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는 타국에서의 결혼과 정착을 다루면서도,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기록한 이야기다.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뭐든 직접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풍파를 많이 겪었고, 그 풍파가 국제결혼 후 낯선 땅인 벨기에에서 고군분투한 일이었다. 동생의 권유로 글쓰기 플랫폼에 기록처럼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책으로 엮게 됐다.
해외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벨기에 남자와 사랑에 빠져 스물네 살에 한국을 떠났다. 선택의 출발점에는 어떤 감정이 있었나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은 돈이 모이기만 하면 전부 비행기표에 쏟아붓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결혼을 한다면 거지가 되어도 나만 바라보는 사람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뮤지션이라는 그의 직업이 한국에서는 안정적이기 어렵다는 점, 벨기에에 이미 안정적인 수입원이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내가 가는 쪽이 더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24살에 벨기에로 넘어가 정착한 지 약 17년 된 송영인 작가. 그는 최근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북부지역과 네덜란드에서 한국의 전통을 알리는 어린이 동화책 출간을 꿈꾸고 있다.
‘벨기에인과 결혼한 참하고 신비로운 동양 여자가 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는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하는 선언처럼 읽힌다. ‘하고 싶은 말과 일을 스스로 하겠다’는 태도를 끝까지 붙잡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한국에 있을 때부터 ‘여자라서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싫었다. 여자가 못 하는 일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기회가 없어서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내 안의 오기와 끈기는 아버지가 지녔던 전통적인 여성상에 대한 반감에서 출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끈기 역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버스가 하루에 두 번 들어오는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자라 악착같이 공부해 박사가 된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또 하나의 근원이었다.
직접 표현하길, 그저 ‘24살 새색시’를 넘어 가공식품 포장 공장, 박물관 보안요원, 외국인관리청 등을 거쳐 현재는 학술 도서관 사서로 일하며 부당한 처우와 인종 차별에 맞서왔다. 이 긴 여정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자주 되뇌었던 문장이 있다면
단순하지만 ‘꾹 참아 보자’였다. 아기가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20년이 넘게 걸린다고 가정하면, 이미 20대 중반이었던 내가 벨기에에 와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까지 5년이 걸린 건 아주 짧은 시간이다. 보통 20년에 걸쳐 밟는 과정을 5년에 압축하려면 고생의 농도는 진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감정에 휘둘리기보다는,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하자는 마음으로 견뎠다.
벨기에 사회에서 한국의 가부장 문화와 가장 다르다고 느낀 지점은
한국에서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하기 싫어도 해야 했던 일이 있었다. 사회의 암묵적인 규범에 의해 선택된 순간도 많았다. 반면 벨기에는 여성이기 이전에 개인 결정권이 우선된다는 느낌이 강하다. 사회가 모성의 잣대를 양육에 두지 않고, 양육 자체를 개인의 선택으로 존중한다는 점도 다르게 느껴졌다.
1월 23일 출간한 〈노빠꾸 상여자의 벨기에 생존기 (뜨겁고 치열하게 달린 17년)〉는 단순히 국제결혼 경험담이 아니다. 국제결혼 후 낯선 땅 벨기에에 뿌리를 내리기까지 달리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선 고군분투의 기록이다.
서구권에서 결혼은 합집합이 아닌 ‘교집합의 발견’에 가깝다고 표현했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아온 남편과 발견한 단단한 교집합은 무엇인가
남편과 나는 극과 극이다. 나는 무엇이든 ‘지금’이 가장 좋은 시작의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남편은 ‘여유’가 있을 때가 적기라고 여긴다. 그럼에도 우리가 겹치는 지점은 분명하다. 당장의 금전적 이익보다 개인의 존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인생의 태도가 우리의 교집합이다.
벨기에에 정착한 지 약 17년. 이제는 어떤 가능성을 더 이어가고 싶나
그동안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 해왔던 활동을 좀 더 다채로운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벨기에 북부 지역과 네덜란드에서 한국 전통과 멋을 소개하는 어린이 동화책을 출간하는 것이 현재의 꿈이다. 나아가 한국 문학과 네덜란드어권 문학을 잇는 가교 역할도 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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