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 드 로잔 발레 콩쿠르는 전 세계 발레 유망주들이 가장 오르고 싶어 하는 무대이자 ‘미래의 수석 무용수’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자리로 불린다. 15세부터 18세까지 학생만 참가할 수 있으며, 국적과 학교, 배경을 내려놓고 오직 무대 위 움직임과 잠재력만으로 평가받는다. 클래식 베리에이션과 컨템퍼러리 작품을 모두 준비해 단계별로 검증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결과보다 과정이 더 엄격한 콩쿠르인 셈. 그 무대에서 박윤재는 한국인 남성 무용수 최초의 우승자가 되었다. 남녀를 통틀어도 매우 오랜만에 배출된 한국인 우승자였다. 이 성취는 개인의 재능을 넘어 한국 발레의 다음 세대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기록됐다. 이어 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 스튜디오 컴퍼니에 합류하며 박윤재는 ‘주목받는 유망주’에서 ‘자신만의 궤적을 만들어가는 무용수’로 거듭났다. 그리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 그는 지난 1월 초 세계 주요 발레단에서 활동 중인 한국 무용수들이 한자리에 모인 〈더 나잇 인 서울〉 갈라 쇼에 영 아티스트로 무대에 올랐다.
벌써 작년이네요. 프리 드 로잔 발레 콩쿠르에서 이름이 호명되던 순간을 기억하나요?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내 이름이 맞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요. 프리 드 로잔 발레 콩쿠르는 단순히 상을 받는 콩쿠르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청소년 발레 경연 중 하나죠. 참가자들은 다면적 가능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앞으로 이 무용수가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회의 장이라는 의미예요. 직접 무대에서 춤을 춘 것만으로도 이미 꿈을 하나 이룬 기분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상까지 받았다는 게 지금도 믿기지가 않네요.
우승 직후 기쁨을 만끽하기보다는 다음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고요.
물론 기쁘지 않았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콩쿠르가 끝나자마자 ‘이다음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발레리노로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는 걸 늘 의식하기에 지금의 선택이 나중에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를 먼저 고민하는 편입니다.
그 선택 중 하나가 ABT 스튜디오 컴퍼니였어요. 어린 나이에 이뤄진 입단이기에 ‘파격적’이라는 평가도 있었죠.
처음에는 ABT 산하의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JKO) 스쿨 입학을 제안받았는데, 출국을 한 달 정도 앞둔 시점에 ABT 스튜디오 컴퍼니 합류 제안을 추가로 받았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ABT 스튜디오 컴퍼니는 세계 각지에서 선발된 무용수들과 함께 실전 경험을 쌓는 조직이라 분명 제게 주어진, 한 단계 더 높은 도전이라고 느꼈어요. 특히 남자 무용수 중에서는 빠른 편인 데다 스쿨 오퍼에서 스튜디오 컴퍼니로 바로 전환된 경우도 흔하지 않아 더욱 파격적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자마자 국립극장에서 열린 〈더 나잇 인 서울〉 무대에 올랐습니다. 덴마크 왕립발레단, 파리 오페라 발레단, 마린스키 발레단, 그리고 ABT까지 한 무대에 모인 대규모 갈라였어요.
ABT 메인 컴퍼니의 한성우 발레리노 선배님이 이번 공연을 주최하셨어요. 〈더 나잇 인 서울〉은 ‘서울에서 세계의 발레를 만난다’는 콘셉트처럼, 서로 다른 전통과 스타일을 지닌 팀이 한 무대에 오르는 갈라입니다. 동시에 새해 첫 무대라는 점에서 스스로에게도 각오가 생겼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다 국립극장 무대에서 한국 관객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특별하기도 했고요. 영 아티스트로 참여했다는 건 완성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을 넘어 지금의 가능성과 성장 과정에 주목해준 초대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증명하기보다는 성장 중인 무용수로서 에너지와 솔직함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발레리노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테크닉이나 표현력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어떤 움직임에서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무대 위에서도 흔들리지 않더라고요. 저 역시 아직 그 과정을 거치는 중이지만, 예전보다 제 몸과 성향을 좀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건 분명한 변화인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을 이해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무대 위 선택도 더 명확해지는 것 같고요.
지금의 선택이 쌓여 도달하고 싶은, 이상적인 발레리노의 면모란?
물론 한 가지 색이 강한 것도 멋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금 흐릿하더라도 여러 색을 지닌 무용수가 되고 싶습니다. 발레를 하든, 현대적 무대에 서든, 혹은 전혀 다른 형식의 작업을 하든 ‘저 사람은 박윤재다’라는 인상이 남는 무용수. 장르보다 태도와 움직임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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