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인생은 짧아. 연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이 문장은 연극 ‘삼매경’을 관통하는 정서이자, 무대를 떠도는 모든 배우의 자화상처럼 들린다. 찬란하게 피어오르는 한때의 청춘과, 끝내 붙들 수 없는 시간의 흐름. 그 사이 어딘가에 남겨진 미완의 열망이 작품의 심장이다.
국립극단이 다시 무대에 올리는 ‘삼매경’은 재공연이라는 말로는 부족한 귀환이다. 지난해 초연 당시 연이은 매진과 평단의 호평, 그리고 ‘올해의 연극 베스트3’ 선정이라는 성과는 이 작품이 일시적 화제작이 아니라 동시대 관객의 감각에 깊이 스며든 연극적 사건이었음을 보여준다. 반년 만의 무대 복귀는 흥행의 연장이 아니라, 레퍼토리로서의 생명력을 가늠하는 또 한 번의 호흡에 가깝다.
‘삼매경’의 뿌리는 함세덕의 희곡 '동승'이다. 한국 근현대 희곡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은 이 작품은 시대의 상처와 인간 내면의 결핍을 시적인 언어로 길어 올렸다. 이철희 연출은 그 단단한 뼈대 위에 동시대적 감각을 덧입힌다. 원작을 박제된 고전으로 다루기보다 과감히 흔들고 비틀며 지금 이 시대의 감각으로 다시 숨 쉬게 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고전에 대한 저항’은 파괴가 아니라 갱신에 가깝다. 익숙한 텍스트는 낯선 결로 갈라지고, 그 틈 사이로 오늘의 정서가 스며든다.
작품은 연극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인생을 말한다. 무대 위의 배우는 35년 전 실패했다고 믿는 한 역할에 사로잡혀 시간 밖으로 밀려난 존재다. 그는 연극의 시공간을 현실처럼 떠돌고, 죽음 이후에도 과거의 연습실로 회귀하려 한다. 그러나 그토록 갈망하던 순간에 도달해서도 완전한 ‘그 역할’이 되지 못한다. 반복되는 좌절은 배우만의 비극이 아니라, 한 번쯤 인생의 어느 장면에 붙들려 본 적 있는 이들의 기억을 건드린다.
이철희의 연출은 이 서사를 과장된 드라마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절제된 움직임, 느린 호흡, 반복과 변주의 리듬을 통해 관객을 서서히 작품의 호흡 속으로 끌어들인다. 무대 위 배우들은 인물을 연기하는 동시에 계절이 되고, 바람이 되고, 얼어붙은 땅을 비집고 오르는 초록이 된다. 서사가 설명하기보다 신체가 먼저 말하고, 언어가 아니라 기운이 장면을 이끈다. 관객은 이야기를 따라가기보다 어떤 상태, 말 그대로 ‘삼매’에 가까운 감각 속에 머문다.
지춘성 배우의 존재는 작품에 또 다른 층위를 더한다. 1991년 ‘동승’에서 어린 도념을 연기했던 그는 세월을 건너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온다. 한때의 배역이 배우의 삶을 규정해버린 운명, 무대가 끝난 뒤에도 지워지지 않는 이름. 극 중 인물의 굴레와 실제 배우의 이력이 겹쳐지는 순간, ‘삼매경’은 허구를 넘어선 연극의 자전적 기록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우 개인의 시간과 한국 연극사의 시간이 포개지며 무대는 기억의 저장소가 된다.
작품은 실패와 미완을 끌어안은 채 살아가는 인간의 태도를 주시한다. 사회는 끊임없이 성취를 요구하고 멈춤 없는 전진을 강요한다. 그러나 ‘삼매경’은 끝내 완성되지 못한 삶의 순간들,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을 조용히 들여다본다.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끝까지 감당해야 할 존재의 조건으로 바라본다. 해탈은 모든 것을 이뤄낸 뒤 도달하는 경지가 아니라, 이루지 못했음을 껴안는 태도 속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이 연극은 화려한 사건 대신 오래 남는 여운으로 관객을 붙든다. 무대가 끝난 뒤에도 쉽게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힘, 설명하기 어려워도 분명히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 감각이 오래 지속된다. ‘삼매경’이 다시 관객 곁에 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빠르게 소비되고 잊히는 이야기들 사이에서 작품은 느리게 스며들어 오래 머무는 연극의 시간을 복원한다.
연꽃이 피고 지듯 인생이 스쳐 지나가더라도, 그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한 흔적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삼매경’은 바로 그 흔적에 대해 말하는 연극이다. 그리고 그 흔적을 정면으로 바라보려는 이들에게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으로 다가선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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