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나는 게 잘한 결정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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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벗어나는 게 잘한 결정이었을까

엘르 2026-02-07 10:32:51 신고

더 이상 이렇게는 못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사를 결심했다. 매달 적지 않은 돈이 통장에서 주거 비용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란 뒤 일자리 때문에 서울로 이주한 뒤로, 약 15년 동안 서울 바깥으로 나갈 마음을 먹지 않았지만 더는 서울에서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마침 나는 출퇴근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 상태를 유지 중이었다. 서울 바깥으로 나가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처럼 고정적인 시간에 출퇴근을 하지 않는 친구와 서울이 아닌 곳에서 함께 살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대하게 아예 수도권을 벗어나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는 상상을 했으나, 여전히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을 놓을 수 없어 절충안으로 경기도를 선택했다. 경기도 고양시, 그 중에서도 일산. 반드시 그곳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었다. 몇 년 전 놀러갔 다가 낮은 층수의 아파트가 많은 게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전부였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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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집을 처음 보러 왔던 날은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쌩쌩 부는 칼바람 속에서 맛있다고 소문난 카페의 작은 라테 한 잔을 사서 꽁꽁 언 손을 녹이며 동네를 걷고, 집을 구경했다. 널찍한 도로와 드문드문한 인적, 겨울이라 잎이 다 떨어졌음에도 여름이 되면 어김없이 울창해질 거라는 상상을 쉽게 해볼 수 있는 커다란 나무들, 아파트 단지 사이마다 만들어진 산책로. 낯선 동네였지만 우리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의 삶을 어렵지 않게 머릿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그렇게 2025년 겨울이 끝나고 봄으로 넘어갈 무렵, 친구와 나는 한 번도 살아보지 않았고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일산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초반에는 집을 보러 다녔을 땐 알지 못했던 단점들이 눈에 띄었다. 매일 들를 만한 아름다운 카페가 너무 없다, 대중교통 배차 간격이 길다, 길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특히 서울에 일정이 있어 왕복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는 날이면 화를 낼 힘도 없는 상태가 됐다.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온 게 전부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 경기도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 나에게 친구는 몇 년 전 방영했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보라고 권했다. “경기도민이라면 꼭 봐야 할 작품이지.” 경기도에 거주하는 염창희와 염미정, 염기정 세 남매는 대체로 늘 우울하고 불만에 차 있다. 기정은 아침에 마을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다니고, 창희는 경기도에 산다는 이유로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는다. “바로 저거야! 저러니까 경기도민들이 힘든 거라고.”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주인공에게 깊이 이입했다. 경기도에 사는 이상 마음이 힘들지 않을 도리가 없지. 서울의 중심에 살던 날이 그리웠다.


그러나 내가 사는 곳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건, 서울과 비교할 때만 그랬다. ‘모든 게 갖춰진 서울, 뭔가 있긴 한데 서울만큼은 아닌 경기도’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자 내가 사는 곳의 고유한 매력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동네의 가장 큰 장점은 산책할 코스가 말 그대로 널렸다는 점이다. 아파트 단지 사이사이 구획된 공원과 산책로는 1990년대에는 좀 휑뎅그렁했겠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은 울창한 나무 덕에 사계절 두루 멋지다. 날씨가 좋을 때는 빵과 커피를 간단히 챙겨 집에서 몇 걸음만 나가면 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구경하며 도시락을 먹었다.


새도 많이 본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로 집비둘기, 참새, 직박구리 같은 새들은 물론이고 ‘대륙검은지빠귀’라는 새의 얼굴과 이름도 알게 됐다. 함께 사는 친구는 일산으로 이사 온 이후 예전에는 드문드문했던 탐조(새를 관찰하는 활동)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외출할 때면 늘 쌍안경을 챙기고, 그날 만난 새를 사진에 담아뒀다가 집으로 돌아와 그림까지 그린다. 우리는 조만간 집 베란다에 새 먹이통을 만들까 궁리 중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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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바뀌는 나무와 땅에 펼쳐진 이끼, 그 속에서 머리를 내미는 버섯을 보며 감탄한다. 이사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봄날, 집에 놀러 온 친구들과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 사이를 걸어가며 행복했던 기억은 이 동네에서의 시간이 몇 년이고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동네 산책을 즐기다 보니 어디에 어떤 길고양이가 있는지도 알게 됐다. 아침 10시쯤 우체국 근처에 가면 볼 수 있는 고양이들을 우리는 각각 ‘코에 점이 있는 큰 고양이와 작은 고양이’라는 뜻으로 ‘큰코’ ‘작코’라고 부른다. 단골 서점도 생겼다. 심심하면 들러 책을 고르고, 사장님과 대화를 나누고, 커피 한 잔을 얻어 마실 수 있는 곳이 있다.


일산은 더 이상 나와 친구에게 ‘아는 이가 아무도 없는’ 곳이 아니다. 우리와 연결돼 살아가는 존재들(새, 나무, 버섯, 고양이, 사람 등)이 많다는 사실을 매 순간 느낄 수 있는 ‘우리 동네’다. 이런 생각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의 저자 제니 오델이 쓴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멧종다리와 나는 더 이상 서로 낯설지 않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은 지나친 상상도, 심지어 지나친 과학적 해석도 아니다.”


얼마 전 한 모임에서 ‘관계’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지난 한 해 동안 이사 온 동네와 관계를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것이 삶의 안정감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부산을 떠나 서울에 온 이후로 내게 집은 임시 거처처럼 느껴졌고, 따라서 어디에 살든 동네는 내 삶의 배경일 뿐 나와 관계를 맺는 대상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내게는 머무는 동네와 아주 적극적으로 관계 맺어야 할 책임이 있고, 그로 인해 주어지는 즐거움을 느낄 권리도 있다.


여기로 이사 온 이후 전보다 친구들을 자주 집에 초대한다. 찾아놓은 맛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걷는다. 운 좋게 새를 만나면 친구들에게도 새의 이름을 알려준다. 며칠 전 알게 된 맛있는 디저트 가게와 우리가 몇 권의 책을 큐레이션한 서점을 친구들에게 소개한다. 우리 집 테이블에 둘러앉아 차와 간식을 펼쳐놓고 영원히 먹고 떠든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생각한다. 여기가 바로 내 집이야. 이건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각이다.


황효진

세심하고 다정한 시각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때때로 실패하며 배우는 기획자이자 작가. 건강하게 일하는 법을 고민하는 여성 커뮤니티 ‘뉴그라운드’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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