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안방극장은 베테랑 배우들의 파격적인 변신으로 뜨거웠다. 드라마 〈사마귀: 살인자의 외출〉의 고현정과 〈자백의 대가〉 속 김고은은 섬뜩한 연쇄살인마로 분해 주목받았다. 그 압도적인 바통을 이어받은 올해의 주역은 뜻밖에도 청춘의 한복판에 서 있던 라이징 스타, 배인혁과 려운이다. 대중에게 각인된 ‘청춘 스타’ 특유의 단정한 마스크를 처참히 배신하며, 그들이 그려낸 선명한 핏빛 반전은 어째서 더 잔혹하게 다가올까.
〈판사 이한영〉 배인혁
짧지만 강렬했던 에피소드 빌런
시청률 10%를 돌파하며 고공행진 중인 MBC 금토드라마 〈판사 이한영〉의 흥행 초반, 시청자의 허를 강렬하게 찌른 인물은 특별출연한 배인혁이었다. 그간 〈치얼업〉, 〈슈룹〉, 〈열녀박씨 계약결혼뎐〉을 통해 ‘성장하는 청춘’ 혹은 ‘다정한 순애보’를 대변해왔던 그가 데뷔 이래 가장 추악한 악역인 연쇄살인마 ‘김상진’으로 변모했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은 짧았으나 잔상은 깊었다. 10년 전으로 회귀한 이한영(지성)이 마주한 첫 번째 빌런으로서, 배인혁은 평소의 선한 눈매 뒤에 숨겨둔 비릿한 광기를 꺼내 들었다. 정의 구현을 위한 ‘에피소드 빌런’이라는 한정된 분량 속에서도 극의 텐션을 끌어올린 그의 활약은, 그저 연출자와의 인연으로 비롯된 특별출연을 넘어 ‘배인혁이라는 배우의 한계가 어디인가’를 증명하는 값진 시간이 된 모양새다.
〈블러디 플라워〉 려운
뒤틀린 신념이 빚어낸 '사패 주인공'
배인혁이 강렬한 충격이었다면, 디즈니+ 시리즈 〈블러디 플라워〉의 려운은 서서히 잠식해오는 묵직한 공포다. 그가 연기하는 ‘이우겸’은 조각 같은 외모를 지닌 의대 자퇴생이자, 인체실험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서슴없이 앗아가는 탐미적인 연쇄살인마다.
이우겸(려운)은 여느 쾌락 살인마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자신의 살인을 불치병 치료를 위한 고귀한 희생이라 주장하며, 기괴할 정도로 정교한 논리를 펼친다. 살인마를 변호해야만 하는 박한준(성동일)과 그를 단죄하려는 검사 차이연(금새록)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는, 바로 려운이 구축한 이 ‘흔들리지 않는 악의 신념’에서 비롯된다. 8부작이라는 호흡 속에서 그가 사이코패스의 전형을 어떻게 비틀고 부숴버릴지, 시청자들은 기꺼이 그의 유혹적인 덫에 발을 들이고 있다.
왜 청춘스타들은 연쇄살인마를 택했나
비주얼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이 이토록 잔혹한 역할을 탐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대중에게 선한 이미지로 박제된 배우가 저지르는 악행은 시청자에게 심리적 타격감을 배가시키며, 제작진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반전 카드가 되기 때문.
배우 개인에게도 사이코패스라는 옷은 연기 스펙트럼을 단숨에 확장할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시험대’다. 무해한 얼굴로 유해한 캐릭터를 연기하는이 미스매치의 쾌감은, 올해 배인혁과 려운이라는 두 ‘아름다운 괴물’을 통해 증명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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