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미국은 한국없이 원전 못짓지만…한국은 미국없이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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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미국은 한국없이 원전 못짓지만…한국은 미국없이 짓는다"

연합뉴스 2026-02-05 06:01:01 신고

3줄요약

"한국 원전기술 세계 1등…미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보다 우위"

"한국정부, 원전비중 50%로 늘리고 연구개발비 더욱 확대해야"

"원전은 기후위기 해결책…인류생존·인류애 실현"…원자력 대부 장인순 박사

[※ 편집자 주= 장인순 전(前) 원자력연구소 소장 인터뷰 기사는 분량이 많아 다섯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이번이 첫 번째로 그의 성장 과정과 한국 원자력 수준 등을 다뤘습니다. 다음 주 이후에 나가는 2∼5번째 기사는 한국의 원전 능력과 안보, 기술 자립 과정에서의 노력과 고난, 본인의 은퇴이후 삶 등을 다룰 예정입니다. [삶]은 자서전적 인터뷰여서 개인의 성장 스토리와 사진 등이 많이 들어갑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장

[윤근영 기자 촬영]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 기자= "미국은 2050년까지 수백개의 원전을 새로 건설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한국의 지원 없이는 원전을 짓지 못합니다. 수십년간 원전을 세우지 않아서 인프라가 없기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은 미국 도움 없이도 홀로 원전을 건설합니다. 한국의 원전 건조 능력은 세계 1위입니다. 시공, 원자로 설계, 운전 능력 등에서 한국을 따라올 나라는 없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원자력연구소 연구원들을 비롯해 수많은 사람이 밤새워 실험하고 개발했습니다. 많은 모욕과 방해가 있었지만,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이는 장인순 전(前) 원자력연구소(지금은 원자력연구원) 소장이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이다.

인터뷰는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에 있는 전의마을도서관에서 지난 1월 24일부터 세 차례 진행됐다.

그는 인터뷰에서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원전을 키워야 에너지 안보가 가능하다"면서 "한국의 원전은 최첨단 기술 집약체여서 기술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브랜드 가치를 한층 끌어올린다"라고 했다.

그는 "인류의 가장 큰 문제인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원자력 에너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면서 "원전은 인류의 생존, 인류애 차원에서도 중요하다"고 했다.

1999년 4월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에 취임하는 장인순 박사 1999년 4월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에 취임하는 장인순 박사

[본인 제공]

장 전 소장은 "현재 한국의 전기 생산에서 원자력의 비중은 30% 정도인데, 50%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면서 "이렇게 하면 전기 요금이 떨어져서 서민들의 가계 부담이 줄어들고, 조선업을 비롯한 기업들은 비용 절감으로 수출경쟁력이 한층 더 올라간다"고 했다.

그는 "원전의 안전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한국은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가동을 시작한 이후 많은 원전을 운영해왔지만, 한 번도 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는 "과학에서 후퇴라는 것은 없다"면서 "원전은 갈수록 진화해서 점점 더 안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1940년생인 장 전 소장은 전남 여수 앞바다에 있는 돌산이라는 섬에서 성장했다. 여수중학교와 여수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으며, 캐나다 웨스턴 온타리오 대학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정부의 부름을 받고 귀국한 그는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0년간 연구 활동을 했고, 1999년부터 6년간 이 연구소 소장을 지냈다. 그는 핵연료 국산화, 한국형 원자로 개발 등 원전 기술 자립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한국 원자력의 대부로 불리는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중요성을 알리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장 전 소장은 5년 전 사비를 들여 세종시 전의면 유천리에 마을도서관을 세웠다. 방송 드라마 소품인 도검(칼) 등을 제작하는 고려전통기술이 공간을 제공했고,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후원했다.

여수와 돌산을 잇는 돌산대교(오른편이 돌산) 여수와 돌산을 잇는 돌산대교(오른편이 돌산)

[여수시청 제공]

다음은 장인순 전 소장과의 질문-답변

-- 고향은 어디인가.

▲ 전라남도 여수에서 뱃길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돌산이라는 섬이다. 지금 돌산은 다리로 여수와 연결돼 있지만 당시는 완전한 깡촌이었다. 7남매 중 넷째인 나는 그 섬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곳에서 보리와 고구마 농사를 짓고 약간의 장사도 하셨다. 초등학생 시절 나는 밭에서 고구마를 심고, 산에 가서 나무(땔감)를 했다. 돌산은 갓김치로 유명하지만, 우리 마을은 이 농사를 짓지 않았다. 나는 거의 고구마를 먹고 자란 사람이다.

-- 돌산은 어촌인데, 왜 농업이 주업이었나.

▲ 그때는 고기 잡는 배가 없었고 어업 기술도 없었다. 어업은 바다에서 낚시하는 정도였으니 생계 수단이 되지 않았다.

-- 1940년생으로서 여수중과 여수고에 진학할 정도이면 집안 형편이 어느 정도 괜찮았던 것 아닌가.

▲ 우리 집 형편이 정말로 안 좋았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는 해야 한다"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보냈다. 외할아버지가 한자를 많이 알았고, 교육열이 매우 강하신 분이었다. 어머니는 외할아버지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 돌산 초등학교에서 여수중에 진학한 사람은 몇 명이었나.

▲ 당시에는 국민학교라고 했는데, 한 학년에 2개 반이 있었다. 1개 반은 남자 60명이었고 나머지 1개 반은 남자 30명, 여자 30명이었다. 그때는 여자아이에게는 공부를 안 시켰던 시절이었다. 120명 가운데 여수중학교에 진학한 아이는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이들 3명 모두가 나중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돌산국민학교 학생들 단체 사진 돌산국민학교 학생들 단체 사진

흰 점의 동그라미 안에 있는 얼굴이 장인순 전 소장 [본인 제공]

-- 본인의 학창 시절은 어떠했나.

▲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가서도 수학을 잘했다. 내 책상 위에는 온통 수학책만 있었다. 고교 시절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려는 학교 친구에게 1년간 수학 과외를 해주기도 했다.

-- 왜 수학을 좋아하게 됐나.

▲ 나의 누님도 수학을 잘했다. 그런 점에서 선천적인 측면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어머니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하셨지만, 계산이 엄청나게 빨랐던 분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머니를 닮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초등학교 때인지 중학교 때인지 확실하지 않지만, 피타고라스 정리를 배우고 수학의 매력에 더욱 빠져들었던 기억이 난다.

-- 과학 과목도 잘했나.

▲ 수학을 잘하면 대체로 물리도 잘하게 된다. 나는 고교 물리 시간에 선생님께 많은 질문을 했는데, 선생님이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한번은 그 선생님이 나를 부르시더니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아무튼 나는 수학, 물리, 화학은 언제나 반에서 1등이었다.

-- 다른 과목은 어떠했나.

▲ 국어, 사회, 역사 등 다른 과목은 열심히 하지 않았다. 특히 나는 외우는 과목을 싫어했다. 이들 과목은 책상 위에 교과서밖에 없었다. 그러니 고교 시절에 우등상을 받지 못했다. 나중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과목들을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됐다. 인문학이 중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1950년대 여수고와 여수여고의 모습 1950년대 여수고와 여수여고의 모습

[여수시청 제공]

-- 중고교 시절에 가정형편은 나아졌나.

▲ 그렇지 않았다. 고교 3년간 내내 점심 도시락을 싸 오지 못했다. 친구들은 수업 1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먹고, 2교시가 끝나면 도시락을 또 먹곤 했다. 그렇지만 나는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빠져나와서 교내의 펌프 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 아침에는 죽만 먹고 등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항상 배가 고팠다.

-- 월사금(수업료) 때문에 힘들었다는 이야기는 뭔가.

▲ 고교 2학년 때였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포함한 2명에게 시험을 보지 말고 교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월사금을 안 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우리는 복도로 쫓겨나서는 다른 아이들이 시험 보는 것을 창문 너머로 보고만 있어야 했다. 나는 어렸을 때 부모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내가 부잣집에 태어났다면 공부를 안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월사금 때문에 같이 쫓겨난 그 친구는 나중에 대학교 국문과 교수가 됐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흙수저들이 직장에 가서도 끈기 있게 일하는 것을 나는 많이 봤다.

-- 월사금을 안 냈다고 시험을 못 보게 하는 것은 심한 것 아닌가.

▲ 당시에는 그것이 월사금을 내도록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런 벌칙을 내렸던 학교들이 꽤 있었다.

고려대 졸업식에서 장인순 전 소장과 어머니 고려대 졸업식에서 장인순 전 소장과 어머니

[본인 제공]

-- 본인은 대학교 진학할 때 화학과를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 대입 원서를 쓸 때 교무실의 담임 선생님에게 찾아갔다. 내가 "수학과에 가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담임 선생님은 "가난한 사람은 수학하는 것이 아니야"라고 했다. 나는 그때 고민이 많았다. 수학자가 되는 것이 유일한 꿈이었기 때문이다. 담임 선생님은 화학을 공부하라고 권했고, 결국 나는 고려대 화학과에 들어가게 됐다. 당시 담임선생님은 화학 과목 담당이었다.

-- 화학과에 들어가서는 어떠했나.

▲ 고려대 화학과 8학기 중 6∼7학기는 특대생으로 뽑혀서 장학금을 받았다. 당시 고려대에는 학과별로 1∼4학년 전체 학생 가운데 성적이 가장 좋은 1명을 특대생으로 선정했다. 당시 사립대학 등록금은 어마어마하게 많았던 시절이어서 장학금은 큰 도움이 됐다.

UAE 바라카 원전 3호기 UAE 바라카 원전 3호기

한국의 원전 수출 1호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라카 원자력발전소의 3호기 모습. 2023년 6월24일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한전 제공]

-- 본인은 캐나다 웨스턴온타리오대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30년간 일했는데, 현재 한국의 원자력 기술은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 종합적으로 세계 1등이다.

-- 그렇게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 우선, 원자로 제조 기술이 1등이다. 한국은 2006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상업용 원자로를 처음으로 수출했다. 다른 원전 강국들을 우리가 제친 것이다. 현재 바라카에서 가동되고 있는 한국 표준형 APR-1400은 1천400만 KW 규모로, 세계에서 가장 큰 원자로다. 현재 4기가 가동 중인데, UAE 전력의 25%를 담당하고 있다. 한국은 또 2010년 요르단에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수출했다. 이 연구용 원자로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 한국의 APR-1400은 미국 당국의 인증을 받았다고 하던데.

▲ 2019년 8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로부터 설계인증(Design Certification)을 취득했다. 미국으로부터 이 인증을 받은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이는 한국의 원전이 안정성과 기술성에서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받은 것이다.

-- 한국은 차세대 원자로인 SMR(소형 모듈 원자로)에서는 뒤처지고 있는 것 아닌가.

▲ 한국은 대형, 소형, 연구용 원자로를 모두 설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소형으로는 해수를 담수로 전환하는 스마트 원자로를 만들었다. 이미 2012년에 세계 최초로 SMR 표준설계 인가를 받았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원자로를 수입하기 위해 한국과 논의 중이다. 한국은 혁신형 SMR도 개발하고 있다. 차세대 원자로에서도 한국은 경쟁국들에 밀리지 않는다

체코 원전 수주 소식에 환호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 체코 원전 수주 소식에 환호하는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

한수원 직원들이 2024년 7월17일 밤 한국이 체코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는 현지 발표 소식이 전해지자 기뻐하고 있다. 최종 계약은 2025년 6월 이뤄졌다.[산업통상부 제공]

-- 한국의 원전 운용 능력은 어떠한가.

▲ 한국은 원전의 운용과 보수에서도 세계 1등이다. 원전 이용률이라는 수치가 있는데, 고장이 많으면 떨어진다. 한국의 이 이용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만큼 고장이 없고, 유지보수가 잘 된다는 뜻이다. 한국은 핵연료 국산화에도 성공했다. 저농축 우라늄을 수입하면 그대로 원전에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여러 단계를 거쳐 연료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쉽지 않다. 한국은 건설(토목) 능력에서도 세계 1등이다. 중동의 초대형 건물을 지은 회사는 한국의 건설사들이다.

-- 이는 한국의 원전 수주로 이어질까.

▲ 한국은 원자력의 A부터 Z까지 모든 기술을 갖고 있다. 당연히 한국은 종합능력 1등이다. 2025년 6월 체코가 원전 발주에서 왜 한국을 선택했겠는가. 원전은 처음에는 영국에서 시작됐다. 그러니 유럽은 원전 종주국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데, 원전 강국 프랑스마저도 한국에 밀렸다. 그들로서는 자존심이 매우 상한 사건이었다. 한국은 앞으로 폴란드, 사우디, 베트남 등 각국이 발주하는 원전 입찰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것이다. 미국 원전 시장에서도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다. 미국은 2050년까지 원전 발전 용량을 지금의 3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한국,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 수출 한국, 미국에 연구용 원자로 수출

한국원자력연구원 컨소시엄은 2025년 4월 미국 미주리 대학교와 차세대 연구용 원자로 초기 설계를 제공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제공]

-- 미국은 원전 기술이 어떠한가.

▲ 미국은 수십년간 원전을 새로 짓지 않았다. 그래서 하드웨어가 모두 무너졌다. 무엇보다도 원자로 제조 능력이 없다. 원천 기술만 갖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원전 능력을 100이라고 한다면 미국은 60도 안 된다고 볼 수 있다.

-- 한국의 원전 기술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원천 기술에 기반하는 것이라고 미국은 주장하고 있는데.

▲ 한국이 생산하는 자동차가 원래 우리나라의 기술이었나? 그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누구도 한국이 미국의 기술로 자동차를 생산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원자로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미국으로부터 배웠지만 지금은 독자적으로 원자로를 설계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원전 기술이 미국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말이 안 되는 논리다. 현재 한국은 미국 도움 없이 원전을 건설하지만, 미국은 한국 지원 없이는 원전을 짓지 못한다. 다만 미국은 잠재 능력을 갖춘 나라여서 마음만 먹으면 금방 기술을 회복할 것이다.

-- 한국은 미국의 미주리대학교에 연구용 원자로도 수출했는데.

▲ 작년 4월에 발표된 내용이다. 전 세계에 연구용 원자로가 300기 정도 있다. 대부분은 미국이 공급한 것이다. 이런 미국의 본토에 이제는 한국이 원자로를 수출하게 됐다. 이는 한국 원전 기술의 우수성을 확인하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앞으로 연구용 원자로의 수출은 늘어날 것이다. 의학용 동위원소를 확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전을 시작하는 나라들은 연구용 원자로부터 운영할 수밖에 없다. 원전에 대해 배우고 경험을 축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원전의 모습 프랑스 원전의 모습

[EPA 사진]

-- 프랑스는 어떤가.

▲ 프랑스는 시공 시한을 잘 지키지 못한다. 대형 원전 하나 짓는 데 15년이 걸린다. 한국은 7∼8년 만에 완공한다. 한국은 정해진 시간과 예산을 맞추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밤낮없이 일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전 시장에서 'On Time, Within Budget'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 정해진 기한 내에, 계획된 예산 내에 공사를 완수한다는 뜻이다. 공사 기간이 늘어날수록 원전 건설비는 어마어마하게 증가한다. 원전 수입국의 입장에서 한국은 비교 불가의 위치에 있다.

-- 중국은 원전을 많이 짓고 있고, 러시아는 원전 수출 1등인데.

▲ 러시아는 원전 수출을 많이 하고 있지만, 정교하지 못하다는 단점을 갖고 있다. 러시아산 자동차를 구입해서 집에 갖고 오면 나사를 다시 조여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러시아는 원전에서도 품질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중국은 자국 내에 원전을 많이 짓고 있지만 해외 시장에서 실력을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금융지원을 함께하면서 수주를 따내기 때문이다. 한국은 문재인 정부 시절에 탈원전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원전을 수출했을 것이다.

-- 한 때의 탈원전 정책이 수출에 큰 영향을 줬다는 것인가.

▲ 원전을 지으면 60년간 핵연료를 제공해야 하고, 60년간 유지보수를 해줘야 한다. 탈원전을 하면 인프라가 무너지므로 이런 후속 조치를 해줄 수 없다. 그러니 어떤 나라가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로부터 원전을 수입하겠는가?

국내 최초 원전 고리1호기 국내 최초 원전 고리1호기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1호기. 1978년 4월 29일 상업 운전을 시작한 한국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다. 2017년 영구 정지가 결정됐고 2025년 6월 해체가 결정됐다.
[한수원 제공]

-- 한국 원전이 우수한 것은 전 세계적인 탈원전 덕분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 그런 측면이 있다. 19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사고, 2011년 후쿠시마 사고 등으로 전 세계는 탈원전으로 갔다. 유럽과 미국은 1980년대부터 탈원전에 나섰다. 원자력은 이제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때 한국은 탈원전에 합류하지 않았다. 자원 빈국이어서 에너지 확보를 위해서는 원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현명하게도 우리는 계속 원자로를 개발했고, 그 결과 한국은 원자력발전 1등 국가가 됐다. 석유 자원이 없는 것이 한국에게는 축복이 된 셈이다.

-- 정부와 국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다시는 탈원전으로 가서는 안 된다. 원자력에 연구개발(R&D) 투자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원자력 발전소의 수명도 연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원전을 80년 정도 사용하는데, 우리는 40년도 못 쓰고 폐쇄한다. 우리도 보수를 하면 80년까지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신규 원전은 계속 지어야 한다.

-- 왜 원전을 계속 지어야 하나.

▲ 나는 한국의 전력 생산에서 원전의 비중을 지금의 30%에서 50%로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국민과 기업이 지금보다 훨씬 싼 값에 전기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가계의 부담을 줄이고, 기업 경쟁력을 끌어올린다. 결과적으로는 국민복지로 이어질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서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으니 전 세계 인류애의 실현에도 큰 도움이 된다.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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