, 반대로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경우 실업률 상승을 방치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AI가 성장의 동력이 되는 동시에 통화정책 판단을 더욱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Copyright ⓒ 투데이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