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토리 뿌리를 찾아서] 겁 없는 열여섯, 권위를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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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스토리 뿌리를 찾아서] 겁 없는 열여섯, 권위를 다시 쓰다

뉴스컬처 2026-02-07 11:01:1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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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관아 마당에 선 아이 같은 수령, 그리고 그를 비웃는 베테랑 아전들. 힘의 균형이 한눈에 기울어 보이는 장면에서 뜻밖의 반전이 시작된다. 전래 설화 ‘소년 사또와 아전들’은 가장 약해 보이는 인물이 어떻게 질서를 다시 세우는지 보여주며, 우리가 믿어온 권위의 기준을 뒤흔든다. 나이와 경력 대신 통찰과 책임이 앞서는 순간, 고을의 공기가 바뀌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조선시대 어느 고을을 배경으로 한다. 장원급제를 한 총명한 소년이 수령으로 부임하고, 그는 도착하자마자 세금 장부부터 살핀다. 곧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이 부과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소년 사또는 아전들에게 자신의 허락 없이는 세금을 더 거두지 말라고 엄히 명한다. 백성들의 부담을 줄이는 조치는 환영을 받지만, 그동안 세금 부풀리기로 이익을 챙겨온 아전들의 속은 끓기 시작한다.

아전들은 어린 수령을 얕잡아보고 공공연히 무시한다. 인사를 하지 않는가 하면, 관아의 질서를 일부러 흐트러뜨리며 권위를 흔들려 든다. 이들이 노리는 것은 다시 예전처럼 실권을 쥐기 위한 기선 제압이다. 소년 사또는 이를 모른 척 넘기지 않고, 상대의 속내를 드러내는 방식을 택한다.

그들이 꾸민 첫 계략은 중을 끌어들인 거짓 고발이다. 굴갓을 잃어버렸다며 억지를 부리게 한 것이다. 소년 사또는 화를 내는 대신 돌로 만든 갓을 내오게 하고, 직접 써 보라 한다.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서 중은 겁에 질려 결국 아전들의 사주였음을 털어놓는다. 처벌보다 창피를 통해 진실을 끌어내는 장면은, 힘이 아닌 지혜로 권위를 세우는 통치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사진=AI로 생성된 이미지

이어지는 상자 이야기는 탐욕의 민낯을 드러내는 장치다. 사또는 크고 작은 두 상자 중 하나를 고르라 말한다. 아전들은 망설임 없이 큰 상자를 택하지만, 그 안에는 솜만 가득하다. 작은 상자에는 금이 들어 있다. 겉으로 커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긴 선택이 얼마나 허망한지, 그리고 그들의 행정 역시 그런 허울뿐이었음을 비유적으로 꼬집는 대목이다.

소년 사또가 남긴 말은 짧지만 날카롭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은 결국 드러난다는 그의 지적은, 장부와 보고서 뒤에 숨은 부정까지 꿰뚫는 통치자의 시선을 상징한다. 이 장면은 개인의 욕심을 꾸짖는 차원을 넘어, 공적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하던 구조 전체를 겨냥한다.

이야기의 절정은 수숫대 일화다. 사또는 1년 자란 수숫대를 부러뜨리지 말고 소매 속에 넣어 보라고 한다. 누구도 해내지 못하자 그는 되묻는다. 이 수숫대가 1년 자랐다면, 열여섯 해를 산 자신을 어찌 그토록 가볍게 보았느냐는 것이다. 물리적 불가능을 통해 정신적 오만을 드러내는 역설의 장면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권위를 부정하던 태도가 스스로 모순에 빠지는 순간이다.

설화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조선의 행정 구조가 놓여 있다. 수령은 외부에서 파견되지만, 아전은 지역에 뿌리내린 존재였다. 실제 행정 실무를 쥔 이들이 부패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에게 돌아갔다. 이야기 속 갈등은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제도 속 권력의 흐름이 어디에서 어그러지는지를 짚는다.

소년 사또는 민중이 꿈꾸던 이상적 수령의 상이다. 그는 체벌보다 기지를, 위압보다 설득을 사용한다. 돌갓, 상자, 수숫대는 모두 말 대신 상황으로 교훈을 전달하는 상징물이다. 이러한 서사 방식은 듣는 이로 하여금 웃음과 통쾌함 속에서 자연스럽게 권력의 도덕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판본에 따라 사또의 나이가 더 어리게 설정되거나 강감찬 같은 역사적 인물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는 비범한 어린 영웅에 대한 민중의 기대가 여러 이야기와 결합한 결과다. 현실에서 만나기 어려운 정의로운 권력을, 설화 속에서라도 보고 싶었던 마음이 반영된 셈이다.

결말에서 아전들이 태도를 고치고 고을에 선정이 펼쳐진다는 서술은 일종의 희망의 서사다. 현실의 답답함을 잠시 내려놓고, 정의가 제자리를 찾는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설화는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바람의 기록에 가깝다.

'소년 사또와 아전들'을 현재 관점에서 보면 직급과 연차, 겉으로 보이는 조건이 아니라 판단과 책임이 리더십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진 부당함을 바로잡고, 공정과 정의가 실현되는 조직과 사회를 상상하게 만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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