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계절이 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과일이 있다. 겨울 햇살을 머금은 붉은 빛, 숟가락으로 떠먹는 말랑한 질감의 '홍시'다. 이런 홍시는 한국에서는 오래전부터 겨울철 보약 간식으로 자리해왔다. 어르신들에겐 추억의 후식이었고, 요즘에는 설탕 없는 자연 디저트를 찾는 흐름 속에서 다시 식탁에 오르고 있다.
하지만 시선을 해외로 돌리면 반응은 정반대다. 특히 미국에서는 홍시가 저당 식단을 방해하는 과일로 언급되며 기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동일한 대상을 두고 한국과 미국에서 이렇게 다른 평가가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지금부터 살펴본다.
말랑한 식감이 만든 오해, 신선함의 기준이 다르다
미국에서 홍시가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영양 성분보다 식문화의 기준 차이에 있다. 서구권에서 과일은 대체로 아삭하거나 씹었을 때 수분감이 터지는 질감을 전제로 소비된다. 사과, 배, 포도처럼 단단한 식감이 신선함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진다. 반면 홍시는 숟가락이 필요할 만큼 부드럽고 점도가 높다. 이 질감은 익숙하지 않은 소비자에게 신선함이 아니라 ‘상태가 지난 과일’로 인식되기 쉽다.
실제로 미국 소비자 리뷰나 커뮤니티에서는 홍시를 보고 상한 과일 같다는 반응이 종종 나온다. 한국에서는 충분히 익은 상태를 가장 좋은 시점으로 여기지만, 서구권에서는 단단함이 유지된 상태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같은 말랑한 상태를 두고 숙성으로 받아들이는 문화와 부패로 여기는 문화가 갈리는 지점이다.
맛의 방향도 다르다. 미국 과일 시장은 단맛과 산미가 함께 느껴지는 구조를 선호한다. 딸기나 오렌지처럼 새콤함이 단맛을 잡아주는 조합이 익숙하다. 홍시는 산미가 거의 없고 당도가 한 방향으로 밀고 들어온다. 여기에 감을 재료로 한 디저트나 가공 식품 문화가 거의 없다는 점까지 겹치며, 홍시는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르는 과일로 남게 된다.
겨울 점막을 지키는 베타카로틴, 홍시의 숨은 가치
문화적 오해와 달리 영양학적으로 보면 홍시는 겨울철에 특히 의미 있는 과일이다. 홍시의 붉은 색을 만드는 핵심 성분은 베타카로틴이다. 체내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이 성분은 코와 목 같은 호흡기 점막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공기가 건조해지는 겨울철에는 점막이 쉽게 마르고 자극받기 쉬운데, 이때 비타민 A 섭취는 방어 기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눈의 피로를 줄이는 데도 관여한다. 해가 짧아지고 실내 생활이 길어질수록 눈이 쉽게 건조해지는데, 홍시는 이런 환경에서 부담 없이 섭취할 수 있는 식재료다. 말랑한 과육 덕분에 소화 부담도 크지 않다.
식이섬유 구성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홍시에 풍부한 펙틴은 수용성 식이섬유로, 장 안쪽 환경을 부드럽게 정돈하는 데 도움을 준다. 기름진 음식이나 국물 요리가 잦은 겨울 식단에서 균형을 맞추는 역할을 한다. 칼륨 함량도 적지 않아 체내 나트륨 배출을 돕는 데 유리하다. 짠 음식을 즐기는 식습관과 함께할 때 의미가 커진다.
당 함량만 놓고 보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홍시는 분명 단맛이 강하다. 하지만 이 당은 정제 과정을 거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당분이다. 섬유질과 함께 섭취되기 때문에 흡수 속도도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냉동 보관부터 샤베트까지, 홍시는 다르게 먹는다
홍시가 까다로운 과일로 여겨지는 이유 중 하나는 보관 방식 때문이다. 실온에 오래 두면 빠르게 무르기 때문에 관리가 어렵다고 느껴지기 쉽다. 하지만 몇 가지 원칙만 지키면 문제는 크지 않다.
꼭지가 아래로 향하게 해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과육 손상을 줄일 수 있다. 이미 충분히 익은 상태라면 냉동 보관이 오히려 효율적이다.
껍질을 벗겨 냉동실에 넣어두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기 좋다. 냉동된 홍시는 실온에서 잠시 두었다가 윗부분을 잘라 숟가락으로 떠먹으면 별도의 첨가물 없이도 아이스크림 같은 질감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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