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의 공기가 아직 차갑게 남아 있는 2월, 계곡 초입 풍경은 유난히 적막하다. 햇볕이 오래 머물지 않는 그늘진 자리에는 눈 녹은 물이 스며든 흙냄새가 남아 있고, 낙엽 사이로 보랏빛 꽃 하나가 고개를 든다. 멀리서 보면 단정하고 고요한 인상이다. 하지만 이 식물을 아는 사람이라면 쉽게 다가서지 않는다. 바로 '투구꽃'이다. 산야에서 가장 위험한 독초로 꼽혀 온 존재이며, 그 뿌리는 오래전부터 ‘초오’라 불려 왔다.
투구꽃은 봄 산나물과는 결이 다르다. 연한 새순과 싱그러운 향으로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가 아니라, 생과 사의 경계를 품고 있는 식물에 가깝다. 겉모습이 수려하다는 이유만으로 손을 대기에는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 그럼에도 이 식물은 오랜 세월 산속에서 완전히 배제되지 않았다. 다만 접근 방식은 언제나 조심스러웠고, 다루는 법 역시 극도로 제한돼 있었다.
투구꽃, 이름보다 먼저 전해진 경계의 식물
투구꽃은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이다. 학명은 Aconitum jaluense다. 꽃잎이 위로 겹겹이 말려 올라간 형태가 병사가 쓰던 투구를 닮아 이런 이름이 붙었다. 보랏빛 꽃은 단정하고 기품 있어 보이지만, 식물 전체에는 강한 독성이 깃들어 있다.
가장 위험한 부위는 뿌리다. 마늘쪽처럼 갈라진 검은 덩이뿌리가 바로 초오다. 이 뿌리에는 신경과 심장 기능에 직접 영향을 주는 성분이 포함돼 있다. 극소량만 체내에 들어와도 치명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이미 과거 기록에서 사약의 재료로 언급될 만큼, 투구꽃의 독성은 명확하게 인식됐다.
특히 주의해야 할 시기는 봄이다. 잎과 줄기가 연할 때는 다른 산나물과 형태가 비슷해 보인다. 색이나 냄새만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산에서 나물 채취 경험이 많지 않다면 더욱 위험하다.
그늘진 계곡을 택하는 이유
투구꽃은 양지보다 음지를 좋아한다. 물기가 오래 남는 토양, 낙엽이 두텁게 쌓인 숲 가장자리, 계곡을 따라 형성된 습한 지대에서 자란다. 설악산이나 지리산 같은 고산지대뿐 아니라 중부 내륙의 깊은 산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사람의 발길이 뜸한 곳일수록 군락이 안정적으로 유지된다.
봄에는 줄기와 잎이 먼저 자란다. 여름을 지나면서 줄기는 단단해지고, 가을이 되면 보랏빛 꽃이 핀다. 개화 시기는 9월에서 10월 사이로, 이때 뿌리는 가장 단단해지고 독성도 가장 강해진다.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지만, 산에서는 이 시기가 가장 경계해야 할 때다.
씨앗은 바람을 타고 퍼지며 한 자리에서 여러 해 자란다. 뿌리가 깊어 제거도 쉽지 않다. 산에서는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주하게 되는 식물이다.
인고의 시간, 독을 다스려야 비로소 먹을 수 있다
투구꽃은 원형 그대로는 식용할 수 없다. 꽃과 줄기, 뿌리 모두 강한 독성을 지니고 있어 산에서 채취해 바로 먹는 행위는 매우 위험하다. 그럼에도 과거 산촌에서는 극히 제한적인 방식으로 투구꽃을 다뤄왔다. 핵심은 독을 낮추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식용으로 언급된 부위는 어린 새순이다. 생으로는 먹지 않는다. 채취 직후부터 손질이 시작된다. 흐르는 물에 담가 수용성 성분을 빼낸다. 물을 여러 차례 갈아주며 며칠간 우려내는 과정이 기본이다.
이후 가열 과정을 거친다.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데친 뒤 찬물에 담가내는 일을 반복한다. 이 과정에서 색이 옅어지고 떫은 기운이 줄어든다.
데친 새순은 말려 저장했다가 다시 불려 사용한다. 조리 전에도 한 번 더 삶아내고 양념은 최소화한다. 섭취량은 많지 않아 반찬보다는 계절을 버티기 위한 식재료에 가까웠다.
투구꽃은 먹을 수 있는 산나물이라기보다, 잘못 다루면 곧바로 위험으로 이어지는 산속의 경계선에 가까운 존재다. 보랏빛 꽃을 마주했다면, 눈으로만 두는 편이 가장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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