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형선 씨를 처음 만났던 날이 기억난다. 사회부에서 블루칼라 여성들의 삶을 담는 기획 <나, 블루칼라 여자>를 취재할 때였다. 주택수리 기사로서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우리집으로 그를 초대했다. (☞관련기사 : "여성 주택 수리 기사, 정말 '0명'이라 제가 시작했습니다")
집 안에 고장난 건 없지만, 집수리를 하며 노동하는 그의 모습이 필요했다. 형선 씨는 "그럼 그냥 해체했다가 재조립하는 건 어떨까요?"라며 화장실 수전 밑에 눕다시피 앉아 수전을 감싸고 고 있는 밑부분을 통통 두드렸다. 그러더니 능숙한 솜씨로 수도받이 밑에 있는 도기를 순식간에 분리했다. 또 이후에는 콘센트의 전선들이 드러날 정도로 전부 분해하고, 조명도 전선이 보일정도로 전부 뚝딱뚝딱 해체했다.
재조립은 더 빨랐다. "잠깐 물 가져다 드릴게요" 하며 물을 가져온 사이에, 화장실 수전 밑에 있던 도기를 다시 끼워맞췄다. 당시 4년째 주택수리 기사로 일하고 있던 형선 씨의 '짬바'(짬에서 나온 바이브)였다. 그의 솜씨를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그는 잔뼈가 굵은 '프로'였다.
그도 처음부터 능숙했던 것은 아니었다. 건설 기술 교육은 경험이 자산이 되는 직업이기 때문에 많은 경험을 통해 수리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해야 한다.하지만 생소한 '여성' 주택수리 기사에게 일을 구하기란 하늘에 별따기 같았다. 그래서 그는 여성 소비자를 대상으로 집수리 체험단을 모집해 실력을 키웠다. 그렇게 '라이커스(LIKE-US)'를 만들었다.
라이커스는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철물점 아저씨'가 하는 모든 서비스를 제공한다. 다만, '아저씨'가 아니라 '여자'가 집을 고친다. 형선 씨는 2019년 '여성을 위해, 여성이 만든 여성 주택수리 서비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인 여성 가구가 맘편히 집수리를 받을 수 있는 여성기술자로 구성된 주택수리서비스를 론칭했다. 2019년 신림동의 한 빌라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던 20세 여성을 뒤쫓은 남성이 침입을 시도했던 주거 침입 미수 사건이 형선 씨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다.
여자 집수리 기사로서 일을 하며 많은 질문을 마주하고, 또 그만큼의 노하우를 쌓아왔을 형선 씨가 책을 썼다. 제목은 <여자인데요, 집수리 기사입니다>(크래커)책 표지에는 이 말도 말풍선 안에 들어있다. "문제가 될까요?" 이른바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집수리', 그 안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만으로 들었을 많은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표지에서 먼저 건넨 셈이다.
책은 귀엽고 깔끔한 만화로 그려져있어 독자들에게 형선 씨가 하는 일의 이해를 돕는다. 12년차 디자이자 형선 씨의 친구인 조원지 씨가 그림을 그렸다. 안 씨가 주택수리 기사로 활동하며 느낀 희로애락을 담백하면서도 유머스럽게 전달한다. 내용 중간중간에 몽키스패너, 멀티렌치, 드라이버 등 우리에게 친숙하면서도 또 쓰임은 생소한 공구를 '왓츠인마이백'(What's in my bag, 가방안의 소지품을 소개하는 콘텐츠) 형식으로 소개한다.
형선 씨는 여성 기술자로서 겪었던 현장에서의 차별과 어려움에 대해 털어놨다. 수리는 힘이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기술과 요령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이 유리한 작업장도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제한된 수리 환경에서 적확한 수리 방법을 찾는게 더 어려웠다고 했다. 예를 들어 꽉 조여진 나사에 강한 힘이 필요한 경우 나사에 스패너를 딱 맞게 걸치고 끝에 망치로 힘을 주면 강한 힘을 주는 방법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만의 팁도 공유한다.
또 라이커스라는 브랜드를 이끌면서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겪었던 비하인드, 그리고 직업 특성상 이동 시간이 많기 때문에 차에서 겪었던 이야기, 그리고 손님들을 직접 응대하면서 겪었던 좌절 그리고 위로까지. 대한민국 여성 주택 수리기사의 현실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두 장의 사진을 그린 그림으로 끝난다. 'ㅇㅇ빌딩 준공 기념' 사진으로 남성 노동자들이 함께 찍은 사진, 그리고 또 하나는 여성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 사진이다. 각 그림의 제목은 '당신이 본 적 있는 사진' 그리고 '당신이 본 적 없는 사진'이다. 형선 씨는 자신의 꿈에 대해 "여성 기술자만 모여 건물 하나 뚝딱하는 날이 오기를. 그게 누구의 눈에도 이상할 게 없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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