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5000선을 넘어서며 금융시장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증시 호황이 민간소비·설비투자 확대로 연결되는 흐름이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계 자산 구조 역시 자산시장 쏠림이 쉽게 완화되기 어려운 한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4일 국가데이터처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가구 평균 자산 5억6678만원 중 실물자산 비중은 75.8%(4억2988만원)로 금융자산(24.2%)을 크게 상회했다. 실물자산은 전년 대비 4.9% 증가하며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0.6%포인트 확대됐다.
실물자산 비중 확대는 금리 인하나 재정 확대가 이뤄져도 추가 유동성이 소비·투자로 연결되기보다 자산시장에 흡수되는 경로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셈이다.
가계부채 누적 증가도 소비 제약 요인으로 거론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부동산발 가계부채 누증이 소비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과도하게 누적된 가계신용이 2013년 이후 민간소비를 매년 0.40~0.44% 둔화시킨 것으로 추정했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2012년 수준으로 관리됐다면 2024년 민간소비 수준이 더 높았을 수 있다고 봤다.
기업 부문에서 자금의 ‘국내 실물’ 유입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는 대외 여건 변화에 따른 기업 투자 행태 변화를 꼽을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지정학적 리스크, 주요국 핵심 산업 자국 유치 경쟁이 심화되면서 국내 기업들이 생산 거점과 투자를 해외로 분산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실제로 기업의 지난해 3분기 해외직접투자(총투자액 기준)는 160억60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3% 증가하며 같은 해 1·2분기 연속 감소 흐름을 넘어 반등했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가 다주택 양도세 중과 유예 종료 등 세제 정상화 카드를 꺼내 든 것도 자산시장 중심의 기대수익을 조정해 자금 흐름을 바꾸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다만 세제 신호만으로는 자금이 곧바로 생산·투자·고용으로 이동하기 어렵고 투자 여건 자체를 개선하지 않으면 유동성이 다시 자산시장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특히 AI·반도체 등 첨단산업 투자는 대규모 자본 투입과 규제 불확실성이 동시에 작용하는 영역으로 꼽힌다. 따라서 지분 규제, 신산업 진입 장벽, 인허가·표준·조달 연계 등 제도적 요인이 투자 속도를 좌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낡은 법령에 묶인 신산업에 대한 실증을 위해 만들어진 규제 샌드박스 제도 역시 실증 단계 이후 사업화·조달·수출 등 ‘후속 단계’에서 활용이 막히는 등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자산시장에 머무는 유동성을 실물경제로 유도하기 위해 세제·금융 정책과 함께 구조개혁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경제보고서(Economic Survey of Korea)'에서 "자본과 인력이 생산성이 높은 기업과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규제 완화와 경쟁 촉진이 필요하다"며 "서비스·첨단 제조 분야에서 진입 장벽 완화와 투자 환경 개선이 중장기 성장의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최근 '경제전망' 보고서를 통해 "유동성 확대만으로는 민간투자 회복이 제한적일 수 있다"며 "기업의 투자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 불확실성과 사업화 단계에서 병목을 해소하지 않으면 자금은 다시 자산시장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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