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방의진 기자]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할 경우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규제를 사실상 무력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9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자사주 3차 상법개정 긴급좌담회를 열고 ‘경영권 안전장치 어불성설인 이유?’를 주제로 토론을 진행했다.
“거버넌스·자본시장 개혁 후퇴 우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경영권 방어 장치 도입이 상법 개정의 취지를 사실상 백지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회장은 “경영권 방어 장치를 도입한다는 것은 이사회 중심 경영과 이사회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무력화된다는 의미”라며 “여러 노력 끝에 코스피가 5000포인트에 도달했는데, 다시 지난해 4월 수준인 2500포인트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동안 추진해 온 거버넌스와 자본시장 개혁이 후퇴한다면 한국 증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비자발적 자사주 소각이 기업의 재무 부담과 투자 위축을 초래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대의 입장을 밝혔다.
이 회장은 “자기 주식은 시장에서 사거나 M&A(인수합병)를 통해서 회사에 들어오거나 취득하는 순간 자기자본에서 차감되는 것”이라며 “결국 현금 흐름 관점에서 이게 어떻게 임팩트를 미치냐를 봐야 되는데, 현금 흐름 관점에서 보면 소각 여부는 회사의 재무 건전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또한 “회사 주식을 시장에서 사는 순간 현금의 유출이 있고 그 이후로는 현금 흐름의 변화는 없다”며 “오히려 주식을 소각하면 주가 밸류에이션이 올라가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배권 방어장치 도입 시 선결 조건 必
김규식 변호사는 경영권이라는 개념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변호사는 “‘경영권’이라는 표현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며 “경영은 이사회가 주주 전체를 위해서 복무해야 하는 책임을 의미하는 것이지, 누군가가 소유하고 있는 사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권리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어에도 경영권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그는 포이즌필이나 복수의결권 등 지배권 방어 장치를 도입하려면 세 가지 선결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충실의무와 완전한 공정성 원칙 판례 확립 ▲독립이사 중심의 독립위원회 특별심사 ▲소수 주주만의 동의 등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포이즌필이란 주주가 분산된 기업에서 특정 투자자가 일정 지분 이상을 취득하려 할 경우, 기존 주주들에게 주식을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배정해 인수자의 지분 확대를 어렵게 만드는 제도다. 기존 주주에게는 유리하지만, 인수자에게는 비용 부담을 크게 키우는 것이 핵심이다.
김 변호사는 “미국은 포이즌필을 허용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이해충돌 여부를 엄격히 심사하는 판례 체계가 전제돼 있다”며 “유럽은 이러한 방어 수단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방어 수단을 허용하는 순간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이해충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유럽처럼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거나, 미국처럼 엄격한 사법적 통제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해충돌 심사를 회피하는 제도를 만든다면 사각지대를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 적대적 M&A 거의 없어”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대표는 송옥령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경영권 방어수단 도입 주장의 이론적·현실적 모순’이라는 논문을 소개하며 발표를 진행했다.
이 대표는 “한국에서는 적대적 인수 자체가 거의 없다”며 2006년 칼아이칸과 KT&G 분쟁, 2020년 KCGI의 한진칼 경영권 분쟁을 사례로 들었다. 그는 “이미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구조에서는 적대적 인수가 사실상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는 “코스피 200 기업의 93%에 지배주주가 있고, 지배주주의 평균 지분율은 41.8%에 달한다”며 “이러한 부분을 미뤄볼 때, 포이즌필 등이 우리나라에는 필요하지 않다는 가장 현실적 이유”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전세계에서 주주가 가장 분산된 나라가 미국과 영국, 일본”이라며 “그런 곳에서 포이즌필이나 차등의결권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대표변호사는 “실질적으로 한국에는 이미 차등의결권이 도입돼있다”며 쿠팡을 예시로 들었다.
또 “우리나라에도 중복상장을 하게 되면 똑같은 효과가 발생한다”면서 “지배 주주는 실질지분 2.7%로 사업회사를 100% 지배하는 효과가 이미 있는데 여기에 차등의결권도 10배를 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냐”며 우려를 제기했다.
방의진 한국금융신문 기자 qkd0412@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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